15인의 귀촌 귀농인의 ''농촌에서 성공하기''

지역내일 2007-01-30
과감한 결정, 정착을 위한 치밀한 준비

강원 화천 ‘산속호수마을’로 귀촌한 김명웅씨. 김씨가 이곳 산골 벽촌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잘 나간다’는 소믈리에(와인감정사)였다. 그는 제주 신라호텔, 서울 신라호텔, 부산 롯데호텔 등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
하지만 김씨는 ‘성적 제일주의’라는 전쟁 같은 교육풍토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김씨는 2000년 기득권을 버리고 과감하게 이곳에 정착했다.
전북 고창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진영호 대표도 금호그룹 이사로 재직하던 1992년 귀촌을 감행했다. 진 대표는 당시 그룹 내 동기들 중 최초로 이사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길 탄탄대로도, 주변의 만류도 농촌으로 향하는 그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다.

과감한 선택, 철저한 준비

물론 이들이 한순간 감정에 휩싸여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뿐만 아니라 이후 정착을 위한 준비도 구체적이고 치밀했다.
“도시에서 실패했으니 농촌으로 가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편안한 도시에서도 실패하고 어떻게 농촌에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농촌을 전원생활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충남 부여 백제 인동마을 김은환씨는 농촌에서 제2의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 도시에서보다 더 큰 각오와 열정이 필요하다고 이렇게 조언했다.
98년 대기업 홍보실 등에서 근무했던 경북 봉화 관북마을 송성일씨는 전에 농사를 지어보거나 구경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농사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아무 고추밭에 들어가서 고추 따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루 일당 2만1000원. 그 일당을 받고 보름 이상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일했다.
“농사일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보다도 힘들어요. 농사일은 되게 단순하거든요? 허리를 구부린 상태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거죠.”
농사일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마을의 주민들에게도 냉담한 시선을 받기 일쑤다. 마침 송씨가 귀농을 했을 때는 IMF 사태가 막 터졌을 때라 ‘저 사람이 지금은 여기서 살지만 금방 떠날 거야’란 생각에 마을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고, 생활 속에서 노인 분들하고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마음을 서서히 열어주시더라구요. 지금은 하다못해 형광등 하나를 갈아도 저한테 부탁하고…”

가족이 가장 든든한 우군

가족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도 귀촌·귀농 성공을 위한 키포인트다.
경기 화성 창문아트센터 박석윤 대표가 2000년 귀촌을 결심하자 아내는 울면서 결사반대했다. 아내는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원래 살던 일산에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1년 동안 주말부부 생활을 해야 했다.
꾸준한 설득 끝에 차츰 아내 역시 박 대표의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두 아들 박건우(고2)·박현우(중1) 군은 방송반, 사물놀이반 등을 통해 농촌학교 재미를 빠져있다.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94년 전남 보성에서 안착한 웅치관광농원 김규태 대표는 도시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현지에서 오랫동안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적극적인 내조도 있어야 해요.”
김 대표는 79년부터 바로 이곳 제암산 줄기에 있는 땅 2만4000여 평을 구입했다. 당시 구입가는 1000만원. 김 대표는 토·일요일마다 이곳에 내려와 천천히 가꿨다. 부인은 매일 상주했다. 아들 셋도 적극적으로 아버지 일을 도왔다.
“우리 식구들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모두 즐겁게 헌신했어요. 집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 셋도 아버지 일에 헌신했지요.”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근무하다 충남 부여로 귀촌한 김은환씨는 오랜 시간 아내와 논의했지만 결국 온 가족이 귀촌하는 것은 시일을 두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공주에 있는 아파트에 머물렀고 이후 3년간 주말부부 생활을 했다. 몸이 떨어져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내에게 자신의 신념과 삶의 철학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아내가 서울여상 출신이어서 은행금리로 재테크를 잘 하고 경제에 대한 눈이 밝았어요. 97년부터 밤과 표고버섯으로 흑자가 나니까 아내 얼굴이 밝아졌지요.”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밤과 표고버섯 등으로 재미를 본 김은환씨는 올해 3월 정부로부터 국유림 15만평을 빌려 밤나무를 심었다.
“밤나무 그늘 밑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 많아요. 고사리·취나물·다래순·토란줄기·고구마순·무우청·머위순·인동초·둥글레·까치수염·비비추…”
김씨는 이 작물들을 부여군 공동브랜드 ‘굿뜨레’로 상품화시켰다. 장터를 열어 마을 특산물을 판매한 것은 호응도 좋고 수익도 높았다.
김씨는 또 틈새시장을 고민하다 원추리라는 마을 야생화를 발견했다. 긴 동면에서 깨어난 동물이 먹는 꽃이었다. 동면한 동물은 몸이 굳어 있어서 배설기능이 마비되어 있는데 이 꽃을 먹고 나면 이뇨작용이 촉진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주 예뻐 조경으로도 좋았다.
덕분에 마을 수익이 급성장했다. 현재 85개 농가가 이 꽃을 재배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핀 야생화 덕분에 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 마을 이름도 새로 짓게 되었다.
현대 건설에서 다니다가 10년 전 고향으로 귀촌을 결심했던 나종년씨도 수익모델 창출에 집중했다.
“마을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과 결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을엔 유명한 고찰인 ‘옥룡사’가 있어요. 이곳 도선국사 설화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득도를 하고 일어서면서 나뭇가지를 잡았는데, 그 나뭇가지에서 물이 나와 그 물을 드시고 바로 일어났다고 합니다. 바로 ‘고로쇠’입니다."
나씨는 고로쇠로 된장을 만들었는데 임산자원(고로쇠 물), 농산자원(콩), 수산자원(소금)을 제대로 이용한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고로쇠 된장은 연 매출이 2억이나 된다.
정원택 기자 wontae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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