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마당-인문학의 위기, 해결책은 없나

지역내일 2006-10-11
지난달 고려대 문과대 교수 20여 명이 학교내 백주년기념관에 모여 인문학의 위기 타개를 촉구하는 ‘인문학 선언’을 발표하면서 인문학 진흥 방안에 대해 다시한번 관심을 보였다.
문과대 교수 121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발표한 선언문에는 한국사회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절절히 녹아있다.
이 선언 이후 80여개 대학 인문대 학장들이 인문학 위기를 선언한데 이어 출판인들도 인문학과 인문서적 위기선언에 동참하는 등 지식인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인문학 발전의 뾰족한 대책은 아직까지 나오지않고 있다. 학계와 출판계는 조만간 인문학 위기 타개를 위한 공동토론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정부·대학, 경영보다 학문마인드 필요
대학만이 제공하는 교육은 사라져 … 인문학자도 도전에 대응해야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오래 전부터 인문학의 위기가 누차 언급되었고, 인문학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인문학 교수들에 의해서 시도됐다. 그러나 그것은 경쟁적으로 눈앞의 효율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정부와 대학의 정책에 의해서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교육에서도 수요자 중심 교육, 시장논리 등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어휘들이 범람하면서, 돈버는 것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인문학은 고사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기초학문보다 응용학문이 중시돼, 돈·직업과 직결된 학문이 역사학, 철학, 문학 등 전통 인문학을 대학에서 밀어내고 있다. 보다 못하여, 서울의 모 대학 교수들이 ‘인문학 위기’ 선언문까지 작성하여 총장에게 항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한국 대학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웃지 못 할 비극이다.
정부나 대학이 개혁을 말할 때, 미국의 대학들을 자주 언급한다. 정말로 미국의 대학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의 대학들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내용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인문학 위기는 상당 부분 무지의 소산이다.
한국 인문학 위기의 첫 번째 요인은 대학들이 학문 체계를 제대로 제도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들에서 경영학, 사회복지, 행정학 등 응용학문은 거의 대부분 대학원에서만 설치돼 있다. 학부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기초 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들로 구성됐다. 학부에서 다양한 기초 학문을 섭렵한 다음에 대학원에서 기초 학문을 응용한 학문을 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이들 응용학문은 직업과 연결된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거꾸로 응용학문이 학부에서 개설되어 있고, 이들 응용학문으로 학생들이 집중되고 있다. 대학의 기본틀부터 제대로 갖추도록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위기 요인은 대학 내에서 인문학이 홀대 받기 때문이다. 대학 정책에서 인문학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학과가 쇠락해 교수수도 줄었다.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인문학은 우대를 받고 있다. 인문학이 발달한 대학이 미국의 명문 대학이다. 명문 대학들의 사학과는 철학과는 놀랄 정도로 많은 교수수를 확보하고 있다.
예들 들어,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나 하버드 대학도 사학과 교수는 거의 70명에 달하고 있고, 철학과 교수도 20명이 넘는다. 대학의 경쟁력은 이러한 기초학문에서 나온다.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학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경영 마인드’에 우선해 ‘학문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위기의 요인은 대학교육에서 시장논리와 수요자 중심 교육을 등치시키는 대학 교육이념의 빈곤이다. 교육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은 사탕만을 원하는 아이의 수요에 맞추어 사탕만을 계속 주는 잘못된 육아방식과 같은 것이다. 교육은 학생을 가르치고 육성하여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능력을 갖도록 이끄는 일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체계를 바꾸다 보니, 대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은 사라지고, 학생들의 선호에 의해서 학원이나 기업체에서 이루어지는 직업과 관련된 교육만이 확대되고 있다. 대학이 직업교육 기관으로 변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이자 한국 고등교육의 위기이다.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이지만, 그 성과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수준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 모두가 교육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한국의 대학은 점점 더 심각한 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학문체계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논리와 수요자 중심 교육을 내세운 것이 한국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했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꼽는 대학개혁이 낳은 총체적인 대학의 위기이자 비극이다.
인문학자의 책임도 크다. 대학의 변화에 대해서 무관심했거나 거리를 두면서 ‘고고하고 깨끗한’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또한 인문학자들이 수요자 중심 논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대안적인 인문학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경제위기 이후 당장의 호구지책을 앞세우는 사회 조류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발전을 위한 인문학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세태 변화의 물결을 관망만 하였지, 물길을 제대로 돌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지만, 삶은 더 피폐해지고 척박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의 삶을 풍부하고 품위 있게 만드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사회의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 정책 개선이 인문학에 도움
서점 수준 장서 비치·정가 구입 … 인문서다운 책 만들 수 있어
조철현 (여산통신 대표이사)

“출판사 편집장들이 말이죠, 자기네 책이 우리 신문에 실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우리 신문에 실렸다 하면 곧) 안 팔리는 책이라는 거죠.”
