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떨친 사람들

지역내일 2005-10-20
빈곤층 가난탈출사업 제대로 하고 있나 ③
가난을 떨친 사람들

자활후견기관이라는 온실에서 출발해 어느 새 유년기를 넘긴 공동체들은 스스로를 사회적 기업이라 부른다. 사회의 지원으로 일어선 만큼 작으나마 공동체가 거둔 결실을 자활 참여자들과 나눈다. 자활사업단이 비슷한 분야에 진출할 경우 사업 방향과 축적된 경험 등을 전해주고 교육이나 훈련 등을 제공한다. 장기적으로는 저소득층 고용창출까지 꿈꾼다.
민간의 도움으로 새 삶에 도전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갓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기술이나 작업장 등을 자활사업 참여자들과 공유할 계획은 일찌감치 세워두었다.
어느 누구도 자활에 성공했노라고 공언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수입이 아직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해 정부 지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힘들지만 해보겠다는 의지와 앞날에 대한 희망은 자신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겹친 학력 경력 기술 부족, 정서적 안정감이나 육체적 건강 결여 등 다양한 빈곤의 조건 가운데 정서적 빈곤만큼은 떨치고 일어섰다.


간병사업단 전국네트워크 약손엄마회
‘엄마들’ 일자리가 목적이에요
회원 80%가 여성 가장·세대주 … 지역네트워크와 통합교육체계로 빠르게 성장

“내 손으로 애들 둘 대학 보내고 스물다섯 평짜리 아파트 장만했어요. 약손엄마회 얘기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려요.”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만난 장명희(58)씨는 행복해보였다. 일주일 중 6일은 꼬박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고된 일과에도 “운이 좋아 몸도 아프지 않았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결혼 전부터 단돈 10원도 직접 벌어본 적이 없다는 장씨는 “첫 직업으로 이렇게 성공했으니 천직인가 보다”며 웃는다.
“엄마들한테 정말 추천해요. 밑천 안 들이고 괜찮은 직업이에요.”
◆ 시장형 유료간병과 사회적 일자리형 복지간병 결합 = 약손엄마회는 자활후견기관의 시장형 공동체와 사회적 일자리형 자활사업단이 결합된 대표적인 형태다. 1998년 서울 마포자활후견기관에서 복지간병인사업에 참여했던 15명이 99년 약손엄마회라는 상호로 유료사업단을 만들었다. 2000년 마포를 비롯해 관악 노원 성동 4개 후견기관의 무료복지간병인사업단이 공동사업 형태로 결합했다.
지난해 서울지역 후견기관 내 무료사업단을 통합한 데 이어 전국 네트워크까지 만들었다. 통합 당시 170명이던 등록 회원이 현재 250명으로 늘었고 성바오로 적십자 서울대 이대동대문병원 등 10여개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매달 120~150여명을 파견하고 있다.
약손엄마회가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지역을 뛰어넘는 네트워크가 큰 몫을 했다. 회원 확보는 물론 시장이 되는 병원, 간병 수요자 발굴 등을 공동 진행하며 서로가 부족한 자원을 공유했다. 간병인이 유료 환자를 돌보다가 비용 지불 능력이 없는 수혜자를 발굴하면 무료 간병인을 연결한다. 반대로 무료 복지간병인 진출한 병원에서 입소문이 나 유료 환자를 의뢰받기도 한다.
회원들의 재·보수교육은 약손엄마회의 경쟁력을 키운 요인. 다른 간병인협회가 기초 교육을 마친 간병인 파견에 그치는 반면 약손엄마회는 매월 보수교육과 월례회의로 인성과 기술을 다진다. 아예 중앙간병교육센터를 독립시켜 체계적인 이론·실습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실습교육용 비디오나 교육교재를 개발하고 있다. 간병인협회로는 유일하게 간병배상책임보험과 상해보험에 가입해 환자의 신뢰도와 회원의 안정감을 높였다.
자활사업 참여자 대부분이 중장년층 여성들인 만큼 간병사업단은 각 후견기관의 집중력을 쏟기도 했다. 서울지역사업단이 통합되면서는 관악자활후견기관 실무담당자가 약손엄마회 상근자로 합류해 후견기관 간 소통이나 업무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 회원이, 회원을 위해 운영한다 = “약손엄마회는 우리들 것이에요. 다른 간병협회와 달리 영리 목적이 아니라 엄마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운영돼요.”
법적으로는 무료직업소개소지만 실질적으로는 매월 3만원 회비를 내는 상조회 성격이라 회원들 자부심은 대단하다. 대표나 병원별 지부장은 매년 선거로 뽑는다. 약손엄마회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모든 결정도 운영위원회에서 이루어진다. 올 봄 공개채용한 사무 간사도 회원 차지가 됐다. 내과 간병인으로 2년간 일한 강숙자(52)씨가 현장 경험을 앞세워 뽑혔다. 김미현 사무국장은 “경리와 회계에 능한 젊은 여성을 생각했는데 약손엄마회 취지에 맞게 회원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약손엄마회의 남은 고민은 간병인을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여성들의 직업으로 양성하는 것. 40대 후반부터 50대까지의 여성들이 주류이고 열명 중 여덟명은 한부모거나 실질적인 가장으로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때문에 24시간 일하고 하루 5만원, 월평균 140만원을 받아가는 지금의 수입은 부족하기만 하다. 강숙자씨 말대로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지만 빚이 늘어나지만 않으면 최저생활은 가능하다”.
김미현 사무국장은 “일은 힘들고 보수는 적어 차차상위만 돼도 견디기 힘들다”며 “사업비 지원보다 사업 활성화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나 기업에서 무료복지간병을 위해 사업비를 지원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일자리 확보로 이어지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회원 수가 적고 영업력이 부족한 약손엄마회로는 신규시장 개척이 쉽지 않다. 김 국장은 “부산 등 일부 지자체는 공공병원을 위탁했다”며 정부와 자치단체의 정책적 도움을 요청했다. 병원으로서는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저소득층 여성들로서는 보다 빨리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도시락·외식전문 자활공동체 나눔푸드
희망이 있기에 6년을 “버텼다”

