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가사노동의 가치(이정희 2006.06.07)

지역내일 2006-06-06
가사노동의 가치
이정희 (공인회계사,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대표)

“20대인 K씨는 결혼을 앞두고 아파트를 개조해 부엌을 없애자는 약혼자의 제안에 망연자실해졌다.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재미로 일생을 살았던 그의 어머니와 달리 약혼자는 자기 일에 강한 성취욕을 보이며 부엌일 따위에 인생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부부간의 ‘권력’이동과 가사노동의 분담 등을 다룬 한 시사잡지의 최근호에 실린 구절이다.

가사 노동의 중요성에 대한인식이 제고되면서 이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는 근로소득에서 공제되는 배우자공제액을 크게 올리자는 입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제도에 반영하자는 취지였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산정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 지 등을 정리해 보자.

얼마 전만 해도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산정에 대하여 어머니들의 숭고한 노동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는 보수적인 반박이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야 할 필요성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가사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제쳐 놓더라도 당장 손해배상이나 재산분할 등의 영역에서 만만치 않은 사안이 존재한다. 예컨대 전업 주부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통상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소득액에 기초하여 보상을 받는데, 이는 실제로 주부가 하는 일의 내용이나 주부의 개인 능력에 무관하게 일괄 적용되어 구체적 적합성 결여라는 문제를 낳는다. 가사노동자의 이혼 시에 상황은 좀 더 심각해진다. 판례를 보면 전업주부의 경우 재산분할 비율이 30%를 넘기 힘들다. 이런 맥락에서 가사노동 고유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측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필요성과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추세이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으로는 기회 비용법, 총합적 대체법 및 전문가 대체법 등이 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전업주부의 소득은 연봉 기준으로 약 3000만원이라고 한다. 이는 전업주부의 1일 평균 가사노동시간에 5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시간당 평균 임금과 연평균 근무일수를 곱해 산정한 것이다. 이는 기회비용을 원용한 것인데, 가사노동의 가치가 성별, 연령, 숙련도 등 주요 임금결정 요소를 고려하여 일반노동시장에서 기대되는 임금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과대평가될 우려가 있다. 한편 총합적 대체법은 가사노동을 하나의 직업으로 간주, 가정에서 상응하는 한 명의 직업인을 고용한다고 가정하여 산정하는 방식이다. 계산이 용이하지만 대체직 선정의 난점이 있는 방법이다. 예컨대 가정부를 대체직으로 선정하면 과소 계상될 우려가 있고, 종합관리자(가사노동을 요리, 육아 및 가정의 미래설계 등 총체적 가정관리로 이해)를 대체직으로 보면 과대 계상의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양 방법의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이 전문가 대체법인 데, 이는 가사노동의 내용을 노동의 내용, 필요 능력 및 노동강도 등을 고려하여 몇 가지 소 그룹으로 구분한 다음 소 그룹별 가사노동시간에 대체직종의 평균 임금액과 근로시간을 곱하여 가사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어떤 방법을 적용하여 가치를 측정하느냐의 기술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가사노동의 내용과 긴장도 등에 따라 요구되는 노동 강도와 능력을 합리적으로 분류, 측정하여 이를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가사노동의 가치 인정이라는 사회적 화두에 대한 인식론적 차이에 주목하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 현행 관련 법률상의 배우자공제 제도나 재산분할 제도 등을 탄생시킨 사회적 가치관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별 분업 가족의 우위성에 대한 인정, 남성부양자 세대의 유지 등 기존 남성우위적 성별 분업구조를 전제하고 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제도라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든 그동안 사회적 평가 대상이 되지 못했던 가사노동에 대한 의의를 재발견하고, 합리적으로 측정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가사노동과 관련된 현행 제도들이 갖고 있는 인식론적 측면에 대한 사회적 성찰의 중요성 역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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