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과 학습지 대신 세 아이를 책으로 키운 엄마, 좋은 학군, 좋은 학원이 아니라 도서관을 찾아 집을 옮기고 아이들을 그 안에서 놀게 하면서 책과 친구 되게 했다. 남들이 집 장만을 위해 돈을 모을 때, 아이들 먼저 바르게 세우자며 아낌없이 책에 투자했다. 그동안 세 아이가 읽은 책은 2만7000여권. 이렇게 키운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
소신 엄마 유은정(43)씨를 만나 들어보았다.
민주(휘경초 6), 소정(휘경초 5) 자매는 각각 교육청과 CBS학술원에서 영재 판정을 받았다. 아이들이 읽은 책은 각각 7000여 권과 1만 5000여 권. 막내 승우(7)도 누나들 틈에서 수천 권을 읽었다. 친구들이 학원을 전전할 시간에 이들은 집에서 책을 읽고 서로 내용을 이야기하고 퀴즈를 즐기며 장난하며 논다. 그래도 자매의 성적은 늘 최상위권.
서울 휘경동 민정이네 집은 코앞에 중학교 정문이 있다. 집에서 내다보면 운동장 모습은 물론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교내방송도 다 들린다. 맹모삼천지교였던 걸까.
“이사할 때마다 학교를 염두에 둔 건 사실이에요. 다른 건 안 보고 학교 도서관에 책이 어느 정도 있는가는 꼭 확인했어요. 책이 많은 학교가 있는 동네가 늘 우선 순위였지요.”
평범한 단독주택 2층집. 그런데 이집 자체도 하나의 작은 도서관이다. 들어서면 보이는 건 빼곡히 들어선 책장뿐. 거실, 안방, 건넌방에도 책장에 밀려 식탁이며 컴퓨터 책상, 가구들은 모두 쫓겨났다.
◆태담부터 시작한 특별한 조기교육 = 주변 친구나 선배들은 결혼하면 무엇보다 내 집 장만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은 일찍 유아원에 보내거나 방치하고 오로지 돈 모으는 일에 열중하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쯤이면 학원과 사교육으로 내돌리며 아이가 공부를 못하느니, 엄마와 대화를 싫어한다느니 하며 한숨 쉬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이 부부는 첫아이를 가지면서 “돈 벌어 집 장만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명석한 머리와 풍부한 감성을 키워주자. 행복한 아이들로 키우는 것에 올인하자”고.약속했다.
태명을 짓고, 남편은 퇴근 후면 언제나 회사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는 태담을 했는데 놀랍게도 ‘장군아’하고 태명을 부르면 발길질로 답하곤 했다. 아이가 생후 2개월이면 사물과 색깔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착안해 끊임없이 아이에게 보여주거나 말을 건넸다. 아이를 앞으로 업고 다니며 슈퍼마켓에 가서 “이거는 샴푸고 이거는 오이야. 이거는 사과야, 동그랗지?”하며 점원 눈치를 보며 아이에게 만져보게 하고 냄새를 맡게 하며 엄마의 풍부한 어휘를 전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당구장 표시에 아이가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보행기에서 놀 때 책을 거꾸로 놓았더니 바로 놓고 보는 것이 아닌가.
“세 살에는 책 한 줄을 읽게 하고, 네 살에는 세 줄, 다섯 살에는 6~7줄,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양을 늘렸어요.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한글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이야기 위주의 재미있는 책을 읽혔어요. 초등학교 3년쯤 되니 세계문학을 읽기 시작했는데 다양한 책을 읽으며 수학이나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니까 학습에 자연스럽게 도움이 돼 성적도 좋았어요.”
◆막내 동생 태어난 후 틱 장애에 걸린 큰딸 민주 = 6학년이 된 민주는 요즘 멘델의 유전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읽지만 오늘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모든 칭찬과 격려를 한 몸에 받던 민주가 1학년일 때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그때부터 아이가 사소하게 말썽을 부리고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에는 나무랄 일이 없던 아이의 변화에 엄마는 짜증이 났고 계속 야단만 쳤는데 급기야 담임선생님의 호출이 왔다. 그 당시 만해도 생경한 ‘틱 장애’를 민주가 앓고 있다는 것이다. 입을 씰룩거리거나 코를 벌름거리는 행동을 할 때면 하지 말라고 소리만 질러대던 엄마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동생을 본 아이의 애정 결핍이었는데 똘똘한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니 그걸 인정 못했어요. 아이의 정서를 무시하고 야단만 치니 정서 장애가 온 거죠. 당시 남편의 사업도 힘들었고, 기대했던 아이는 점점 퇴행해 가고 둘째 소정이마저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말도, 표현도 안했어요.”
그 당시 어떻게 하면 이 생활이 끝날까 죽고 싶을 정도였던 유씨는 우연히 육아·교육 강연을 듣고 실마리를 풀었다. ‘지성은 10년을 앞서 가지만 감성은 제 나이를 갖는다’는 그 날의 주제가 민주와 맞아 떨어졌던 것. 그 날 이후 민주가 어떤 실수를 해도 감싸주고 격려해주자 민주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네’ ‘아니오’만 대답하며 자신감이 없던 둘째 소정에게도 “엄마는 널 믿는다. 고학년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잘할 거야”하며 늘 격려해주자 4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생긴 소정은 “정말 엄마 말이 맞았다. 앞으로 내가 잘 클 수 있도록 엄마가 길잡이가 되달라”며 엄마를 전폭 지지하고 있다.
