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경제정책의 착시현상
김영호 시사평론가
작년 말에만 해도 경제전망이 암울했는데 해가 바뀌면서 암운이 걷히는 듯한 소리가 잇따른다. 언론에 비친 모습만 봐도 비관적인 어휘보다는 낙관적인 수사가 늘어난다. 꽁꽁 얼어붙었던 자금시장에 해빙소식이 들리는가 했더니 주가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고급-고가품 소비시장이 활기를 되찾았단다.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린다는 소식도 뒤를 잇는다. 봄바람과 함께 한국경제에도 훈풍이 불 듯한 느낌을 준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정된 정부조직법에 따라 진념 재경부 장관을 경제부총리로 승격시킨 것을 보면 경제상황이 호전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견지하면서 안정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진 부총리도 구조개혁과 함께 경기진작을 병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책선택이 합리적인 것 같지만 두 정책의 모순을 조화시키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본적 경제체질 아무런 변화 없다
구조조정은 인력감축을 수반하기 때문에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진 부총리가 구조조정과 경기진작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뜻을 비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집권 중반기에 정치적 부담을 안고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다 보면 경기진작에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치적 현실에서는 정책선택에 앞서 경제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주가가 급속하게 회복되고 있다. 또 자금시장의 경색이 풀려 회사채 거래가 활발하다. 많은 기업들이 자금압박에서 벗어나니 경제가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금융지표상에 나타나는 경기호전일 뿐이다. 기본적인 경제체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판단이 옳다.
자금시장의 호전은 정부개입과 유관하다. 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신속인수에 이어 신용보증공급을 확대한 데 따른 현상이다. 기업의 신용위험에 대한 불안심리가 풀리면서 돈다발도 풀린 것이다. 또 연말-연초에 반복되는 기술적 자금회전과도 관계된다. 금융회사는 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일반기업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보유했던 자금이 해가 바뀌면서 풀렸다.
금리 하락세의 원인도 역설적이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금리인하의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예금부분보장제 실시에 따라 신용도가 낮은 금융회사에서 돈이 빠져 우량은행으로 몰린다. 돈이 넘쳐나니 금리가 내린다. 예금금리가 6%이니 이자소득세를 빼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자본이득이 전혀 없다. 그래서 돈이 손해를 각오하고 위험자산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저축이 아닌 투자로 말이다.
시중자금이 안정성보다 수익성을 쫓아 이동하니 주가가 뛰고 회사채 시장이 활기를 되찾는다. 여기에다 미국의 금리인하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주가상승을 부추긴다. 이런 왜곡된 시장상황을 놓고 자금시장의 선순환이라고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와 기업이 경제가 호전된다는 착시현상에 빠져 구조조정을 회피하는 함정을 판다는 데 있다.
58조 기업부채 금융부실채권 전가 위험
일반적으로 은행은 거래기업의 도산을 바라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에도 금융지원을 통해 대출원금을 회수하려는 것이 금융업의 속성이다. 더욱이 최근처럼 자금사정이 호전되는 상황에서는 한계기업의 자력회생에 기대를 걸기 마련이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작년 6월말 현재 영업이익을 갖고 이자지급을 못하는 기업의 부채규모가 58조원에 달한다. 이 방대한 기업부채가 자금시장의 상황변화에 따라 금융권에 부실채권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재벌기업의 집단부실화가 금융산업의 집단부실화를 초래했고 그 대가를 국민들이 공적자금이라는 형태로 부담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족쇄를 직시하는 현실인식이 중요하다.
미국경제가 금리인하에 이은 감세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착륙의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이어 디플레이션의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두 나라에 대한 수출비중이 35%선에 이르러 미국-일본의 경제동향은 국내에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구조조정의 완료가 바로 경제회복이라는 등식을 강조해 왔다. 외부환경의 상황전개에 따라 그 같은 구도에는 이상징후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치는 여론향배를 중시하는 속성을 지녔다. 그렇다고 주가동향에 지나치게 민감해서는 곤란하다.
증시가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경제상황을 재는 절대적 척도는 아니다. 주가동향이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여론에 영합하는 판단오류에 빠진다. 제한적인 경기 진작은 선택이지만 구조조정은 필수이다. 정치논리에 함몰되면 정책선택의 가시권이 좁아지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한다.
