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개별 상황 인정 안돼 이중피해
보험사·법원 위자료 폭넓게 해석해야
지난 연말 교통사고를 당해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은 자영업자 A씨. 3주간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후에는 통원치료를 받으며 몸은 거의 회복됐고 보험 처리는 깔끔하게 마무리 됐다. 입원비나 통원치료비, 일을 쉬는 동안의 수입까지 부족하지만 다 받게 됐다.
그러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 아내 회사 송년회를 비롯해 부부가 함께 참석해야 할 공적·사적인 일정을 모조리 취소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되레 일을 줄이며 병실을 지켰다.
A씨는 “개인적인 일이야 그렇다 쳐도 사업상 일정이 어그러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큰데 어디에서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2주 이상 병원 신세를 지고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B씨. 교통사고 이후 본인보다 갓 돌이 지난 아들 걱정에 시름했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애를 태웠던 것. 어렵사리 시간제 보모를 구했지만 그 비용을 고스란히 B씨 몫이 됐다.
B씨는 “낯선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도 불편하고 보모를 구하느라 시간과 비용도 상당히 들였다”며 “보험에서 보모 임금 정도는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이중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사고로 인한 일차적인 피해에 개인적인 특수 상황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고 후유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후유증은 보험의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으로도 보상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다. 보험 약관에 한발 앞서 소비자 권리를 구제해온 법원에서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않고 있다.
A씨와 B씨 뿐만이 아니다. “이 사고만 없었더라면…” 하는 탄식은 일상다반사로 들을 수 있다. A씨의 경우 자신과 아내의 일정이 어긋나는 정도였지만 직접적인 사업 일정이 어그러진 경우도 빈번하다.
중요한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사고를 당한 경우가 그렇고 어렵사리 따낸 프로젝트가 장기간 입원으로 물거품이 돼버리기도 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자영업자의 경우 예기치 못하게 은퇴시기를 앞당기기도 한다. 장기간 입원이 병가로 보장되지 않는 회사에 근무하던 직장인이라면 “주변 사람에게 미안해서” 사표를 쓰기도 한다. 근무시간에 병원이며 물리치료사를 찾아야 하는 일은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학생의 경우에는 학업 손실이 따른다. 수험생은 직접 입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육체적·정신적 타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 졸업반이라면 집중적인 취업시기를 놓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심지어 졸업이 미뤄져 학교를 한 학기 혹은 한해 더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B씨처럼 가족을 돌보는 노동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대체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까지 진다. 전업주부의 경우 일용직 정도의 손해보전으로 가사를 해결한다고는 하지만 환자를 돌보고 있던 이라면 간병인을 구해야 하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면 보육시설에 보내거나 도우미를 구해야 한다.
청첩장을 다 돌려놓고 결혼식을 미뤄야 했다고 호소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피해자 개개인의 ‘특별한 정황’은 상대편인 가해자나 보험사에서 볼 때 ‘예측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때문에 보험 약관에서도 법적으로도 그 손해를 보상받기 어렵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손해보험은 본인의 실손보상만을 원칙으로 한다”며 “각 피해자의 독특한 상황을 반영해 위자료를 산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를 배려하는 것도 좋지만 위자료 문제는 또다른 소비자인 가해자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 상승과 연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보험 약관에 따르면 교통사고 피해자는 치료비와 일을 못하게 된 데 따른 손해, 장해 등 후유증이 남은 경우 추가 치료비만 보상받을 수 있다. 정신적 피해 등을 감안한 위자료는 최대 200만원에서 9만원까지 책정돼있지만 그 또한 장해등급이나 진단서에 기록된 ‘진단명’을 기준으로 한다. 지극히 심각한 정신적 충격이 추정되는 경우 이를테면 3대 독자를 유산한 경우 등은 별도로 하지만 극히 드물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위자료를 산정하는 기준을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종길 보험소비자연맹 소비자권익팀장은 “피해자마다 사고 후 개별 상황을 조사해 위자료를 산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위자료를 현실화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문철 스스로닷컴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위자료는 보충성과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며 “법원의 판단기준이 보험사 약관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일본이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가 얼마라고 별도로 명시돼있진 않지만 개별 사안에 따른 위자료가 충분히 인정된다. 일본도 개별 사례를 인정하는 추세다. 학생이 다시 등록한 경우 소요되는 학비나 엄마가 다친 경우 아이의 보육료 등 실질적인 추가비용을 보험사가 지급하도록 하는 판례가 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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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법원 위자료 폭넓게 해석해야
지난 연말 교통사고를 당해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은 자영업자 A씨. 3주간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후에는 통원치료를 받으며 몸은 거의 회복됐고 보험 처리는 깔끔하게 마무리 됐다. 입원비나 통원치료비, 일을 쉬는 동안의 수입까지 부족하지만 다 받게 됐다.
