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겉돈다

지역내일 2006-02-08

마땅한 업무없어 ''''''''빈둥빈둥''''''''
= 시간만 보내도 월급은 ''''''''꼬박꼬박 입금''''''''
= 기업들 업무개발 나서 ... 신보, 인센티브제 포함한 개선안 마련중



지난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 후선업무를 하고 있는 김 모 부장(56세)의 출근 발걸음이 오늘도 무겁기만 하다. 덩그러니 홀로 놓인 책상 앞에서 채권추심업무를 하는 게 쉽게 적응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일을 하고 시간을 때운 후 퇴근시간에 나오는 것도 일년여 했으면 적응도 될 텐데 아직 후선에서 일하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인사나 기획파트에서 주로 일한 김 부장은 채권추심이 전문분야가 아닌데도 특별히 할 만한 업무가 없어 이 일을 하게 됐다.
아직 대학생과 결혼정년기 자녀가 있는 김 부장은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러나 이들의 학비보조 등을 위해 남아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다.
금융권의 후선업무라는 게 채권추심이나 지점감사, 사후관리 등 바쁘거나 힘든 일은 아니다.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임금은 자동적으로 통장에 들어오기 때문에 집중력도 크게 떨어진다.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선호 = 공공기관들이 임금피크제를 선호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14개사다. 이중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감정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8개사가 공공기관 성격을 가진 곳이며 민간기업은 대한전선, 대우조선해양, 우리은행, 하나은행, 광주은행, 대구은행 등 6개다. 2003년에 가장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보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이 ‘혁신 경쟁’을 하면서 대표적인 혁신사례인 임금피크제를 앞다투어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권은 공동단체협상에서 노사간 합의한 부분도 있고 고용불안이 금융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도입을 서두른 것 같다”고 말했다.

◆하릴없는 고령자 =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줄만한 일이 적다는 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의 전반적인 고민이다. 일단 후선에 빼 놓고 업무를 배분해 주기 때문에 만만한 게 금융권은 채권추심, 비금융권은 사후관리정도.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들은 임금피크제 해당 직원을 △채권추심 △마케팅 △직원 교육 △전문 상담 △지점 감사 등에 주로 배치했다. 신보 기보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은 기업 컨설팅업무를 맡기고 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 고용문제 해소에도 목적이 있지만 지점장까지 지낸 노하우를 활용하자는 측면도 있다”며 “그러나 적당한 직무가 없어 원래 취지에서 많이 비껴간 업무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4년후 많게는 200여명까지 임금피크제 해당 직원을 갖게 돼 직무개발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36명의 직원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 있는 우리은행은 내년과 내후년에 각각 60명과 90명이 각각 만 55세에 도달, 해당자가 100명을 거뜬히 넘고 2008년에는 200명 가까이 확대될 전망이다.

◆경쟁없는 업무 =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만 59세까지 근무할 수 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만 55세가 되면 4년동안 각각 전년도 임금의 70%, 60%, 40%, 40%로 낮춰 연봉을 지급한다. 총 210%다. 수출입은행은 255%(90%, 75%, 60%, 30%)를 나눠 지급하고 있으며 기업은행은 직급에 따라 210~290%를 4년동안 나눠준다.
다른 기업들도 큰 차이가 없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업무성과에 상관없이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성과가 낮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많다.
모 시중은행 관계자는 “책상 하나 놓고 그냥 시간만 보내도 월급은 나온다”면서 “이들에게 주는 업무가 대부분 후선지원업무라서 실적평가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변질된 임금피크제 = 임금피크제가 도입 초반부터 변질되는 분위기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은 만 55세 뿐만 아니라 실적이 안 좋은 사람들도 ‘임금피크제’에 포함시키고 있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첫해에 월급의 20%를 줄이고 2년차와 3년차엔 각각 50%, 70%를 깎는다.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정년을 늘리고 월급을 줄이는’ 쪽으로 가는 반면 민간 기업들은 2억원정도의 명예퇴직금을 받고 나가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경우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명예퇴직금이 매우 적다”며 “나이가 되면 당연히 임금피크제로 간 다음에 일자리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구은행은 임금피크제에 들어가지 않으면 24개월정도의 명퇴금을 주고 있으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18개월, 24개월 정도의 임금을 한꺼번에 내준다. 이에 따라 대구은행 직원들은 만 55세가 되면 2억원 상당의 명예퇴직금을 받고 그만둔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55명이었으나 36명만 신청했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경우엔 임금 이외에도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어 임금피크제가 인기가 있기는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충분히 명퇴금을 주어 임금피크제에 들어오지 않도록 유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보 2단계 임금피크제 도입 = 가장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보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마련중이다.
우선 고정금과 성과급을 구분하는 실적평가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특히 팀단위 평가를 병행키로 했다.
또 임금피크제 시작 시기를 개인 성과에 따라 당기거나 미루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현행 4년에서 6~8년까지도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년은 같다.
필요한 직무를 개발하고 직무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은 임금피크제에서 제외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신보 관계자는 “임금피크제가 성과측정을 하지 않고 직무도 많지 않아 겉돌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이를 보완해 보다 효율적인 임금피크제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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