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게놈연구 혜택 모두 누려야
이 원 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인간게놈지도 완성”이라는 표제의 기사가 한바탕 신문지면을 휩쓸고 지나갔다. 한편에선 10만여 개로 추정했던 인간 유전자의 수가 3만5천개 정도로 초파리의 유전자 1만3601개에 비해 2~3배에 불과할 것이라는 HGP와 셀레라 게노믹스사의 공통된 예측이 나오면서, 인간의 독보적인 우월성에 대한 일말의 절망감이 표출되기도 했다.
사실 작년 6월에는 95%, 그리고 이번에는 99%의 진척을 보였을 뿐이고 이 99%에 대한 오류의 검증도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완성”이라는 말은 아직 성급한 표현이다.
게놈연구 혜택까지 멀고도 험 하다
게놈초안의 발표에 따라 이제는 후게놈시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후게놈시대(프로테옴 시대)란 게놈지도의 DNA염기서열을 바탕으로 미지의 인간 유전자를 찾아내고, 또 밝혀진 유전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드는지, 그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은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서 질병의 원인을 추적할 수 있고, 난치병 치료제 개발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특히 개인·인종·환자간 유전자의 차이와 기능을 규명한다면, 유전질환의 예측과 개인별 맞춤의학도 가능해지며, 유전자요법의 개선 등 무병장수를 향한 획기적인 의학적 진전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폐 질환 유전자를 분리하는데 10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2주일 안에 분리할 정도로 유전병 연구에 가속도를 가한 점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현재 인간 유전자 가운데 40%는 그 기능조차 모르고 있으며, 기억·노화 등 인간의 신체·정신적 현상에 대한 이해와, 수천 개에 이르는 유전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4가지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DNA에 비해 20가지의 아미노산이 결합해 만드는 단백질의 구조는 훨씬 복잡할 뿐더러 변형도 잦기 때문에 게놈연구의 혜택이 실현되기까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 남아있다. 미국 국립게놈연구센터의 프란시스 콜린스 소장은 앞으로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희망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인간게놈연구는 초보단계이다. 미국을 100으로 보았을 때 한국은 40% 수준에 머물고 있어 안타까움이 적지 않다. 정부와 바이오벤처는 선진국이 손대지 않는 틈새부분을 공략해서 후발주자로서의 열세를 만회하겠다는 전략이지만, 결국 대세의 중심에 서기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선진국은 게놈지도를 시작하는 시점과 거의 동시에 후게놈시대를 준비해 왔다. 그런 선진국이 지금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틈새전략이니 … 등은 궁여지책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더구나 게놈연구의 초기단계에 비하여 임상실험이 필요한 신약개발 등 산업화 단계에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넘어야 할 산은 첩첩이다. 코앞의 문제만 붙들고 우왕좌왕하는 비전부재의 과학정책도 심각한 문제다.
인종차별 가능성 내포한 소수집단연구
차치하고라도, 게놈연구를 통한 암의 정복과 무병장수 등 쏟아지는 낙관적 관측 이면에 발생할 심각한 도덕적·법률적 딜레마 현상에 대한 우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전정보를 통해 개인의 질병, 성격, 행동양식과 수명까지 예측 가능할 경우 개인의 유전정보 공개는 취업과 결혼 등 사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특히 소수인종집단에 대한 유전적 연구는 ‘새로운 인종 차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유전자의 우열에 따른 사회적 차별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질병의 조기진단 및 예측은 어쩌면 건강에 대한 불안만 가중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무병장수 혜택의 대상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일까? 막대한 예산이 투자된 게놈연구가 빈부의 격차를 떠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고루 혜택을 줄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소수 특혜자들을 위해 이토록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며 지나친 소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각종 어린이 질병에 대한 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수백 수천만의 제3세계의 어린이 환자들이 받는 혜택은 미미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신의 이익이 앞설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경제논리에서 첨단과학의 발전은 강자의 이익을 위한 시녀가 되고, 전체 인류에 대한 봉사적 성격은 생색에 그칠 공산이 크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엄청난 투자예산에 대하여 장차 엄청난 치료비를 내야 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 될 것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공동체 다수의 혜택을 향한 성숙한 시각과 사회의식이 없는 인간게놈연구는 결코 21세기 하늘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원 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신문로>
이 원 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인간게놈지도 완성”이라는 표제의 기사가 한바탕 신문지면을 휩쓸고 지나갔다. 한편에선 10만여 개로 추정했던 인간 유전자의 수가 3만5천개 정도로 초파리의 유전자 1만3601개에 비해 2~3배에 불과할 것이라는 HGP와 셀레라 게노믹스사의 공통된 예측이 나오면서, 인간의 독보적인 우월성에 대한 일말의 절망감이 표출되기도 했다.
