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섹스 시대의 외양 강조 … (주)보보스 설립, 남성 액세서리 제작 판매
1970년대에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고 그 세가 확대되면서, 1980년대 이후 동성애와 같은 새로운 성을 지닌 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1990년대 이후 이에 대한 편견없는 청년문화가 득세하면서, 남성의 좁은 경계를 침식하기 시작하였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일만 잘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더 나은 경쟁의 조건으로 외양이 강조되는 것은 이제 남성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위버섹슈얼, 메트로섹슈얼같은 유형의 언어들은 남성에게도 적용된다. 당당하게 변화하는 여성상과 맞물려 남성상이 외양과 품성에서 자기개발을 꾀하는 유니섹스 시대인 것이다.
끓어오르는 끼
정순원은 팔찌, 귀걸이 등 각종 남성 장신구류에 착안한 사람이다. 남보다 한 발 앞서서 ‘남성 주얼리’라는 표징 문구를 내걸고 주식회사 보보스를 열었다. 보보스 홈페이지는 혀를 빼물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정순원 대표의 익살스러운 자화상으로 문을 연다.
그는 여성성이나 양성성이라는 말 대신 ‘메트로섹슈얼’이라는 용어를 쓴다. 메트로섹슈얼은 1994년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심프슨이 쓴 말로 여성성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서 꾸밀 줄 아는 현대 도시 남성을 지칭했다. 그 대칭에는 영국 미래학연구소가 만들어낸 콘트라 섹슈얼이 있는데 이는 반대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콘트라와 섹슈얼을 조합한 말이다. 결혼이나 육아보다는 사회적인 성공과 높은 소득을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삼는 여성들을 가리킨 것이다. 정순원은 이런 용어 외에 요즘은 남녀 울타리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해서 독일어 전치사 ‘위버’를 붙여 위버섹슈얼이라는 용어도 쓴다고 덧붙였다.
그는 귀걸이를 하고 왔는데, 흰 얼굴에 검은 턱수염을 짧게 길러 마치 흑백의 조화를 연출한 것 같은 인상이었다.
안병찬(안) - 머리는 염색한 것인가요.
정순원(정) - 아닙니다. 새칩니다.
안 - 미혼이신가요.
정 - 저는 결혼했다가 재작년에 이혼했습니다.
안 - 이혼한 이유가 뭡니까.
정 - 제 책에서도 밝혔는데 저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입니다. 세상은 여자들에게 자꾸 강해지라고 얘기하고 남자들은 강해지는 여자를 상대할 훈련이 안돼 있지요. 표현 미숙, 관계 미숙 이런 거죠. 어이없을 만큼 과격하고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가지고 감히 결혼 생활을 영위했지요.
안 - 결혼 몇 년 만의 이혼인가요.
정 - 14년만입니다.
안 - 본인은 끓어오르는 끼를 억누르며 가부장적인 안동에서 성장했다는 표현을 했던데, 본인의 끼는 어떤 끼인가요.
정 - 안동의 가부장 문화에 구속되고 억압되니까 스프링을 누르면 튀어 오르듯이 내가 남보다 좀 튀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안동의 전통적 풍토 때문에 지난 33년 동안 여선생님은 양호선생조차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안 -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나요.
정 -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안 - 제일 잘 부르는 노래가 무엇이지요.
정 - 마르티니의 ‘무정한 마음’ 이라고. ‘카타리 카타리…’
안 - 노래를 잘하셨군요.
정 - 아니요. 저 때만해도 고향 안동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대학을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이상을 실현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이런 개념이 아니라 오로지 안동을 탈출하고 싶어서 대학을 갔지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말부터 사회에 진출했습니다. 24개월 짜리 ‘정철 영어카세트’가 초창기에 나왔는데 그 외판을 좀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제 한달 월급이 68만원이었습니다.
안 - 돈 버는 재주가 있네요.
정 - 네, 좀 수완이 있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요.
