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불감증을 바라보며
김 혁 종 (광주대총장)
40대 이상의 세대에게 ‘폭력’이라는 말은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다. 수많은 폭력을 대면하면서 무감각하게 살아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학창시절엔 초, 중, 고를 가릴 것 없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군 시절엔 ‘군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40여 년 넘게 때로는 가해자로 때로는 피해자로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오다 보니 ‘폭력’의 폐해에 무감각해져온 그 세대가 현재 우리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어느 세대보다 폭력의 실체를 이해하고 있는 이 세대가 굳은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사회로부터 폭력을 없앨 수 있을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광기 어린 폭력의 피해자 입장에서 탈바꿈하여 이제는 도리어 폭력에 대한 불감증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고, 부지중에 폭력을 대물림하는 악역도 맡고 있다.
한국사회의 폭력성은 이제 국내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3D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는 대다수 동남아 출신 근로자들의 입을 통하여 고발되는 한국에서의 가장 참혹한 경험은 수시로 행해지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욕설이었다. 그들의 입을 통하여 고발되는 치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어서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돈 많은 폭력배 이상이 아니다.
구타당하는 아내, 매맞는 청소년
1992년의 보건복지부 보고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남편의 60% 정도가 결혼이후 한번 이상의 아내구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리나라 부부 중 34.1%가 1년에 적어도 한차례 이상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보다 2배 이상 많고, 홍콩보다는 3배 가까운 발생률이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 또한 근절되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아동학대가 대부분 근친간에 이루어져 실상이 숨겨지고 있을 뿐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지에 따르면 ‘심하게 매를 맞아본 적이 있다’는 청소년의 비율이 86년 조사에서는 66.2%였으나 92년에는 96.4%나 됐다.
근절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폭력은 사회적 불감증으로 연결되면서 더 큰 맹위를 떨친다. 폭력의 심각성만 노출시켰지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이 미흡하다 보니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패턴은 피해자들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바로 그 피해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학습한 폭력을 통해 가학적인 폭력 행위나 잔인한 살인행위, 자기정체성 혼돈 등 더 큰 부작용으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시위 진압에 나서는 전·의경들에게 명찰을 패용하게 하자는 안이 나와 경찰 안팎에서 논란이 뜨겁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나 시민단체들은 이에 찬성하는 쪽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도 행정활동인데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며 명찰 패용에 대한 찬성 이유를 밝혔고 경찰 내부에서도 “명찰은 지나치게 흥분한 대원에 대한 통제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찬성 의견이 있었다.
먼저 폭력 가한 사람부터 처벌을
그러나 상당수의 경찰과 전·의경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시위가 평화적으로만 진행되면 문제될 것이 없고, 불법 시위자에 대한 처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시각차가 확인됐다.
현재의 시위 양상을 보면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발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시위 진압 경찰을 처벌하기 위해 명찰을 패용하게 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며 폭력 근절을 위한 최선책도 아니다. 누가 되었든 먼저 폭력을 행사한 행위자에 대하여 엄단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폭력 없는 사회와 가정,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혜안을 모으는 과정과 절차들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는 미개한 사회일 뿐이다. 세계 속에서의 문명국 운운은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이성적이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고 난 다음의 일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김 혁 종 (광주대총장)
40대 이상의 세대에게 ‘폭력’이라는 말은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다. 수많은 폭력을 대면하면서 무감각하게 살아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학창시절엔 초, 중, 고를 가릴 것 없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군 시절엔 ‘군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40여 년 넘게 때로는 가해자로 때로는 피해자로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오다 보니 ‘폭력’의 폐해에 무감각해져온 그 세대가 현재 우리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어느 세대보다 폭력의 실체를 이해하고 있는 이 세대가 굳은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사회로부터 폭력을 없앨 수 있을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광기 어린 폭력의 피해자 입장에서 탈바꿈하여 이제는 도리어 폭력에 대한 불감증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고, 부지중에 폭력을 대물림하는 악역도 맡고 있다.
한국사회의 폭력성은 이제 국내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3D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는 대다수 동남아 출신 근로자들의 입을 통하여 고발되는 한국에서의 가장 참혹한 경험은 수시로 행해지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욕설이었다. 그들의 입을 통하여 고발되는 치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어서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돈 많은 폭력배 이상이 아니다.
구타당하는 아내, 매맞는 청소년
1992년의 보건복지부 보고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남편의 60% 정도가 결혼이후 한번 이상의 아내구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리나라 부부 중 34.1%가 1년에 적어도 한차례 이상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보다 2배 이상 많고, 홍콩보다는 3배 가까운 발생률이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 또한 근절되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아동학대가 대부분 근친간에 이루어져 실상이 숨겨지고 있을 뿐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지에 따르면 ‘심하게 매를 맞아본 적이 있다’는 청소년의 비율이 86년 조사에서는 66.2%였으나 92년에는 96.4%나 됐다.
근절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폭력은 사회적 불감증으로 연결되면서 더 큰 맹위를 떨친다. 폭력의 심각성만 노출시켰지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이 미흡하다 보니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패턴은 피해자들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바로 그 피해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학습한 폭력을 통해 가학적인 폭력 행위나 잔인한 살인행위, 자기정체성 혼돈 등 더 큰 부작용으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시위 진압에 나서는 전·의경들에게 명찰을 패용하게 하자는 안이 나와 경찰 안팎에서 논란이 뜨겁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나 시민단체들은 이에 찬성하는 쪽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도 행정활동인데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며 명찰 패용에 대한 찬성 이유를 밝혔고 경찰 내부에서도 “명찰은 지나치게 흥분한 대원에 대한 통제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찬성 의견이 있었다.
먼저 폭력 가한 사람부터 처벌을
그러나 상당수의 경찰과 전·의경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시위가 평화적으로만 진행되면 문제될 것이 없고, 불법 시위자에 대한 처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시각차가 확인됐다.
현재의 시위 양상을 보면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발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시위 진압 경찰을 처벌하기 위해 명찰을 패용하게 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며 폭력 근절을 위한 최선책도 아니다. 누가 되었든 먼저 폭력을 행사한 행위자에 대하여 엄단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폭력 없는 사회와 가정,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혜안을 모으는 과정과 절차들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는 미개한 사회일 뿐이다. 세계 속에서의 문명국 운운은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이성적이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고 난 다음의 일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