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 보험왕 그들에겐 특별한 게 있다. = 대한생명 김혜옥(36) FP
제목: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출발 할래요
입사 초기부터 뛰어난 실적으로 억대연봉을 받는 미모의 미혼 설계사.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최고 설계사 집단인 에이스 클럽회원 가입. 회사내 각종 홍보모델은 물론이고 회사를 대표해 홈쇼핑에 출연. 주변의 관심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당연한 일.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잘나가던 시절이다. 남부러울 것도, 두려움도 없었다. 대한생명 종로지점 남학영업소 FP(재무설계사)로 활동중인 김혜옥(36)씨의 몇 해 전 모습이다.
◆갑자기 찾아온 시련 = 호사다마라고 했나. 아무것도 거칠 것 없던 김 씨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2004년 4월. 갑자기 쓰러졌다. 뚜렷한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잠시 괜찮아지는 가 싶더니 그해 말 또 쓰러졌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에 다시 한 번 모두 세 번 쓰러졌다. 3개월이 넘는 검사를 거쳤다. 스트레스 등으로 신장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급성 신우신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1년이 넘는 이 기간 동안 김씨가 관리하던 고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떨어져 나갔고 실적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어졌다. 3년 연속 가입했던 에이스 클럽에서도 지난해 탈락했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주위에서는 격려의 말로 용기를 줬고, 병원에 위문까지 오는 고객까지 있었다. 또한 지난해 6월 결혼을 하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처음 설계사 생활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고객들을 관리해 줘야 할 설계사가 아파서 입원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땐 몰랐어요. 지금도 제 곁에 남아있는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에요.”
◆설계사 됐다고 머리카락까지 잘려 =김씨는 지난 98년 4월 29세의 나이로 대한생명 FP로 입문했다. FP가 되기 전엔 그래픽 디자이너로 6년 정도 활동했다. 과장진급까지 해 디자이너로서도 한창 때였지만 김 씨는 과감히 그만뒀다. 창조적 직업에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또한 김씨는 “디자이너라고 하면 남들이 보기엔 좋아보여도 야근과 철야 등 몸이 많이 힘들어요. 또 같이 입사해도 남성 직원과 차별대우를 받은 경우도 많죠.”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당시 생활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김씨가 지금처럼 FP가 될 것이라고는 본인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다. FP에 대해 내심 편견과 혐오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다가 디자이너로 일할 당시 매일 사무실을 찾던 FP와 인연이 돼 교육을 받고 본격적으로 보험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집안에도 비밀에 부쳤다. 한 달 동안 집안에 숨기다가 나중에 들통이 났다. 허리까지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이 잘리고 외출금지령이 떨어질 정도로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나 한 번 마음먹은 김 씨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김씨는 선천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보험업이 상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도 열변을 토한다. 오죽하면 성대결절까지 올 정도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처음 쓰러지기 전에는 1년 8개월 동안 매주 2건 이상씩의 종신보험 신계약을 체결했다. 매년 100건 이상의 신계약을 맺었고 연봉까지 억대를 넘어섰다.
◆수박 한 통이 맺어준 인연 = 김 씨의 고객 가운데 한 사람은 매월 700만원씩 정도씩 들어오고 일시납만 몇 억 원에 이르는 고액계약자가 있다. 이 고객과 만나게 된 사연은 흥미롭다. 7년 전이다.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는데 내용인즉 ‘자신을 담당했던 설계사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 약속한 것도 처음과 달라졌다는 등의 불평이 가득했다. 화가 머리끝가지 나 있던 이 고객에게 R김 씨는 먼저 사과했다. 그리고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 상계동 주공 APT에 살고 있던 사람인데 여름에 무거운 수박을 들고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찾아가는 모습이 믿음이 갔던 모양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보기엔 검소해 보인 그 고객은 큰 청과물 사업을 하는 사장이었다. 수박은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수박 속에 담긴 김 씨의 마음이 대견했던 것이다. 그게 단초가 돼 지금까지 7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고, 모두 22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보험은 가치와 사랑을 판매하는 일” = 김씨는 본인 스스로 아프면서 보험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절감했다. 병원비와 치료비 등을 직접 보장받아봤기 때문에 더욱 확신에 차 있다. 김 씨는 보험에 대해 공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는 모르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면 공기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게 되잖아요. 내가 막상 닥치고 아파보면서 보험에 대해 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미혼일 때 김 씨는 “결혼하면 그만 둘 것이지?”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내가 먼저 죽지 않는 한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고 한다.
보험으로 혜택을 받은 고객들의 행복감을 느낄 때 역시 보험은 가치와 사랑을 판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가입자가 사망했을 경우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은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늘 보람이다. 최근에도 27세 미혼여성이 유방암에 걸렸는데 4000만원을 수령해 성형수술까지 가능하게 됐다고 한다. 젊은 여성으로서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을 보험이 도와준 것이다. 또 어떤 고객은 어머니가 보험을 들었는데 김 씨가 권유를 해 아버지까지 함께 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고, 1000만원을 수령했다. 나중에 그 고객이 상품권을 들고 와서 인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상품권을 끝까지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밥까지 김 씨가 샀다. 그 고객은 이런 모습에 더욱 신뢰를 느껴 주위 사람을 4명이나 더 소개시켜줬다.
