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귀신들린 여자아이였던 레간과는 달리 영화배우 린다 블레어는 절대 목을 360도로 회전시킬 수 없음을 알아 주시기 바란다. 이제 41세가 된 자그마한 몸집의 린다 블레어는 자기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엑소시스트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부유층 가정주부처럼 보일 뿐 한때 스크린에서 보여주었던 사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살아 남았어오. 십자가를 지니고 다녀야 했지만 어쨌던 이젠 괜찮아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엑소시스트 이후 겪게될 여러가지 사건들을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린다 블레어는 이 영화 출연 이후 문제아라던지 심지어는 돌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정신병이 있다는 등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았어요. 민감한 어린 나이였던 나는 너무나 괴로웠어요."
지난 금요일 블레어는 머리가 빙빙 돌아가는 공포와 그에 따른 반향을 또다시 우리에게 불러일으켰다. '엑소시스트-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버전'이 극장가에서 상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새 영화에는 오리지널 엑소시스트에서는 삭제되었던 장면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사운드트랙도 디지털로 다시 믹싱이 되어있다.
오늘날에도 길거리에서 린다 블레어를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는 "저 여자 엑소시스트에서 귀신들였던 여자애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블레어는 "엑소시스트에 출연하기 전에는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랐지요. 하지만 그 영화가 나온 후에는 온세계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지요."
린다 블레어가 겪었던 이런 유명세는 '식스센스'에서 "난 죽은 사람을 봐요"라는 대사로 유명해진 아역배우 헤일리 조엘 오스멘트도 평생 치루어야 할 것이라고 블레어는 말한다.
린다 블레어는 엑소시스트로 골든그로브 조역상을 받은 후 몇 편의 저급영화에 계속 출연했지만 별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녀가 헐리우드에서 그래도 자리를 잡게된 것은 엑소시스트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때문에 어려운 일도 많이 당했지만 그래도 엑소시스트 덕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었어요."
그녀는 엑소시스트에 출연하기 이전에 벌써 75편의 광고에 등장하는 등 프로로써 활동하고 있었지만 엑소시스트 이후에 생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치 못 하고 있었다. 천이백만불을 들여 제작한 엑소시스트는 미국내에서만도 일억육천만불을 벌어들였고 순진했던 코넥티컷 출신의 여자아이를 헐리우드라는 상층권으로 쏘아올렸던 것이다.
"난 13살이 되면 은퇴할 생각이었어요. 수의사가 되고 싶었거던요." 그렇지만 헐리우드는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엑소시스트 다음에 블레어는 방황하는 사춘기 소녀를 그린 TV극 '본 이노센트'에 출연하는 등 문제소녀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다가 1978년에 다시 '우리집에 온 이방인'에서 마법에 걸린 희생자의 역할을 맡았었다.
블레어는 연기가 자신의 존재이유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저기에 출연을 한다. 항상 마음에 드는 배역만 맡을 수는 없다. 그게 인생이다."
어려서부터 개나 고양이 심지어는 스컹크까지 키워온 블레어는 동물보호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1997년에는 유명인사와 애완동물을 주제로 한 캘린더도 만들어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두마리 푸쉬와 말 한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블레어는 동물의 거세에 찬성하고 있다.
가수 릭 스프링필드 등 여러명과 사귀곤 있지만 린다 블레어는 아직 독신이다. 인구과잉을 걱정해서라고 한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녀가 엑소시스트에 출연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은 결혼해서 애들도 있고, 아마도 수의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CNN-TV 홈페이지에서)
천행욱 리포터 chunlim@netsgo.com
엑소시스트 이후 겪게될 여러가지 사건들을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린다 블레어는 이 영화 출연 이후 문제아라던지 심지어는 돌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정신병이 있다는 등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았어요. 민감한 어린 나이였던 나는 너무나 괴로웠어요."
지난 금요일 블레어는 머리가 빙빙 돌아가는 공포와 그에 따른 반향을 또다시 우리에게 불러일으켰다. '엑소시스트-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버전'이 극장가에서 상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새 영화에는 오리지널 엑소시스트에서는 삭제되었던 장면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사운드트랙도 디지털로 다시 믹싱이 되어있다.
오늘날에도 길거리에서 린다 블레어를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는 "저 여자 엑소시스트에서 귀신들였던 여자애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블레어는 "엑소시스트에 출연하기 전에는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랐지요. 하지만 그 영화가 나온 후에는 온세계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지요."
린다 블레어가 겪었던 이런 유명세는 '식스센스'에서 "난 죽은 사람을 봐요"라는 대사로 유명해진 아역배우 헤일리 조엘 오스멘트도 평생 치루어야 할 것이라고 블레어는 말한다.
린다 블레어는 엑소시스트로 골든그로브 조역상을 받은 후 몇 편의 저급영화에 계속 출연했지만 별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녀가 헐리우드에서 그래도 자리를 잡게된 것은 엑소시스트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때문에 어려운 일도 많이 당했지만 그래도 엑소시스트 덕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었어요."
그녀는 엑소시스트에 출연하기 이전에 벌써 75편의 광고에 등장하는 등 프로로써 활동하고 있었지만 엑소시스트 이후에 생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치 못 하고 있었다. 천이백만불을 들여 제작한 엑소시스트는 미국내에서만도 일억육천만불을 벌어들였고 순진했던 코넥티컷 출신의 여자아이를 헐리우드라는 상층권으로 쏘아올렸던 것이다.
"난 13살이 되면 은퇴할 생각이었어요. 수의사가 되고 싶었거던요." 그렇지만 헐리우드는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엑소시스트 다음에 블레어는 방황하는 사춘기 소녀를 그린 TV극 '본 이노센트'에 출연하는 등 문제소녀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다가 1978년에 다시 '우리집에 온 이방인'에서 마법에 걸린 희생자의 역할을 맡았었다.
블레어는 연기가 자신의 존재이유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저기에 출연을 한다. 항상 마음에 드는 배역만 맡을 수는 없다. 그게 인생이다."
어려서부터 개나 고양이 심지어는 스컹크까지 키워온 블레어는 동물보호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1997년에는 유명인사와 애완동물을 주제로 한 캘린더도 만들어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두마리 푸쉬와 말 한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블레어는 동물의 거세에 찬성하고 있다.
가수 릭 스프링필드 등 여러명과 사귀곤 있지만 린다 블레어는 아직 독신이다. 인구과잉을 걱정해서라고 한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녀가 엑소시스트에 출연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은 결혼해서 애들도 있고, 아마도 수의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CNN-TV 홈페이지에서)
천행욱 리포터 chunlim@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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