다양한 책을 통해 이해력과 지구력을 키운 아이들은 학원이나 학습지를 통해 배우는 것보다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한다. 굳이 문제집을 안 풀어도 관련된 책으로 원리를 이해하면서 뜻밖의 선행학습을 몇 년이나 한 셈이 되더라는 것이다.
◆놀이도, 공부도, 책도 선택권은 아이에게 = 친구들이 부러워해요. 모두들 학원가고 과외하며 휴일에도 못 노는데 우리는 만날 집에서 논다고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소정이는 방과 후 집에 오자마자 동생이 그린 그림을 봐주며 질문도 하고 동생의 설명도 자상하게 들어준다. 그러다가 동생의 제의로 나라 맞추기 게임이 시작된다. “베네스웰라 카라카스, 파푸아 뉴기니 포토모레즈비….” 누나가 국기 카드를 집어 들면 나라와 수도를 말하고 위치를 지도에서 찾아낸다. 위인전이나 과학·역사·백과사전으로 각종 퀴즈를 즐기며 공부를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것은 책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도록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부모 덕이다.
세 남매는 자타가 공인하는 책벌레다. 심부름하면 200원 주는 짠순이 엄마가 책을 들여 놓을 때는 200만 원 어치도 서슴지 않아 남편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남들이 악착같이 돈 모아 집을 사는 동안 유씨는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책을 사고 읽어줬다.
막내 승우는 늦게까지 책을 보다가 아침에도 늦게 일어난다. 유치원을 안 보내는 것도 가기 싫다는 승우의 의사를 존중하고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 실랑이하기 싫기 때문이다.
베이징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민주는 요즘 중국 드라마를 보며 독학으로 중국어를 공부한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서 중국인과 대화하며 쇼핑하고 흥정하며 중국어 실력을 발휘한다. 무엇이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지지해줄 때 효과가 배가 되는 것은 민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20대, 30대, 40대에도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 해요. 10대만 돼도 부모와 대화 단절로 불행한 가족이 많잖아요. 늘 여유 있게 아이를 바라봐 주고,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부모의 시선이 자식을 키웁니다.”
여름방학에는 실컷 자고, 놀고, 먹을 꿈에 가득 찬 아이들. 재미있는 영화 실컷 보고, 영어와 중국어 공부도 하고, 한국역사전집, 세계사 전집을 체계적으로 읽겠다는 이 야무진 아이들의 꿈이 튀어오를 듯 싱싱하다.
박미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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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엄마 유은정(43)씨를 만나 들어보았다.
민주(휘경초 6), 소정(휘경초 5) 자매는 각각 교육청과 CBS학술원에서 영재 판정을 받았다. 아이들이 읽은 책은 각각 7000여 권과 1만 5000여 권. 막내 승우(7)도 누나들 틈에서 수천 권을 읽었다. 친구들이 학원을 전전할 시간에 이들은 집에서 책을 읽고 서로 내용을 이야기하고 퀴즈를 즐기며 장난하며 논다. 그래도 자매의 성적은 늘 최상위권.
서울 휘경동 민정이네 집은 코앞에 중학교 정문이 있다. 집에서 내다보면 운동장 모습은 물론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교내방송도 다 들린다. 맹모삼천지교였던 걸까.
“이사할 때마다 학교를 염두에 둔 건 사실이에요. 다른 건 안 보고 학교 도서관에 책이 어느 정도 있는가는 꼭 확인했어요. 책이 많은 학교가 있는 동네가 늘 우선 순위였지요.”
평범한 단독주택 2층집. 그런데 이집 자체도 하나의 작은 도서관이다. 들어서면 보이는 건 빼곡히 들어선 책장뿐. 거실, 안방, 건넌방에도 책장에 밀려 식탁이며 컴퓨터 책상, 가구들은 모두 쫓겨났다.
◆태담부터 시작한 특별한 조기교육 = 주변 친구나 선배들은 결혼하면 무엇보다 내 집 장만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은 일찍 유아원에 보내거나 방치하고 오로지 돈 모으는 일에 열중하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쯤이면 학원과 사교육으로 내돌리며 아이가 공부를 못하느니, 엄마와 대화를 싫어한다느니 하며 한숨 쉬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이 부부는 첫아이를 가지면서 “돈 벌어 집 장만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명석한 머리와 풍부한 감성을 키워주자. 행복한 아이들로 키우는 것에 올인하자”고.약속했다.