안 - ‘비디오 저널’은 어떤 식으로 만든 것입니까.
정 - 제가 젊었을 때는 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남보다 한 발 앞서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전국에는 2만 8000개의 비디오 가게가 생겨 포화상태였어요. 나는 비디오 제작회사에서 내주는 보도 자료를 받아 편집만 해서 책을 만들어 가지고 권 당 300원씩에 비디오 가게에 판 거지요.
안 - 얼마나 나갔어요.
정 - 10만 부까지 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 다음 경쟁업체들이 과열되면서 채산성이 떨어진 거죠.
비결은 ‘다홍치마’
안 - 명함에 주식회사 ‘보보스’ 대표와 ‘트렌드칼럼니스트’라는 두 가지 직명을 넣었던데, 글은 언제부터 기고했습니까.
정 - 보보스는 2001년도에 시작했고, 칼럼은 우연한 기회에 쓰게 됐습니다. 전에 남의 칼럼들을 읽으며 현실과 유리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지요. 생생한 글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 본 거죠. 2005년에 경향신문에 연재했습니다.
안 - 칼럼 이름이 영어로 ‘멘스 그루밍(Men’s Grooming)’이던데요.
정 - 네, 남자의 몸차림이라는 뜻입니다.
안 - ‘대박과 피박 사이 비결은 다홍치마다’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읽었어요. 외모지상주의 관점 아닌가요.
정 - 외양은 패션과 마케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아 ‘개성지상주의’로 부르고 싶어요.
안 - 미국에서 잘생긴 꽃 미남이 연봉을 5퍼센트 더 많이 받고 키가 큰 시이오(CEO)가 더 인정받는다는 통계가 나왔던 데요.
정 - 그렇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 생긴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스포츠 스타마저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영국 축구선수 베컴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여성들은 항상 꽃 미남을 좋아해 왔지요.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결국 개성주의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안 - ‘넥타이를 잘라라’ 라는 저서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정 - 멋진 남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남성들이여, 이제 잃어버린 공작새의 본능을 되찾자’는 구호도 썼습니다. 매스미디어가 트렌드세터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1 대 1 매체가 생겼기 때문에 개성이 창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안 - 영화 ‘섹스 앤드 시티’의 사만다 존스는 콘트라섹슈얼이라고 지칭하셨던데, 앞으로 사만다 존스같은 유형의 여성이 계속 강세라고 생각하세요.
정 - 그렇지요. 한 조사기관에서 리서치 한 결과 한국은 여성의 61퍼센트가 자신이 콘트라섹슈얼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본고장인 영국은 36퍼센트가 그렇게 대답했구요. 우리나라 여성이 더 억압되어 있는 거죠.
미스터 뷰티의 힘
안 - 어떤 사람은 메트로 섹슈얼같은 양성성의 추세를 남성의 쇠퇴라고 보던데.
정 - 제가 말하는 양성성의 의미는 왜곡된 남성성, 왜곡된 가부장제를 버리자는 의미의 양성성인 것이지요. 다소 보수적인 분들 입장에서는 요즘의 변화가 경박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분들은 그것이 주는 창조성을, 생산성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요. 남성, 여성이 아닌 휴먼으로 봐야지요.
안 - 주식회사 보보스의 홈페이지와 정 대표의 개인 블로그를 봤어요.
정 - 내가 대학원을 간 것은 마케팅과 브랜딩의 이론을 배우고 싶어서였지요. 한국에서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조사를 해봤어요. 딱 두 가지 업종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술이었고 다른 하나가 보석이었습니다. 보석 업계는 오너가 모두 기술자 출신입니다. 새로운 창조가 없습니다. 귀금속은 많지만, 패션브랜딩 한 제품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줄리엣 미니골드같은 것은 유통회사이고 보보스는 제작까지 하는 브랜드화한 회사입니다.
안 - 왜 ‘보보스’라는 이름을 지었나요.