김 씨는 “제가 그냥 장사꾼이었다면 그냥 상품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험 장사꾼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FP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항상 열정이 끓어 넘치는 김 씨. 2년간의 좌절을 딛고 다시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가장 먼저 아플 때도 묵묵히 자기를 믿어준 고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병술년에 개띠해에 개띠인 김씨의 재도약이 기대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제목: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출발 할래요
입사 초기부터 뛰어난 실적으로 억대연봉을 받는 미모의 미혼 설계사.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최고 설계사 집단인 에이스 클럽회원 가입. 회사내 각종 홍보모델은 물론이고 회사를 대표해 홈쇼핑에 출연. 주변의 관심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당연한 일.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잘나가던 시절이다. 남부러울 것도, 두려움도 없었다. 대한생명 종로지점 남학영업소 FP(재무설계사)로 활동중인 김혜옥(36)씨의 몇 해 전 모습이다.
◆갑자기 찾아온 시련 = 호사다마라고 했나. 아무것도 거칠 것 없던 김 씨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2004년 4월. 갑자기 쓰러졌다. 뚜렷한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잠시 괜찮아지는 가 싶더니 그해 말 또 쓰러졌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에 다시 한 번 모두 세 번 쓰러졌다. 3개월이 넘는 검사를 거쳤다. 스트레스 등으로 신장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급성 신우신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1년이 넘는 이 기간 동안 김씨가 관리하던 고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떨어져 나갔고 실적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어졌다. 3년 연속 가입했던 에이스 클럽에서도 지난해 탈락했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주위에서는 격려의 말로 용기를 줬고, 병원에 위문까지 오는 고객까지 있었다. 또한 지난해 6월 결혼을 하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처음 설계사 생활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고객들을 관리해 줘야 할 설계사가 아파서 입원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땐 몰랐어요. 지금도 제 곁에 남아있는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에요.”
◆설계사 됐다고 머리카락까지 잘려 =김씨는 지난 98년 4월 29세의 나이로 대한생명 FP로 입문했다. FP가 되기 전엔 그래픽 디자이너로 6년 정도 활동했다. 과장진급까지 해 디자이너로서도 한창 때였지만 김 씨는 과감히 그만뒀다. 창조적 직업에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또한 김씨는 “디자이너라고 하면 남들이 보기엔 좋아보여도 야근과 철야 등 몸이 많이 힘들어요. 또 같이 입사해도 남성 직원과 차별대우를 받은 경우도 많죠.”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당시 생활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김씨가 지금처럼 FP가 될 것이라고는 본인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다. FP에 대해 내심 편견과 혐오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다가 디자이너로 일할 당시 매일 사무실을 찾던 FP와 인연이 돼 교육을 받고 본격적으로 보험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집안에도 비밀에 부쳤다. 한 달 동안 집안에 숨기다가 나중에 들통이 났다. 허리까지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이 잘리고 외출금지령이 떨어질 정도로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나 한 번 마음먹은 김 씨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김씨는 선천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보험업이 상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도 열변을 토한다. 오죽하면 성대결절까지 올 정도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처음 쓰러지기 전에는 1년 8개월 동안 매주 2건 이상씩의 종신보험 신계약을 체결했다. 매년 100건 이상의 신계약을 맺었고 연봉까지 억대를 넘어섰다.
◆수박 한 통이 맺어준 인연 = 김 씨의 고객 가운데 한 사람은 매월 700만원씩 정도씩 들어오고 일시납만 몇 억 원에 이르는 고액계약자가 있다. 이 고객과 만나게 된 사연은 흥미롭다. 7년 전이다.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는데 내용인즉 ‘자신을 담당했던 설계사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 약속한 것도 처음과 달라졌다는 등의 불평이 가득했다. 화가 머리끝가지 나 있던 이 고객에게 R김 씨는 먼저 사과했다. 그리고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 상계동 주공 APT에 살고 있던 사람인데 여름에 무거운 수박을 들고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찾아가는 모습이 믿음이 갔던 모양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보기엔 검소해 보인 그 고객은 큰 청과물 사업을 하는 사장이었다. 수박은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수박 속에 담긴 김 씨의 마음이 대견했던 것이다. 그게 단초가 돼 지금까지 7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고, 모두 22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보험은 가치와 사랑을 판매하는 일” = 김씨는 본인 스스로 아프면서 보험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절감했다. 병원비와 치료비 등을 직접 보장받아봤기 때문에 더욱 확신에 차 있다. 김 씨는 보험에 대해 공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는 모르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면 공기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게 되잖아요. 내가 막상 닥치고 아파보면서 보험에 대해 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미혼일 때 김 씨는 “결혼하면 그만 둘 것이지?”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내가 먼저 죽지 않는 한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고 한다.
보험으로 혜택을 받은 고객들의 행복감을 느낄 때 역시 보험은 가치와 사랑을 판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가입자가 사망했을 경우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은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늘 보람이다. 최근에도 27세 미혼여성이 유방암에 걸렸는데 4000만원을 수령해 성형수술까지 가능하게 됐다고 한다. 젊은 여성으로서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을 보험이 도와준 것이다. 또 어떤 고객은 어머니가 보험을 들었는데 김 씨가 권유를 해 아버지까지 함께 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고, 1000만원을 수령했다. 나중에 그 고객이 상품권을 들고 와서 인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상품권을 끝까지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밥까지 김 씨가 샀다. 그 고객은 이런 모습에 더욱 신뢰를 느껴 주위 사람을 4명이나 더 소개시켜줬다.
김 씨는 “제가 그냥 장사꾼이었다면 그냥 상품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험 장사꾼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FP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항상 열정이 끓어 넘치는 김 씨. 2년간의 좌절을 딛고 다시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가장 먼저 아플 때도 묵묵히 자기를 믿어준 고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병술년에 개띠해에 개띠인 김씨의 재도약이 기대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