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클럽 영어학원 들러 아침 10시에 출근해요”

지역내일 2005-12-20
탄력근무제 직원만족 높아 ... 업무따라 적용하기 힘들기도
‘일찍 출근 일찍 퇴근?’ ... 눈치보여

주택금융공사 노 모씨는 오늘도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벌써 한 달째 계속되는 일과다. 곧바로 집 주위의 헬스클럽으로 발길을 돌렸다. 불어난 체중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큰 맘 먹고 한 달짜리 운동 티켓을 끊었다. 한 시간 반 정도 러닝머신에 몸을 맡긴 후 군살을 빼기 위해 트레이너로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교습을 받았다.
7시 10분경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아내가 준비해 놓은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노 팀장은 출근준비를 끝내고는 8시에 집을 나섰다. 회사로 가는 게 아니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영어학원에 들어갔다. 8시 5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9시부터 시작되는 이 강의는 50분만에 끝났다. 노 팀장은 서둘러 회사로 들어갔다. 커피를 한 잔 들고 책상에 앉았다. 10시. 4시간의 아침 여행이 종지부를 찍는 시간이다.
이제부터 2시간 바짝 근무하면 점심식사다.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는 집중근무시간. 이 시간만은 회의가 없다. 상사의 호출도 없다.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도록 할애된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는 오후 1시부터 다시 업무에 들어갔다. 나른해질 무렵 3시. 1시간 30분동안의 집중근무시간이 돌아왔다. 일에 집중하면 시계바늘은 금세 퇴근시간인 6시 30분을 가리킨다. 오늘은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 야근계를 내야 한다. 시간외근무 수당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노 팀장의 평균 퇴근 시간은 8시다. 송년회를 부르는 친구들의 전화통을 붙잡고 편안한 마음으로 모임장소로 발을 옮겼다.

◆걸음마 단계 ‘탄력근무제’ = 탄력근무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수출입은행이 해외영업팀만 일부 시행하다가 최근에는 그만뒀다.
산업은행 역시 올해부터 탄력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이를 시행하겠다고 나선 부서는 자금결제실과 자금거래실 뿐이다. 자금거래실은 최소 아침 8시에는 나와야 하고 자금결제실은 영업이 끝난 이후에 일이 많아 야근을 밥 먹듯 하기 때문이다. 다른 부서에서는 탄력근무제 도입권한이 있는 부서장 선에서 ‘보류’를 선언했다.
지난 11월 14일부터 시작한 주택금융공사 탄력근무제에도 고작 감사실과 경영관리부만 신청했다. 10시에 출근하는 사람은 5명이고 8명은 8시, 2명은 8시 30분에 회사로 나온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자율적으로 탄력근무제 실시를 부서에 맡겼더니 2개 부서 밖에 신청이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일부 부서는 부서장이 유보입장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업무와 다른 생각 = “탄력근무제를 하지 않아도 아침 8시 이전에 출근하고 오후 9시는 돼야 퇴근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수출입은행 관계자의 전언이다. 탄력근무제를 도입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는 것.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 편.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려는 사람이 문제다. 퇴근하려고 나가려면 뒤통수가 근질근질하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업무를 하고 있는데 먼저 퇴근하려면 눈치가 보인다”면서 “대부분의 업무에는 적용하기 힘든 제도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주택금융공사는 수차례에 걸쳐 협조공문 뿐만 아니라 근무지도에 나섰다. 8시에 출근한 사람은 오후 4시30분에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것.
조기출퇴근자가 퇴근시간을 넘겨 초과근무를 한다해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주택금융공사 정기춘 인사부장은 “예산 문제도 있지만 시간외 수당을 노리고 탄력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어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는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탄력근무제 시행 부서에 조기출퇴근자에 대해 퇴근에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눈치를 보느라 제때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육아형 탄력근무제 도입 등 숙제 = 주택금융공사가 탄력근무제 시행 이전에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4%가 탄력근무제 도입을 찬성했으며 가장 많이 지목한 찬성이유는 자기계발, 자녀교육, 건강유지 순이었다.
주택금융공사 손진국 인사부 과장은 “육아 등으로 탄력근무제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재는 원하는 대로 시행하기 어렵다”면서 “탄력근무제는 일정한 시간을 근무하는 업무와 업종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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