정 - 영어 활자 bobos의 디자인이 좋았어요. b-o-b-o-s 라는 스펠링이 좋았습니다. 그 안에 내포된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느낌은 2차 적인 것입니다.
안 - 품목이 다양하던데, 누가 디자인합니까.
정 - 젊은 남성 디자이너로 보석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합니다.
안 - 솜씨는.
정 - 매우 뛰어납니다. 서울산업대 오원택 교수님에게 부탁을 드려 금속공예학과에서 가르친 제자를 추천 받았지요. 다른 업체의 수석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젊은이를 스카웃한 거죠.
안 - 정 대표는 감성연출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 - 지금은 3에프(f)의 시대라고 합니다. 감성(feeling), 즐거움(fun), 여성성(female)이 그것이죠. 저는 굳이 세 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성만 갖고 있으면 ‘미스터 뷰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두 에프가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죠.
안 - 미스터 뷰티는 누구의 용어인가요.
정 - 제일기획에서 만든 광고 카피에 미스터 뷰티, 미스 스트롱 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제가 가끔씩 활용합니다.
안 - 자신이 남보다 얼마나 앞섰다고 생각하나요.
정 - 보보스 남성 주얼리는 트렌드를 2~3년 정도 앞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힘들었어요. 내가 만약 현재 20대의 대학생이라면 지진공학, 지진예측의 학문을 마케팅하고 싶습니다. 일본처럼 지진대란을 겪는 나라에 그 학문을 파는 것이지요.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권력과 메트로섹슈얼
안 - 메트로섹슈얼은 정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정 - 권력도 메트로섹슈얼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동영 씨를 메트로섹슈얼의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안 -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 -먼저, 획일적인 다른 의원들의 의상과 달리 다양한 칼라와 드레시하게 코디 하는 것 같습니다.
안 - 가장 슬픈 체험은.
정 - 이혼이죠. 슬픔을 넘어 고통이죠. 잠잘 때 옆에 없는 허전함 이상입니다.
안 - 자신의 아킬러스건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 - 아직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안 - 10년 뒤의 당신 모습은.
정 - 어딘가에 매몰되어 있는 내 안에 잠재력을 끄집어내고 있겠죠. 늘 그래왔듯이….
남성의 변화는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이다. 사람이 자기를 꾸밀 줄 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경쟁력이고, 자신을 계발하고 타인과 차별화하는 것은 시대에 발맞춰 나가는 감각이라고 보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순원은 이제 남성들도 고정관념을 바꾸고 남과 다르게 액세서리를 걸쳐볼 줄 아는 의식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한다면 느린 안단테의 곡조로 흐르던 삶이 조금은 활기찬 스타카토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꽃을 든 남자’,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습니까?”
정순원은 유교의 땅 안동에서 고등학생 때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기타를 친구들에게 가르쳤으니 그 방면의 ‘선각자’가 틀림없다. 그 스스로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번뜩인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는 2001년에 6억 원을 ‘올인’하여 동교동 오피스텔에 보보스를 열었다가 곧 장벽에 부딪쳤다. 남성 액세서리 분야에서 남보다 돌출하여 너무 앞서 나간 것이다. 정순원은 3년 안에 반드시 코스닥에 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안병찬 본지 칼럼니스트
정순원은
1966년 경북 안동 생. 강릉대학교 음악학과 졸업, 중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전공. 국내 최초의 컨셉트형 남성 주얼리 (주)보보스 대표로 기업컨설턴트, 트렌드리더, 트렌드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음반회사에서 기획분야의 일을 시작한 이래, 체인분야 야외용 도시락 따시락과 스크래치카드 알라딘을 기획하여 브랜드 분야의 감각을 보였다. 남성들이 전 세계적인 흐름인 ‘메트로섹슈얼(꽃미남)’ 현상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풍토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지금 당장 넥타이를 잘라라’(2005년 1월)와 ‘담배 피우는 여자 vs 우는 남자’(2005년 11월)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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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고 그 세가 확대되면서, 1980년대 이후 동성애와 같은 새로운 성을 지닌 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1990년대 이후 이에 대한 편견없는 청년문화가 득세하면서, 남성의 좁은 경계를 침식하기 시작하였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일만 잘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더 나은 경쟁의 조건으로 외양이 강조되는 것은 이제 남성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위버섹슈얼, 메트로섹슈얼같은 유형의 언어들은 남성에게도 적용된다. 당당하게 변화하는 여성상과 맞물려 남성상이 외양과 품성에서 자기개발을 꾀하는 유니섹스 시대인 것이다.
