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문화적 배타주의를 넘어(함인희 2006.02.24)

지역내일 2006-02-23
문화적 배타주의를 넘어

일전에 가까운 후배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길 전해 들었다. 농촌총각의 결혼난이 심각해지면서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하게 된 즈음, 국제결혼 비율 전국 1위를 기록한 곳은 놀랍게도 충청남도 지역으로, 이 곳의 국제결혼율이 타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곳에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이웃 나라 문화를 이해시키기 위한 교육을 시작했는데, 실상 전통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고 보니, 정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고 보니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유럽 내 ‘무슬림 폭동’소식에 왠지 마음이 편칠 않다. 향후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문명충돌”이라 했던 헌팅턴의 예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굴색이 다른 사람들이 섞이고, 생소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만나며, 낯선 역사와 전통을 지닌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증가하면 할수록, 뿌리 깊은 적대감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해묵은 갈등과 반목이 새삼 증폭되고 있음을 생생히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우리에게 아랍이란 곳은 얼마나 낯설고 물선 곳이던가. 더 더욱 이슬람교로 무장한 무슬림은 또 얼마나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대상이던가. 한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민족이나 타 인종을 향한 우리의 근거 없는 공포나 혐오는 실은 이들에 대한 무지함, 무례함의 표현에 다름 아닐 게다.
어느 자리에선가 소설가 김훈이 중동이니 극동이니 하는 표현에 담긴 서구 중심적 시각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극동이라 불리는 이유는 유럽에서 볼 때 멀리 떨어진 동쪽에 위치한 나라요, 저들에게 중동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역시 유럽에서 볼 때 중간 거리 즈음의 동쪽에 위치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면, 유럽이야말로 우리에겐 서쪽 저 멀리 위치한 극서(極西) 국가임에 틀림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우리네에게 전달되는 ‘중동’의 이미지 속엔 미국의 CNN이나 유럽의 유수 언론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정작 아랍권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종교, 사회제도와 일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는 듯 하다. 덕분인가, 우리네 다수는 “중동을 싫어한다.”
미국 유학시절 중국계 미국인 동료로부터 아랍 여성을 향한 서구 여성의 나이브함과 관련된 일화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서구에서 페미니즘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70년대 중반, 백인 여성들이 아랍 여성을 만나기 위해 ‘중동’으로 날아갔다 한다. 그 곳에서 이들은 [아랍 여성들이여 베일(차도르)을 벗어 던져라! 베일이야말로 여성 억압의 상징이다!] 피켓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한다.
그 때 차도르를 두른 한 여성이 시위대 쪽으로 조용히 다가와선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한다. “우리도 이 베일이 수천 년에 걸친 여성 억압의 상징인 것을 압니다. 다만 우리가 베일을 두른 것이나, 당신네가 과다한 노출을 하는 것이나 형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맞추어 최선을 다할 테니 돌아가십시오.” 서구 여성들이 그 자리에서 말없이 돌아갔다는 후문이었다.
솔직히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지함으로 말하자면야 아랍에 대한 무지함 못 지 않을게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땅에 발붙이고 살면서 자식까지 낳아 기르는 우리 이웃의 낯선 타인들을 향해 여전히 낯가림을 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음은 깊은 반성을 요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적과 아군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 글로벌 환경 하에서, 상대를 향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무심코 표출하기 전에 ‘무지와 무례’의 소치임을 정직하게 시인하고,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열린 감수성을 쌓아가야 할 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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