그러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 아내 회사 송년회를 비롯해 부부가 함께 참석해야 할 공적·사적인 일정을 모조리 취소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되레 일을 줄이며 병실을 지켰다.
A씨는 “개인적인 일이야 그렇다 쳐도 사업상 일정이 어그러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큰데 어디에서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2주 이상 병원 신세를 지고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B씨. 교통사고 이후 본인보다 갓 돌이 지난 아들 걱정에 시름했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애를 태웠던 것. 어렵사리 시간제 보모를 구했지만 그 비용을 고스란히 B씨 몫이 됐다.
B씨는 “낯선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도 불편하고 보모를 구하느라 시간과 비용도 상당히 들였다”며 “보험에서 보모 임금 정도는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이중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사고로 인한 일차적인 피해에 개인적인 특수 상황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고 후유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후유증은 보험의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으로도 보상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다. 보험 약관에 한발 앞서 소비자 권리를 구제해온 법원에서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않고 있다.
A씨와 B씨 뿐만이 아니다. “이 사고만 없었더라면…” 하는 탄식은 일상다반사로 들을 수 있다. A씨의 경우 자신과 아내의 일정이 어긋나는 정도였지만 직접적인 사업 일정이 어그러진 경우도 빈번하다.
중요한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사고를 당한 경우가 그렇고 어렵사리 따낸 프로젝트가 장기간 입원으로 물거품이 돼버리기도 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자영업자의 경우 예기치 못하게 은퇴시기를 앞당기기도 한다. 장기간 입원이 병가로 보장되지 않는 회사에 근무하던 직장인이라면 “주변 사람에게 미안해서” 사표를 쓰기도 한다. 근무시간에 병원이며 물리치료사를 찾아야 하는 일은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학생의 경우에는 학업 손실이 따른다. 수험생은 직접 입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육체적·정신적 타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 졸업반이라면 집중적인 취업시기를 놓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심지어 졸업이 미뤄져 학교를 한 학기 혹은 한해 더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B씨처럼 가족을 돌보는 노동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대체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까지 진다. 전업주부의 경우 일용직 정도의 손해보전으로 가사를 해결한다고는 하지만 환자를 돌보고 있던 이라면 간병인을 구해야 하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면 보육시설에 보내거나 도우미를 구해야 한다.
청첩장을 다 돌려놓고 결혼식을 미뤄야 했다고 호소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피해자 개개인의 ‘특별한 정황’은 상대편인 가해자나 보험사에서 볼 때 ‘예측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때문에 보험 약관에서도 법적으로도 그 손해를 보상받기 어렵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손해보험은 본인의 실손보상만을 원칙으로 한다”며 “각 피해자의 독특한 상황을 반영해 위자료를 산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를 배려하는 것도 좋지만 위자료 문제는 또다른 소비자인 가해자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 상승과 연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보험 약관에 따르면 교통사고 피해자는 치료비와 일을 못하게 된 데 따른 손해, 장해 등 후유증이 남은 경우 추가 치료비만 보상받을 수 있다. 정신적 피해 등을 감안한 위자료는 최대 200만원에서 9만원까지 책정돼있지만 그 또한 장해등급이나 진단서에 기록된 ‘진단명’을 기준으로 한다. 지극히 심각한 정신적 충격이 추정되는 경우 이를테면 3대 독자를 유산한 경우 등은 별도로 하지만 극히 드물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위자료를 산정하는 기준을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종길 보험소비자연맹 소비자권익팀장은 “피해자마다 사고 후 개별 상황을 조사해 위자료를 산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위자료를 현실화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문철 스스로닷컴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위자료는 보충성과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며 “법원의 판단기준이 보험사 약관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일본이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가 얼마라고 별도로 명시돼있진 않지만 개별 사안에 따른 위자료가 충분히 인정된다. 일본도 개별 사례를 인정하는 추세다. 학생이 다시 등록한 경우 소요되는 학비나 엄마가 다친 경우 아이의 보육료 등 실질적인 추가비용을 보험사가 지급하도록 하는 판례가 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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