끓어오르는 끼
정순원은 팔찌, 귀걸이 등 각종 남성 장신구류에 착안한 사람이다. 남보다 한 발 앞서서 ‘남성 주얼리’라는 표징 문구를 내걸고 주식회사 보보스를 열었다. 보보스 홈페이지는 혀를 빼물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정순원 대표의 익살스러운 자화상으로 문을 연다.
그는 여성성이나 양성성이라는 말 대신 ‘메트로섹슈얼’이라는 용어를 쓴다. 메트로섹슈얼은 1994년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심프슨이 쓴 말로 여성성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서 꾸밀 줄 아는 현대 도시 남성을 지칭했다. 그 대칭에는 영국 미래학연구소가 만들어낸 콘트라 섹슈얼이 있는데 이는 반대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콘트라와 섹슈얼을 조합한 말이다. 결혼이나 육아보다는 사회적인 성공과 높은 소득을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삼는 여성들을 가리킨 것이다. 정순원은 이런 용어 외에 요즘은 남녀 울타리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해서 독일어 전치사 ‘위버’를 붙여 위버섹슈얼이라는 용어도 쓴다고 덧붙였다.
그는 귀걸이를 하고 왔는데, 흰 얼굴에 검은 턱수염을 짧게 길러 마치 흑백의 조화를 연출한 것 같은 인상이었다.
안병찬(안) - 머리는 염색한 것인가요.
정순원(정) - 아닙니다. 새칩니다.
안 - 미혼이신가요.
정 - 저는 결혼했다가 재작년에 이혼했습니다.
안 - 이혼한 이유가 뭡니까.
정 - 제 책에서도 밝혔는데 저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입니다. 세상은 여자들에게 자꾸 강해지라고 얘기하고 남자들은 강해지는 여자를 상대할 훈련이 안돼 있지요. 표현 미숙, 관계 미숙 이런 거죠. 어이없을 만큼 과격하고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가지고 감히 결혼 생활을 영위했지요.
안 - 결혼 몇 년 만의 이혼인가요.
정 - 14년만입니다.
안 - 본인은 끓어오르는 끼를 억누르며 가부장적인 안동에서 성장했다는 표현을 했던데, 본인의 끼는 어떤 끼인가요.
정 - 안동의 가부장 문화에 구속되고 억압되니까 스프링을 누르면 튀어 오르듯이 내가 남보다 좀 튀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안동의 전통적 풍토 때문에 지난 33년 동안 여선생님은 양호선생조차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안 -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나요.
정 -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안 - 제일 잘 부르는 노래가 무엇이지요.
정 - 마르티니의 ‘무정한 마음’ 이라고. ‘카타리 카타리…’
안 - 노래를 잘하셨군요.
정 - 아니요. 저 때만해도 고향 안동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대학을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이상을 실현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이런 개념이 아니라 오로지 안동을 탈출하고 싶어서 대학을 갔지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말부터 사회에 진출했습니다. 24개월 짜리 ‘정철 영어카세트’가 초창기에 나왔는데 그 외판을 좀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제 한달 월급이 68만원이었습니다.
안 - 돈 버는 재주가 있네요.
정 - 네, 좀 수완이 있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요.
안 - ‘비디오 저널’은 어떤 식으로 만든 것입니까.
