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업체 제이유가 앗아간 28년 교직인생

지역내일 2006-05-19
2억대 빚 여교사, 남편 폭행으로 사망
지인들 “시키는 대로 했던 착한 사람”

다단계업체 제이유그룹의 사기마케팅이 반평생을 교직에 몸 담아온 50대 초등학교 여교사의 삶을 앗아갔다.
지난 17일 오전 10시 35분쯤 부산 ㅅ초등학교 보건교사인 박 모(56)씨가 온몸에 멍이 든 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박씨는 남편 윤 모(53)씨에게 폭행을 당해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숨지기 직전까지 27년 11개월 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박씨는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2억5000만원이라는 거액을 제이유에 투자했지만 남은 것은 쓸모없는 저급 물건뿐이었다.

◆쌈짓돈으로 시작한 사업 비극 불러 = 박씨가 제이유네트워크 다단계 사업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해 4월. 그전까지 다단계의 ‘다’자도 몰랐던 박씨였지만 노후를 대비한 여유자금을 불리라는 지인의 권유로 그동안 아껴 모은 2000여만원 쌈짓돈을 제이유에 투자했다. 처음 얼마간은 회사가 약속한 수당이 제때 나왔고 박씨는 ‘이런 게 재테크구나’ 싶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수당 지급이 시들해졌고 회사측은 수당지급을 조건으로 계속적인 매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2번의 대출을 통해 1억5000여만원을 투자, 소비생활점수를 쌓아 갔지만 결국 지난해말 회사는 문을 닫았고 수당지급을 끊었다. 교사 월급 300여만원을 모두 대출 이자로 갚는 악순환을 겪던 박씨는 결국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했다.
박씨는 지난 4월 20일 남편 몰래 마지막 남은 집을 담보로 7600만원을 빌려 한꺼번에 물건을 구매했다. 회사측 설명대로라면 매일 100만원가량의 수당이 나와야 했다. 이 돈으로 일단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간다는 게 박씨의 계산이었으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약속과 달리 투자 직후에조차 수당은 나오지 않았다.
불안감에 떨던 박씨는 고민끝에 지난 16일 저녁 남편에게 그동안의 일을 상세히 털어놨다. 6년 전 재혼했던 박씨 부부는 소문난 잉꼬부부로 남들의 부러움을 사온 사이였다. 하지만 다단계 사기에 2억원이 넘는 빚을 졌다는 아내의 고백에 남편 윤씨의 이성은 마비됐다.
윤씨는 술에 잔뜩 취해 박씨를 폭행했고 결국 박씨는 다음날 아침 숨을 거뒀다. 경찰은 28일 박씨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업체가 하라면 뭐든지 다했다” = 박씨를 제이유 사업에 이끈 지인 김 모(여·50)씨에 따르면 박씨는 ‘업체의 말이라면 뭐든지 믿었던 사람’이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다단계사업에서는 착한 학생이었던 셈이다.
올해 들어 제이유의 실체가 벗겨지면서 대부분의 기존 사업자가 투자를 중지한 채 사태를 관망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박씨는 업체이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 ㅅ초등학교의 한 동료 교사는 “참 성실하고 인정이 많았으며 항상 검소한 옷차림으로 생활하신 분이었다”며 “다단계로 인해 거액의 빚을 졌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힌다”고 말했다.
지인 김씨는 “박씨를 다단계에 끌어들인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며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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