이문구 선생 전집 완간 봉헌식에 다녀오는 길에 한 언론인이 차 안에서 허허 웃으며 한마디 했다. 책다운 책만 서평으로 다루고 있다는 자부심과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는 인문서 출판시장에 대한 걱정을 반반씩 담아낸 한 마디였다. ‘관촌수필’의 무대, 보령과 서울을 일직선으로 잇고 있는 서해대교를 건널 즈음이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자긍심을 내면의 무기로 우리나라 출판시장은 세계 10대 출판강국에 오르기까지 일직선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인문서만은 위기의 시대를 넘어 사망 직전에까지 이르렀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인문서 시장, ‘컴퓨터와 영상, 물질만능 3재에 당했다’, 서해대교 참사를 다룬 신문제목에 빗대 우선 이 같이 누구나 다 알만한 상식선의 제목만이라도 서둘러 뽑아 둘 일이다.
하긴 이 같은 3재는 전 지구적 공통사항으로 인문서 분야의 퇴조는 비단 우리나라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지난 8일로 폐막된 2006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도 실용서 위주의 ‘가벼운 책’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보고다.
나는 최근 출판전문 인터넷방송이란 거창한 수사가 아직은 많이 창피한 책 소식 동영상 홈페이지(www. onbooktv.co.kr) 하나를 오픈했다. 보령에서 새벽길을 재촉해 출근한 것도 이 홈페이지 오픈을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 때문이었다. 회의의 연속… 이 날 아침 회의 주제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으로 떠나는 현장 취재팀의 역할과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인문서 영상 서평 코너의 제작 방향에 대한 것.
인문서 출판시장의 현실적 고민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갑론을박의 장이 됐다. 서평 인터뷰이 결정 문제 등등 정해야 될 제작방향들도 한두 가지가 아닌데, 우리는 가장 기본적 명제 앞에서 여러 시간을 헤매는 중이었다.
최종 판단은 늘 대표 피디인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 날 이 문제만큼은 나 역시 피해 가는 중이었다. 조급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연휴 이후까지 장고해 보자는 옹색한 부연설명과 함께.
개인적 생각으론 물론 ‘인문서가 인문서다와야 인문서지’란 결론이다. 하지만 지난 13년 동안 신간 보도자료 릴리스 대행 회사인 여산통신을 꾸려오면서 숱하게 명멸해 간 출판사 사장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답다’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평균 70여 권 이상 릴리스 하는 여타 출판사들과 달리 우리 책 같은 거 실어 줄만한 마땅한 매체도 없다며 항상 10권미만의 책만을 들고 찾던 그 출판사 사장은 기어이 종합출판사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서너 달에 한번, 그와 함께 88년식 프라이드를 타고 오던 그의 친구 출판사는 결국 아이엠에프와 함께 사라졌다.
과연 인문서다운 인문서만의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컴퓨터와 영상이며 물질만능 시대에서도 당당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문학의 부흥을 함께 노래할 수 있는 방법이란 과연 없는 것일까?
없지 않다. 나는 그 해답을 서울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관장 이우정)이 최근 결정했다는 소장 도서 구입의 한 방법에서 찾고 싶다. 정가에 책을 사들일 것, 신간 서평을 보자마자 찾아오는 도서관 이용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서점 수준으로 빠르게 책을 비치할 것,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신간 단행본 중심으로 책을 구입할 것.
그 동안 전자결재를 통한 입찰방식을 택하면서 70퍼센트 미만까지 내려 간 할인 가격으로 책을 구입하던 기존 도서관들의 수서 방식과 확실히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구입 도서 목록 작성에서부터 도서관 장서에 이르기까지 최장 6개월이나 소요되던 수서 시간을 한 주간 내로 단축하겠다는 이 도서관의 수서정책 결정에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겠다.
2006년 9월 말 기준으로 한국도서관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기관 회원(도서관) 수만도 1000개 가까이나 된다. 전국의 공공도서관, 대학도서관, 학교도서관, 특수 전문도서관 수를 모두 합치자면 1만개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도서관 모두가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처럼, 정가로 그것도 책이 나오자마자 곧장 현금으로 책을 구입해 주기만 한다면.
인문학의 심장이 멈추면 다른 분야 모든 심폐 기능도 정지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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