정 - 제가 젊었을 때는 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남보다 한 발 앞서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전국에는 2만 8000개의 비디오 가게가 생겨 포화상태였어요. 나는 비디오 제작회사에서 내주는 보도 자료를 받아 편집만 해서 책을 만들어 가지고 권 당 300원씩에 비디오 가게에 판 거지요.
안 - 얼마나 나갔어요.
정 - 10만 부까지 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 다음 경쟁업체들이 과열되면서 채산성이 떨어진 거죠.
비결은 ‘다홍치마’
안 - 명함에 주식회사 ‘보보스’ 대표와 ‘트렌드칼럼니스트’라는 두 가지 직명을 넣었던데, 글은 언제부터 기고했습니까.
정 - 보보스는 2001년도에 시작했고, 칼럼은 우연한 기회에 쓰게 됐습니다. 전에 남의 칼럼들을 읽으며 현실과 유리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지요. 생생한 글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 본 거죠. 2005년에 경향신문에 연재했습니다.
안 - 칼럼 이름이 영어로 ‘멘스 그루밍(Men’s Grooming)’이던데요.
정 - 네, 남자의 몸차림이라는 뜻입니다.
안 - ‘대박과 피박 사이 비결은 다홍치마다’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읽었어요. 외모지상주의 관점 아닌가요.
정 - 외양은 패션과 마케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아 ‘개성지상주의’로 부르고 싶어요.
안 - 미국에서 잘생긴 꽃 미남이 연봉을 5퍼센트 더 많이 받고 키가 큰 시이오(CEO)가 더 인정받는다는 통계가 나왔던 데요.
정 - 그렇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 생긴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스포츠 스타마저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영국 축구선수 베컴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여성들은 항상 꽃 미남을 좋아해 왔지요.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결국 개성주의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안 - ‘넥타이를 잘라라’ 라는 저서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정 - 멋진 남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남성들이여, 이제 잃어버린 공작새의 본능을 되찾자’는 구호도 썼습니다. 매스미디어가 트렌드세터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1 대 1 매체가 생겼기 때문에 개성이 창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안 - 영화 ‘섹스 앤드 시티’의 사만다 존스는 콘트라섹슈얼이라고 지칭하셨던데, 앞으로 사만다 존스같은 유형의 여성이 계속 강세라고 생각하세요.
정 - 그렇지요. 한 조사기관에서 리서치 한 결과 한국은 여성의 61퍼센트가 자신이 콘트라섹슈얼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본고장인 영국은 36퍼센트가 그렇게 대답했구요. 우리나라 여성이 더 억압되어 있는 거죠.
미스터 뷰티의 힘
안 - 어떤 사람은 메트로 섹슈얼같은 양성성의 추세를 남성의 쇠퇴라고 보던데.
정 - 제가 말하는 양성성의 의미는 왜곡된 남성성, 왜곡된 가부장제를 버리자는 의미의 양성성인 것이지요. 다소 보수적인 분들 입장에서는 요즘의 변화가 경박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분들은 그것이 주는 창조성을, 생산성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요. 남성, 여성이 아닌 휴먼으로 봐야지요.
안 - 주식회사 보보스의 홈페이지와 정 대표의 개인 블로그를 봤어요.
정 - 내가 대학원을 간 것은 마케팅과 브랜딩의 이론을 배우고 싶어서였지요. 한국에서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조사를 해봤어요. 딱 두 가지 업종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술이었고 다른 하나가 보석이었습니다. 보석 업계는 오너가 모두 기술자 출신입니다. 새로운 창조가 없습니다. 귀금속은 많지만, 패션브랜딩 한 제품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줄리엣 미니골드같은 것은 유통회사이고 보보스는 제작까지 하는 브랜드화한 회사입니다.
안 - 왜 ‘보보스’라는 이름을 지었나요.
