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문화적 배타주의를 넘어

지역내일 2006-02-24
문화적 배타주의를 넘어
함 인 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일전에 가까운 후배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농촌총각의 결혼난이 심각해지면서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하게 된 지금, 국제결혼 비율 전국 1위를 기록한 곳은 놀랍게도 충청남도 지역으로 이 곳의 국제결혼율이 타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이웃 나라 문화를 이해시키기 위한 교육을 시작했는데, 실상 전통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고 보니 정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고 보니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유럽 내 ‘무슬림 폭동’소식에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향후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문명충돌’이라 했던 헌팅턴의 예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굴색이 다른 사람들이 섞이고 생소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만나며, 낯선 역사와 전통을 지닌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증가하면 할수록, 뿌리 깊은 적대감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해묵은 갈등과 반목이 새삼 증폭되고 있음을 생생히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타인종 향한 근거없는 혐오
솔직히 우리에게 아랍이란 곳은 얼마나 낯설고 물선 곳이던가. 더 더욱 이슬람교로 무장한 무슬림은 또 얼마나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대상이던가.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민족이나 타 인종을 향한 우리의 근거 없는 공포나 혐오는 실은 이들에 대한 무지함, 무례함의 표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소설가 김 훈이 중동이니 극동이니 하는 표현에 담긴 서구 중심적 시각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극동이라 불리는 이유는 유럽에서 볼 때 멀리 떨어진 동쪽에 위치한 나라요, 저들에게 중동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역시 유럽에서 볼 때 중간 거리 즈음의 동쪽에 위치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면, 유럽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서쪽 저 멀리 위치한 극서(極西) 국가임에 틀림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중동’의 이미지 속에는 미국의 CNN이나 유럽의 유수 언론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정작 아랍권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종교, 사회제도와 일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는 듯 하다. 덕분인가, 우리네 다수는 “중동을 싫어한다.”
미국 유학시절 중국계 미국인 동료로부터 아랍 여성을 향한 서구 여성의 나이브함과 관련된 일화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서구에서 페미니즘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1970년대 중반, 백인 여성들이 아랍 여성을 만나기 위해 ‘중동’으로 날아갔다 한다. 그 곳에서 이들은 ‘아랍 여성들이여 베일(차도르)을 벗어 던져라! 베일이야말로 여성 억압의 상징이다!’피켓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한다.
그 때 차도르를 두른 한 여성이 시위대 쪽으로 조용히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한다. “우리도 이 베일이 수천 년에 걸친 여성 억압의 상징인 것을 압니다. 다만 우리가 베일을 두른 것이나, 당신네가 과다한 노출을 하는 것이나 형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맞추어 최선을 다할 테니 돌아가십시오.” 서구 여성들이 그 자리에서 말없이 돌아갔다는 후문이었다.

열린 감수성 쌓아가야 할 때
솔직히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지함으로 말하자면야 아랍에 대한 무지함 못 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땅에 발붙이고 살면서 자식까지 낳아 기르는 우리 이웃의 낯선 타인들을 향해 여전히 낯가림을 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음은 깊은 반성을 요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적과 아군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 글로벌 환경 하에서, 상대를 향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무심코 표출하기 전에 ‘무지와 무례’의 소치임을 정직하게 시인하고,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열린 감수성을 쌓아가야 할 때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