사실 작년 6월에는 95%, 그리고 이번에는 99%의 진척을 보였을 뿐이고 이 99%에 대한 오류의 검증도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완성”이라는 말은 아직 성급한 표현이다.
게놈연구 혜택까지 멀고도 험 하다
게놈초안의 발표에 따라 이제는 후게놈시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후게놈시대(프로테옴 시대)란 게놈지도의 DNA염기서열을 바탕으로 미지의 인간 유전자를 찾아내고, 또 밝혀진 유전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드는지, 그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은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서 질병의 원인을 추적할 수 있고, 난치병 치료제 개발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특히 개인·인종·환자간 유전자의 차이와 기능을 규명한다면, 유전질환의 예측과 개인별 맞춤의학도 가능해지며, 유전자요법의 개선 등 무병장수를 향한 획기적인 의학적 진전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폐 질환 유전자를 분리하는데 10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2주일 안에 분리할 정도로 유전병 연구에 가속도를 가한 점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현재 인간 유전자 가운데 40%는 그 기능조차 모르고 있으며, 기억·노화 등 인간의 신체·정신적 현상에 대한 이해와, 수천 개에 이르는 유전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4가지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DNA에 비해 20가지의 아미노산이 결합해 만드는 단백질의 구조는 훨씬 복잡할 뿐더러 변형도 잦기 때문에 게놈연구의 혜택이 실현되기까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 남아있다. 미국 국립게놈연구센터의 프란시스 콜린스 소장은 앞으로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희망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인간게놈연구는 초보단계이다. 미국을 100으로 보았을 때 한국은 40% 수준에 머물고 있어 안타까움이 적지 않다. 정부와 바이오벤처는 선진국이 손대지 않는 틈새부분을 공략해서 후발주자로서의 열세를 만회하겠다는 전략이지만, 결국 대세의 중심에 서기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선진국은 게놈지도를 시작하는 시점과 거의 동시에 후게놈시대를 준비해 왔다. 그런 선진국이 지금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틈새전략이니 … 등은 궁여지책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더구나 게놈연구의 초기단계에 비하여 임상실험이 필요한 신약개발 등 산업화 단계에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넘어야 할 산은 첩첩이다. 코앞의 문제만 붙들고 우왕좌왕하는 비전부재의 과학정책도 심각한 문제다.
인종차별 가능성 내포한 소수집단연구
차치하고라도, 게놈연구를 통한 암의 정복과 무병장수 등 쏟아지는 낙관적 관측 이면에 발생할 심각한 도덕적·법률적 딜레마 현상에 대한 우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전정보를 통해 개인의 질병, 성격, 행동양식과 수명까지 예측 가능할 경우 개인의 유전정보 공개는 취업과 결혼 등 사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특히 소수인종집단에 대한 유전적 연구는 ‘새로운 인종 차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유전자의 우열에 따른 사회적 차별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질병의 조기진단 및 예측은 어쩌면 건강에 대한 불안만 가중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무병장수 혜택의 대상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일까? 막대한 예산이 투자된 게놈연구가 빈부의 격차를 떠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고루 혜택을 줄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소수 특혜자들을 위해 이토록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며 지나친 소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각종 어린이 질병에 대한 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수백 수천만의 제3세계의 어린이 환자들이 받는 혜택은 미미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신의 이익이 앞설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경제논리에서 첨단과학의 발전은 강자의 이익을 위한 시녀가 되고, 전체 인류에 대한 봉사적 성격은 생색에 그칠 공산이 크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엄청난 투자예산에 대하여 장차 엄청난 치료비를 내야 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 될 것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공동체 다수의 혜택을 향한 성숙한 시각과 사회의식이 없는 인간게놈연구는 결코 21세기 하늘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원 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신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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