정 - 영어 활자 bobos의 디자인이 좋았어요. b-o-b-o-s 라는 스펠링이 좋았습니다. 그 안에 내포된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느낌은 2차 적인 것입니다.
안 - 품목이 다양하던데, 누가 디자인합니까.
정 - 젊은 남성 디자이너로 보석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합니다.
안 - 솜씨는.
정 - 매우 뛰어납니다. 서울산업대 오원택 교수님에게 부탁을 드려 금속공예학과에서 가르친 제자를 추천 받았지요. 다른 업체의 수석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젊은이를 스카웃한 거죠.
안 - 정 대표는 감성연출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 - 지금은 3에프(f)의 시대라고 합니다. 감성(feeling), 즐거움(fun), 여성성(female)이 그것이죠. 저는 굳이 세 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성만 갖고 있으면 ‘미스터 뷰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두 에프가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죠.
안 - 미스터 뷰티는 누구의 용어인가요.
정 - 제일기획에서 만든 광고 카피에 미스터 뷰티, 미스 스트롱 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제가 가끔씩 활용합니다.
안 - 자신이 남보다 얼마나 앞섰다고 생각하나요.
정 - 보보스 남성 주얼리는 트렌드를 2~3년 정도 앞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힘들었어요. 내가 만약 현재 20대의 대학생이라면 지진공학, 지진예측의 학문을 마케팅하고 싶습니다. 일본처럼 지진대란을 겪는 나라에 그 학문을 파는 것이지요.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권력과 메트로섹슈얼
안 - 메트로섹슈얼은 정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정 - 권력도 메트로섹슈얼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동영 씨를 메트로섹슈얼의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안 -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 -먼저, 획일적인 다른 의원들의 의상과 달리 다양한 칼라와 드레시하게 코디 하는 것 같습니다.
안 - 가장 슬픈 체험은.
정 - 이혼이죠. 슬픔을 넘어 고통이죠. 잠잘 때 옆에 없는 허전함 이상입니다.
안 - 자신의 아킬러스건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 - 아직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안 - 10년 뒤의 당신 모습은.
정 - 어딘가에 매몰되어 있는 내 안에 잠재력을 끄집어내고 있겠죠. 늘 그래왔듯이….
남성의 변화는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이다. 사람이 자기를 꾸밀 줄 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경쟁력이고, 자신을 계발하고 타인과 차별화하는 것은 시대에 발맞춰 나가는 감각이라고 보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순원은 이제 남성들도 고정관념을 바꾸고 남과 다르게 액세서리를 걸쳐볼 줄 아는 의식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한다면 느린 안단테의 곡조로 흐르던 삶이 조금은 활기찬 스타카토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꽃을 든 남자’,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습니까?”
정순원은 유교의 땅 안동에서 고등학생 때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기타를 친구들에게 가르쳤으니 그 방면의 ‘선각자’가 틀림없다. 그 스스로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번뜩인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는 2001년에 6억 원을 ‘올인’하여 동교동 오피스텔에 보보스를 열었다가 곧 장벽에 부딪쳤다. 남성 액세서리 분야에서 남보다 돌출하여 너무 앞서 나간 것이다. 정순원은 3년 안에 반드시 코스닥에 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안병찬 본지 칼럼니스트
정순원은
1966년 경북 안동 생. 강릉대학교 음악학과 졸업, 중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전공. 국내 최초의 컨셉트형 남성 주얼리 (주)보보스 대표로 기업컨설턴트, 트렌드리더, 트렌드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음반회사에서 기획분야의 일을 시작한 이래, 체인분야 야외용 도시락 따시락과 스크래치카드 알라딘을 기획하여 브랜드 분야의 감각을 보였다. 남성들이 전 세계적인 흐름인 ‘메트로섹슈얼(꽃미남)’ 현상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풍토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지금 당장 넥타이를 잘라라’(2005년 1월)와 ‘담배 피우는 여자 vs 우는 남자’(2005년 11월)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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