태명을 짓고, 남편은 퇴근 후면 언제나 회사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는 태담을 했는데 놀랍게도 ‘장군아’하고 태명을 부르면 발길질로 답하곤 했다. 아이가 생후 2개월이면 사물과 색깔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착안해 끊임없이 아이에게 보여주거나 말을 건넸다. 아이를 앞으로 업고 다니며 슈퍼마켓에 가서 “이거는 샴푸고 이거는 오이야. 이거는 사과야, 동그랗지?”하며 점원 눈치를 보며 아이에게 만져보게 하고 냄새를 맡게 하며 엄마의 풍부한 어휘를 전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당구장 표시에 아이가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보행기에서 놀 때 책을 거꾸로 놓았더니 바로 놓고 보는 것이 아닌가.
“세 살에는 책 한 줄을 읽게 하고, 네 살에는 세 줄, 다섯 살에는 6~7줄,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양을 늘렸어요.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한글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이야기 위주의 재미있는 책을 읽혔어요. 초등학교 3년쯤 되니 세계문학을 읽기 시작했는데 다양한 책을 읽으며 수학이나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니까 학습에 자연스럽게 도움이 돼 성적도 좋았어요.”
◆막내 동생 태어난 후 틱 장애에 걸린 큰딸 민주 = 6학년이 된 민주는 요즘 멘델의 유전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읽지만 오늘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모든 칭찬과 격려를 한 몸에 받던 민주가 1학년일 때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그때부터 아이가 사소하게 말썽을 부리고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에는 나무랄 일이 없던 아이의 변화에 엄마는 짜증이 났고 계속 야단만 쳤는데 급기야 담임선생님의 호출이 왔다. 그 당시 만해도 생경한 ‘틱 장애’를 민주가 앓고 있다는 것이다. 입을 씰룩거리거나 코를 벌름거리는 행동을 할 때면 하지 말라고 소리만 질러대던 엄마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동생을 본 아이의 애정 결핍이었는데 똘똘한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니 그걸 인정 못했어요. 아이의 정서를 무시하고 야단만 치니 정서 장애가 온 거죠. 당시 남편의 사업도 힘들었고, 기대했던 아이는 점점 퇴행해 가고 둘째 소정이마저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말도, 표현도 안했어요.”
그 당시 어떻게 하면 이 생활이 끝날까 죽고 싶을 정도였던 유씨는 우연히 육아·교육 강연을 듣고 실마리를 풀었다. ‘지성은 10년을 앞서 가지만 감성은 제 나이를 갖는다’는 그 날의 주제가 민주와 맞아 떨어졌던 것. 그 날 이후 민주가 어떤 실수를 해도 감싸주고 격려해주자 민주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네’ ‘아니오’만 대답하며 자신감이 없던 둘째 소정에게도 “엄마는 널 믿는다. 고학년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잘할 거야”하며 늘 격려해주자 4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생긴 소정은 “정말 엄마 말이 맞았다. 앞으로 내가 잘 클 수 있도록 엄마가 길잡이가 되달라”며 엄마를 전폭 지지하고 있다.
다양한 책을 통해 이해력과 지구력을 키운 아이들은 학원이나 학습지를 통해 배우는 것보다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한다. 굳이 문제집을 안 풀어도 관련된 책으로 원리를 이해하면서 뜻밖의 선행학습을 몇 년이나 한 셈이 되더라는 것이다.
◆놀이도, 공부도, 책도 선택권은 아이에게 = 친구들이 부러워해요. 모두들 학원가고 과외하며 휴일에도 못 노는데 우리는 만날 집에서 논다고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소정이는 방과 후 집에 오자마자 동생이 그린 그림을 봐주며 질문도 하고 동생의 설명도 자상하게 들어준다. 그러다가 동생의 제의로 나라 맞추기 게임이 시작된다. “베네스웰라 카라카스, 파푸아 뉴기니 포토모레즈비….” 누나가 국기 카드를 집어 들면 나라와 수도를 말하고 위치를 지도에서 찾아낸다. 위인전이나 과학·역사·백과사전으로 각종 퀴즈를 즐기며 공부를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것은 책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도록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부모 덕이다.
세 남매는 자타가 공인하는 책벌레다. 심부름하면 200원 주는 짠순이 엄마가 책을 들여 놓을 때는 200만 원 어치도 서슴지 않아 남편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남들이 악착같이 돈 모아 집을 사는 동안 유씨는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책을 사고 읽어줬다.
막내 승우는 늦게까지 책을 보다가 아침에도 늦게 일어난다. 유치원을 안 보내는 것도 가기 싫다는 승우의 의사를 존중하고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 실랑이하기 싫기 때문이다.
베이징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민주는 요즘 중국 드라마를 보며 독학으로 중국어를 공부한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서 중국인과 대화하며 쇼핑하고 흥정하며 중국어 실력을 발휘한다. 무엇이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지지해줄 때 효과가 배가 되는 것은 민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20대, 30대, 40대에도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 해요. 10대만 돼도 부모와 대화 단절로 불행한 가족이 많잖아요. 늘 여유 있게 아이를 바라봐 주고,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부모의 시선이 자식을 키웁니다.”
여름방학에는 실컷 자고, 놀고, 먹을 꿈에 가득 찬 아이들. 재미있는 영화 실컷 보고, 영어와 중국어 공부도 하고, 한국역사전집, 세계사 전집을 체계적으로 읽겠다는 이 야무진 아이들의 꿈이 튀어오를 듯 싱싱하다.
박미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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