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여성할례도 ‘문화’로 봐야 할까

문명과 야만을 뛰어넘는 문화인류학 이야기

지역내일 2006-04-17
문명과 야만을 넘어서 문화읽기
이태주 지음 /프로네시스/9000원

사례1. 독일을 뒤흔든 사건
2005년 2월, 터키계 이민 2세인 하툰 수루쿠(여)가 베를린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머리와 상반신에 여러발의 총상을 입었다. 놀랍게도 범인은 피해자의 남자 형제 3명으로 밝혀졌다.
그해 9월 재판이 시작되면서 독일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첫째 형제는 총기를 구했고 둘째는 여동생을 유인했으며 막내인 셋째가 방아쇠를 당겼다. 막내는 이 일이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우겼다. 미성년인 막내의 경우 유죄를 인정받더라도 10년 이하의 형을 받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무슬림식 ‘명예살인’이었다. 독일에서 태어난 수루쿠가 이슬람 전통 생활방식을 버리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에 형제들이 ‘죽음’으로 응징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최근 9년 동안 이같은 명예살인이 49건이나 일어났다.

사례2. 할례받는 수단 여성들
유엔의 추정에 따르면 전세계 1억3000만명의 여성들이 ‘할례’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지금도 매년 200만명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여성 할례는 1·2·3유형이 있는데, 제1유형은 클리토리스만 제거하는 것이고 제2유형은 클리토리스와 내음순을, 제3유형은 외음순까지 모두 제거한 후 배뇨와 생리를 위한 작은 구멍만 남기고 꿰매버리는 방식이다.
제3유형은 주로 소말리아와 수단 등지에서 행해지는데 할례 과정에서 매우 심각한 고통을 준다. 이런 할례를 당한 여성들은 남편과의 섹스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임신한 여성이 연필구멍만한 질 때문에 개봉수술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어도 이런 할례를 받게 한다. 할례를 받아야 ‘순결해지는’ 이들의 전통 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고 있는 이런 무자비한 성적 폭력과 반인륜적 관습을 그냥 두어야 할까.

사례3. 티벳의 일처다부제
네팔 북서부의 티벳 고산지대 사람들은 두서너명의 형제가 한명의 아내를 공유하는 독특한 결혼제도를 갖고 있다. 이들은 일부일처나 일부다처가 아닌 일처다부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내는 모든 형제를 동등하게 대하며 자식이 어떤 형제의 자식인지도 따지지 않는다. 아이들도 누가 자신의 친부인지 따지지 않고 모두를 ‘아버지’라 부른다.
이런 혼인방식은 척박한 환경에서 식구 수를 많이 늘리지 않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부인이 많으면 그 수만큼 아이를 낳지만, 남편이 아무리 많더라도 부인이 1명이면 1년에 한명의 아이만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왜 아내를 공유하는가’ 물으면 대답은 간단하다. “이렇게 하면 가족과 가축, 재산이 흩어지지 않고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사례를 놓고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인류학적 관점에서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은 옳다. 그렇지만 도덕적·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문화는 분명히 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옳지 않은’ 문화는 무엇인가. 그 기준과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다시 서구의 보편적 윤리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윤리와 보편적 가치도 모두 상대화되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지금도 진행 중인 문화와 보편가치 사이의 어려운 논쟁이다.
이 문제에 관해 인류학자 로렌스 해리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생명은 죽음보다 낫다/ 건강은 질병보다 낫다/ 자유는 노예신분보다 낫다/ 번영은 가난보다 낫다/ 교육은 무지보다 낫다/ 정의는 불공정보다 낫다.”

◆‘흉내내기’에 몰두하는 한국 =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적으로 한국사회만큼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사례도 드물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출산율이 최저로 바뀌었고, 최저의 이혼율이 최고로 바뀌었다. 거리에는 서구식 성형 미인들이 넘쳐난다. 머리털도 함부로 자르지 못했던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의 유교국가가 세계 최고의 성형수술 국가로 바뀌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 학자들은 한국의 이같은 ‘문화 폭발’ 현상에 놀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서구를 너무 의식하는 게 아니냐’고 조언한다. 지금도 우리는 식민지 정신의 근원인 ‘따라하고 흉내내기’에 여전히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세기 전, 이미 세계인이었던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문화가 자유롭게 오고 가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에 의해서라도 강제받고 싶지는 않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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