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중심 사회가 병리 뿌리

일제부터 정화과정 없이 이어온 가치질서가 소비향락 원인

지역내일 2001-02-22 (수정 2001-02-22 오후 11:06:16)
검찰은 청소년들의 가출이 연간 1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의 상당수
는 원조교제 유혹을 상대적으로 쉽게 받는 처지에 있다.
3개월간 60∼70여명의 성인남자와 원조교제를 해 파장을 불러일으킨 여고중퇴생 K양은 가
출 청소년이었다. K양의 삶의 발자취는 시사하는 것이 많다. K양은 생활고로 부모가 이혼, 편
부 밑에서 살았다. 경제파탄이 가정파탄을 불러왔고, 가정파탄이 그를 비뚤어진 길로 내몰았
다.
그는 경찰에서 핸드폰과 좋은 신발을 갖고 싶었다고 밝혔다. 핸드폰을 갖지 못한 스스로를
‘왕따’했다. 그는 순결을 버리고 핸드폰을 샀다. 소비·향락주의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다. 그는 가출 후 본격적인 원조교제 길로 접어들었다.
K양처럼 핸드폰 등 갖고 싶은 물건 때문에 순결을 버리는 10대들은 보기 드문 풍조가 아니
다. 또래그룹에서 뒤지고 싶지 않은 욕구는 그들에게 탈선을 부추긴다. 물론 그들의 비뚤어
진 성을 주도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어른이다.
원조교제는 우리 사회에서 더이상 드문 병리현상이 아니다. 검찰은 당초 청소년과 원조교제
를 한 성인남자들을 모두 구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연루자가 워낙 많아 의지가 흔들리
고 있다.
청소년과 원조교제를 맺는 어른들은 나이 계층 등 구분이 없다. 인기탤런트에서 파출소장,
농협조합장, 대학생 등 수두룩하다. 모 국회의원은 한 10대 소녀와 2년여간 원조교제를 맺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인이 된 그녀는 강남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고 있다.
또 음란사이트가 수백개에 이르고, 사이트의 운영이나 접속은 모두 10대가 주도하고 있는 것
으로 드러나고 있다. 폭탄사이트도 10대가 개설해 충격을 주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병리현상의 원인을 다양하게 진단하고 있으나 소비향락주의로 바라보는 시
각에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또 남보다 튀고 싶은 욕구도 한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해킹으로 문제가 된 한 청소년은 “이 사회를 갖고 놀고 싶었다”고 말해 수사관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미국 일본 등에서 발화된 유행이 우리나라에서 훨씬 폭발적으로 번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
다. 배꼽티 유행, 필라나 나이키 등 브랜드주의가 그랬고 음란사이트, 원조교제도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음란사이트나 원조교제는 일본이 우리보다 5∼10년 앞
서 문제되기 시작했으나 그 정도는 우리가 훨씬 심각하다”고 밝혔다.
학교성적을 곧바로 학생의 능력과 대입하는 잘못된 실적주의는 개성을 추구하는 10대들의
욕구를 억눌러 내면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억누름이 크면 클수록 내면은 크게 곪아 폭
발성 즉 반발성도 함께 키운다. 반발성은 튀고 싶다는 욕구와 끈이 닿아있고, 그들은 남다른
소비에서 자신을 돋보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인터넷 문화를 양적 팽창, 즉 하드웨어 중심으로 끌어왔다. 인터넷 보급률을 정
보의 입수나 관리보다 훨씬 중시했다. 그 결과는 인터넷 활용의 올바른 문화환경을 만들어내
지 못하고, 음란사이트나 채팅 등을 통한 원조교제와 같은 부작용을 키웠다고 전문가들은 바
라보고 있다. 역시 소비향락 주의와 맥이 닿아 있다.
배정원 내일문화센터 아우성상담부장은 “일제시대부터 친일파와 같은 부패계층들을 정화하
지 않은 채 줄곧 기득권을 허용한 결과 금력과 권력이 최고의 성공잣대가 되고 있다”면서 “이
런 시스템 때문에 기성세대나 10대 모두 지도층에 승복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공황 속에서 소
비향락주의의 병리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바로 정신적인 가치질서보다 물질을 중
시하는 하드웨어 중심사회가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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