김 영 호 시사평론가
김영호 시사평론가
작년 말에만 해도 경제전망이 암울했는데 해가 바뀌면서 암운이 걷히는 듯한 소리가 잇따른다. 언론에 비친 모습만 봐도 비관적인 어휘보다는 낙관적인 수사가 늘어난다. 꽁꽁 얼어붙었던 자금시장에 해빙소식이 들리는가 했더니 주가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고급-고가품 소비시장이 활기를 되찾았단다.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린다는 소식도 뒤를 잇는다. 봄바람과 함께 한국경제에도 훈풍이 불 듯한 느낌을 준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정된 정부조직법에 따라 진념 재경부 장관을 경제부총리로 승격시킨 것을 보면 경제상황이 호전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견지하면서 안정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진 부총리도 구조개혁과 함께 경기진작을 병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책선택이 합리적인 것 같지만 두 정책의 모순을 조화시키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본적 경제체질 아무런 변화 없다
구조조정은 인력감축을 수반하기 때문에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진 부총리가 구조조정과 경기진작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뜻을 비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집권 중반기에 정치적 부담을 안고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다 보면 경기진작에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치적 현실에서는 정책선택에 앞서 경제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주가가 급속하게 회복되고 있다. 또 자금시장의 경색이 풀려 회사채 거래가 활발하다. 많은 기업들이 자금압박에서 벗어나니 경제가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금융지표상에 나타나는 경기호전일 뿐이다. 기본적인 경제체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판단이 옳다.
자금시장의 호전은 정부개입과 유관하다. 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신속인수에 이어 신용보증공급을 확대한 데 따른 현상이다. 기업의 신용위험에 대한 불안심리가 풀리면서 돈다발도 풀린 것이다. 또 연말-연초에 반복되는 기술적 자금회전과도 관계된다. 금융회사는 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일반기업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보유했던 자금이 해가 바뀌면서 풀렸다.
금리 하락세의 원인도 역설적이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금리인하의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예금부분보장제 실시에 따라 신용도가 낮은 금융회사에서 돈이 빠져 우량은행으로 몰린다. 돈이 넘쳐나니 금리가 내린다. 예금금리가 6%이니 이자소득세를 빼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자본이득이 전혀 없다. 그래서 돈이 손해를 각오하고 위험자산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저축이 아닌 투자로 말이다.
시중자금이 안정성보다 수익성을 쫓아 이동하니 주가가 뛰고 회사채 시장이 활기를 되찾는다. 여기에다 미국의 금리인하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주가상승을 부추긴다. 이런 왜곡된 시장상황을 놓고 자금시장의 선순환이라고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와 기업이 경제가 호전된다는 착시현상에 빠져 구조조정을 회피하는 함정을 판다는 데 있다.
58조 기업부채 금융부실채권 전가 위험
일반적으로 은행은 거래기업의 도산을 바라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에도 금융지원을 통해 대출원금을 회수하려는 것이 금융업의 속성이다. 더욱이 최근처럼 자금사정이 호전되는 상황에서는 한계기업의 자력회생에 기대를 걸기 마련이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작년 6월말 현재 영업이익을 갖고 이자지급을 못하는 기업의 부채규모가 58조원에 달한다. 이 방대한 기업부채가 자금시장의 상황변화에 따라 금융권에 부실채권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재벌기업의 집단부실화가 금융산업의 집단부실화를 초래했고 그 대가를 국민들이 공적자금이라는 형태로 부담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족쇄를 직시하는 현실인식이 중요하다.
미국경제가 금리인하에 이은 감세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착륙의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이어 디플레이션의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두 나라에 대한 수출비중이 35%선에 이르러 미국-일본의 경제동향은 국내에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구조조정의 완료가 바로 경제회복이라는 등식을 강조해 왔다. 외부환경의 상황전개에 따라 그 같은 구도에는 이상징후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치는 여론향배를 중시하는 속성을 지녔다. 그렇다고 주가동향에 지나치게 민감해서는 곤란하다.
증시가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경제상황을 재는 절대적 척도는 아니다. 주가동향이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여론에 영합하는 판단오류에 빠진다. 제한적인 경기 진작은 선택이지만 구조조정은 필수이다. 정치논리에 함몰되면 정책선택의 가시권이 좁아지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한다.
김 영 호 시사평론가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