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진단>‘대통령 주가’와 작전세력
지난해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곤욕은 치른 한 투자자는 올해 들어 우량주 중심의 투자패턴을 유지했다. 이 투자자는 요즘 옛동지들과 선을 대느라 분주하게 강남 룸살롱을 드나들고 있다. 이제는 ‘착하게 살자’며 우량주 중심의 정석투자를 했지만 수익률은 저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몇개 종목을 분석하고 이들 종목의 주가를 움직이는 세력들과 새롭게 판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이 투자자가 투자패턴을 바꾸게 된 계기는 최근 정부의 강력한 증시부양 대책 때문이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3주기인 2월 25일까지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개별종목의 주가를 주물러도 지난해와 같은 큰 탈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8일 김 대통령은 증권시장 관계자들과 오찬간담회를 통해 증시에 대한 깊은 관심은 다시 한번 보여줬다. 김 대통령은 지난주 몸소 증권거래소를 방문하려다가 여건상 힘들어지자 아예 증권사와 투신사 사장 등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780만명의 투자가들이 지난해 100조원 가까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상황에 대해 때로는 밤잠을 설치면서 걱정하고 가슴아프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나서겠는가
실제 김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증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90년 이후 부총리, 집권당 및 제1야당 총재급 이상 고위급이 거래소를 방문한 것은 모두 14차례 있었다. 이 가운데 5번이 김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이 증권거래소를 방문했던 경우는 김 대통령 말고는 없다는 게 증권거래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 날도 김 대통령은 증시 활성화를 위한 선물을 내놓았다. 연기금 주식투자를 위한 비중확대가 그것이다. 현재 총자산의 10%(약 8조원)에 머물고 있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우체국보험 등 4대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을 2~3년내 20%(약 25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증권시장 관계자들에게 “시가총액대비 연기금 투자비율이 미국이 24%, 영국 33%, 한국이 1%”라며 연기금 주식투자비중을 대폭 늘려나가야 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의 증시에 대한 각별한 관심에 대해 투자자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다. 이날 증시도 옵션만기일로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무려 15포인트나 올랐다.
그러나 시장 한켠에서는 주가가 오르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있다. 객장의 투자자들은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겠냐”는 반응이다. 대통령이 직접 움직여야 하는 시스템은 부족한 게 있는 상태를 반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대통령이 증시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선물 중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 확대도 그렇다. 미국에서 우리의 국민연금과 같은 성격의 공적 기초연금인 OASDI는 주식투자를 전혀 하지 않고 채권투자만 한다. 그것도 주로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이다. 미국에서 주식투자에 나서는 연금은 우리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기업연금 성격의 사적연금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한 공적연금은 안정적인 투자에 주력하고 개인이 자신의 퇴직금을 투입하는 사적연금이 장기투자를 통해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해외에서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이 높기 때문에 우리도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을 확대해야 된다고 독려하고 있다.
그린스펀의 신중함 참고해야
지난해 9월 투자신탁협회장은 시장정보에 근접한 사람들의 언행이 미칠 영향력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이 시황이나 매매방향 등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표준 내부 통제기준’이라는 규정을 만들었다. 어린 백성들에게 대통령의 발언은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만 믿고 앞뒤 안가리고 주식을 사거나 팔았다가 깡통을 차지 말라는 법도 없다. ‘주식’이라는 단어 하나 없이 시장 관계자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드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의 신중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정부관계자의 잇따른 시장 안정책 발표가 최근 정국 돌파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일부 작전세력이 활개를 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고 결국 소액투자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주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투자자들은 대통령이 굳이 나서 시장을 챙길 필요가 없는, 대통령이 주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증시를 원하고 있다.
김기수/금융팀장내일진단>
지난해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곤욕은 치른 한 투자자는 올해 들어 우량주 중심의 투자패턴을 유지했다. 이 투자자는 요즘 옛동지들과 선을 대느라 분주하게 강남 룸살롱을 드나들고 있다. 이제는 ‘착하게 살자’며 우량주 중심의 정석투자를 했지만 수익률은 저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몇개 종목을 분석하고 이들 종목의 주가를 움직이는 세력들과 새롭게 판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이 투자자가 투자패턴을 바꾸게 된 계기는 최근 정부의 강력한 증시부양 대책 때문이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3주기인 2월 25일까지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개별종목의 주가를 주물러도 지난해와 같은 큰 탈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8일 김 대통령은 증권시장 관계자들과 오찬간담회를 통해 증시에 대한 깊은 관심은 다시 한번 보여줬다. 김 대통령은 지난주 몸소 증권거래소를 방문하려다가 여건상 힘들어지자 아예 증권사와 투신사 사장 등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780만명의 투자가들이 지난해 100조원 가까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상황에 대해 때로는 밤잠을 설치면서 걱정하고 가슴아프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나서겠는가
실제 김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증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90년 이후 부총리, 집권당 및 제1야당 총재급 이상 고위급이 거래소를 방문한 것은 모두 14차례 있었다. 이 가운데 5번이 김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이 증권거래소를 방문했던 경우는 김 대통령 말고는 없다는 게 증권거래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 날도 김 대통령은 증시 활성화를 위한 선물을 내놓았다. 연기금 주식투자를 위한 비중확대가 그것이다. 현재 총자산의 10%(약 8조원)에 머물고 있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우체국보험 등 4대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을 2~3년내 20%(약 25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증권시장 관계자들에게 “시가총액대비 연기금 투자비율이 미국이 24%, 영국 33%, 한국이 1%”라며 연기금 주식투자비중을 대폭 늘려나가야 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의 증시에 대한 각별한 관심에 대해 투자자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다. 이날 증시도 옵션만기일로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무려 15포인트나 올랐다.
그러나 시장 한켠에서는 주가가 오르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있다. 객장의 투자자들은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겠냐”는 반응이다. 대통령이 직접 움직여야 하는 시스템은 부족한 게 있는 상태를 반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대통령이 증시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선물 중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 확대도 그렇다. 미국에서 우리의 국민연금과 같은 성격의 공적 기초연금인 OASDI는 주식투자를 전혀 하지 않고 채권투자만 한다. 그것도 주로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이다. 미국에서 주식투자에 나서는 연금은 우리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기업연금 성격의 사적연금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한 공적연금은 안정적인 투자에 주력하고 개인이 자신의 퇴직금을 투입하는 사적연금이 장기투자를 통해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해외에서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이 높기 때문에 우리도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을 확대해야 된다고 독려하고 있다.
그린스펀의 신중함 참고해야
지난해 9월 투자신탁협회장은 시장정보에 근접한 사람들의 언행이 미칠 영향력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이 시황이나 매매방향 등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표준 내부 통제기준’이라는 규정을 만들었다. 어린 백성들에게 대통령의 발언은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만 믿고 앞뒤 안가리고 주식을 사거나 팔았다가 깡통을 차지 말라는 법도 없다. ‘주식’이라는 단어 하나 없이 시장 관계자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드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의 신중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정부관계자의 잇따른 시장 안정책 발표가 최근 정국 돌파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일부 작전세력이 활개를 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고 결국 소액투자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주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투자자들은 대통령이 굳이 나서 시장을 챙길 필요가 없는, 대통령이 주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증시를 원하고 있다.
김기수/금융팀장내일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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