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 한국사회의 위기
이미 오래 전부터 인문학 위기를 부르짖고, 인문학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인문학 교수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쟁적으로 눈앞의 효율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정부와 대학들의 정책에 의해서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교육에서도 수요자 중심 교육, 시장논리 등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어휘들이 범람하면서, 돈버는 것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인문학은 고사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기초학문보다 응용학문이 중시되어, 돈이나 직업과 직결된 학문이 역사학, 철학, 문학 등 전통적인 인문학을 대학에서 밀어내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하여, 서울의 모 대학 교수들이 ‘인문학 위기’ 선언문까지 작성하여 총장에게 항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한국 대학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웃지 못 할 비극이다.
정부나 대학이 대학 개혁을 말할 때, 미국의 대학들을 자주 언급한다. 정말로 미국의 대학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의 대학들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내용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인문학 위기는 상당 부분 무지의 소산이다.
한국 인문학 위기의 첫 번째 요인은 대학들이 학문 체계를 제대로 제도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들에서 경영학, 사회복지, 행정학 등 응용학문은 거의 대부분 대학원에서만 설치되어 있다. 학부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기초 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부에서 다양한 기초 학문을 섭렵한 다음에 대학원에서 기초 학문을 응용한 학문을 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이들 응용학문은 직업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거꾸로 응용학문이 학부에서 개설되어 있고, 이들 응용학문으로 학생들이 집중되고 있다. 대학의 기본틀부터 제대로 갖추도록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위기 요인은 대학 내에서 인문학이 홀대 받기 때문이다. 대학 정책에서 인문학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학과가 쇠락하여 교수수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인문학은 우대를 받고 있다. 인문학이 발달한 대학이 미국의 명문 대학이다. 명문 대학들의 사학과는 철학과는 놀랄 정도로 많은 교수수를 확보하고 있다. 예들 들어,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나 하버드 대학도 사학과 교수는 거의 70명에 달하고 있고, 철학과 교수도 20명이 넘는다. 이들 대학의 경쟁력은 이러한 기초학문에서 나온다. 한국의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학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경영 마인드’에 우선하여 ‘학문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위기의 요인은 대학교육에서 시장논리와 수요자 중심 교육을 등치시키는 대학 교육이념의 빈곤이다. 교육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은 사탕만을 원하는 아이의 수요에 맞추어 사탕만을 계속 주는 잘못된 육아방식과 같은 것이다. 교육은 학생을 가르치고 육성하여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능력을 갖도록 이끄는 일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체계를 바꾸다 보니, 대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은 사라지고, 학생들의 선호에 의해서 학원이나 기업체에서 이루어지는 직업과 관련된 교육만이 확대되고 있다. 대학이 직업교육 기관으로 변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이자 한국 고등교육의 위기이다.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이지만, 그 성과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수준은 학부모들의 교육열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다. 모두가 교육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한국의 대학은 점점 더 심각한 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학문체계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논리와 수요자 중심 교육을 내세운 것이 한국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쫒는 대학개혁이 낳은 총체적인 대학의 위기이자 비극이다.
인문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대학의 변화에 대해서 무관심했거나 거리를 두면서 ‘고고하고 깨끗한’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또한 인문학자들이 수요자 중심 논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대안적인 인문학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경제위기 이후 당장의 호구지책을 앞세우는 사회 조류에 대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발전을 위한 인문학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세태 변화의 물결을 관망만 하였지, 물길을 제대로 돌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지만, 삶은 더 피폐해지고 척박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풍부하고 품위 있게 만드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사회의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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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부터 인문학 위기를 부르짖고, 인문학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인문학 교수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쟁적으로 눈앞의 효율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정부와 대학들의 정책에 의해서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교육에서도 수요자 중심 교육, 시장논리 등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어휘들이 범람하면서, 돈버는 것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인문학은 고사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기초학문보다 응용학문이 중시되어, 돈이나 직업과 직결된 학문이 역사학, 철학, 문학 등 전통적인 인문학을 대학에서 밀어내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하여, 서울의 모 대학 교수들이 ‘인문학 위기’ 선언문까지 작성하여 총장에게 항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한국 대학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웃지 못 할 비극이다.
정부나 대학이 대학 개혁을 말할 때, 미국의 대학들을 자주 언급한다. 정말로 미국의 대학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의 대학들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내용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인문학 위기는 상당 부분 무지의 소산이다.
한국 인문학 위기의 첫 번째 요인은 대학들이 학문 체계를 제대로 제도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들에서 경영학, 사회복지, 행정학 등 응용학문은 거의 대부분 대학원에서만 설치되어 있다. 학부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기초 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부에서 다양한 기초 학문을 섭렵한 다음에 대학원에서 기초 학문을 응용한 학문을 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이들 응용학문은 직업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거꾸로 응용학문이 학부에서 개설되어 있고, 이들 응용학문으로 학생들이 집중되고 있다. 대학의 기본틀부터 제대로 갖추도록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위기 요인은 대학 내에서 인문학이 홀대 받기 때문이다. 대학 정책에서 인문학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학과가 쇠락하여 교수수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인문학은 우대를 받고 있다. 인문학이 발달한 대학이 미국의 명문 대학이다. 명문 대학들의 사학과는 철학과는 놀랄 정도로 많은 교수수를 확보하고 있다. 예들 들어,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나 하버드 대학도 사학과 교수는 거의 70명에 달하고 있고, 철학과 교수도 20명이 넘는다. 이들 대학의 경쟁력은 이러한 기초학문에서 나온다. 한국의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학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경영 마인드’에 우선하여 ‘학문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위기의 요인은 대학교육에서 시장논리와 수요자 중심 교육을 등치시키는 대학 교육이념의 빈곤이다. 교육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은 사탕만을 원하는 아이의 수요에 맞추어 사탕만을 계속 주는 잘못된 육아방식과 같은 것이다. 교육은 학생을 가르치고 육성하여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능력을 갖도록 이끄는 일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체계를 바꾸다 보니, 대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은 사라지고, 학생들의 선호에 의해서 학원이나 기업체에서 이루어지는 직업과 관련된 교육만이 확대되고 있다. 대학이 직업교육 기관으로 변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이자 한국 고등교육의 위기이다.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이지만, 그 성과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수준은 학부모들의 교육열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다. 모두가 교육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한국의 대학은 점점 더 심각한 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학문체계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논리와 수요자 중심 교육을 내세운 것이 한국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쫒는 대학개혁이 낳은 총체적인 대학의 위기이자 비극이다.
인문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대학의 변화에 대해서 무관심했거나 거리를 두면서 ‘고고하고 깨끗한’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또한 인문학자들이 수요자 중심 논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대안적인 인문학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경제위기 이후 당장의 호구지책을 앞세우는 사회 조류에 대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발전을 위한 인문학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세태 변화의 물결을 관망만 하였지, 물길을 제대로 돌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지만, 삶은 더 피폐해지고 척박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풍부하고 품위 있게 만드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사회의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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