신림복지관 독거노인 도시락 40개. 2001년 3월, 나눔푸드서비스가 도시락·외식전문 자활공동체로 독립할 때 확보했던 물량 전부다. 복지관을 주로 공략해 300개까지 늘렸을 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2005년 현재, 거래처만 150곳. 한끼에 도시락 2000~3000개를 공급해야 하는 전교조 행사를 3년째 맡아오고 있다.
나눔푸드는 99년 관악자활후견기관에서 기초수급자 11명과 외부에서 조리사 한명이 결합해 출발했다. 봉천동 나눔의집 푸드뱅크에서 공공근로로 일하던 최강종(50)씨를 김승오 현 관장(당시 실장)이 대표 감으로 ‘찜’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사장님’에서 순식간에 실업자로, 수급자로 전락해 술과 분노와 절망감에 젖어 살던 그에게 자활 의지를 발견한 터였다. 나머지 구성원도 최씨와 처지가 비슷한 노숙인쉼터 입소자나 알코올 중독자 등이었다.
공동체로 전환할 즈음, 인력이 고정되면서 평가도 좋아졌다. 지금은 음식 잘 한다고 소문났다. 그동안 끊긴 거래처는 한 곳도 없다. 품질 면에서는 공개경쟁도 자신있다. 그게 보람이고 희망이다. 수입은 독립한 이후 나아진 것 없지만, 그래서 6년째 버티고 있다.
희망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다. 자체적으로 교육도 하고 본인이 원하면 요리학원에도 보낸다. 가급적 자격증을 따도록 서로 격려한다. 최 대표는 “지금 구성원 모두가 다른 업체에 취업하면 수입이 적어도 두배는 될 정도”라고 말했다.
최종 관문을 넘기까지 가장 큰 고비는 외부의 시선이 될 것 같다. 최 대표는 “자활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저급이라고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행사만 해도 품질로 경쟁하자고 제안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500개 중 100개는 너네 줄게’하는 식으로 아직 ‘시혜’를 베풀 뿐이다.



사회연대은행 지원받은 이승환씨
곱창사랑은 서민들과 삶을 나누는 공간

“손님들과 어울리면서 힘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 예전의 왕대포집을 생각하면 될 거예요.”
이승환(35)씨는 지난해 11월 다시 ‘사장’이 됐다. 사회연대은행의 무담보 소액대출로 송파구 방이시장 안에 곱창사랑(송파구 방이시장 내)을 열었다.
유전적 골다공증, 탈골돼 바깥쪽으로 휘어진 양쪽 팔. 이씨는 5급 지체장애인이다. 97년 교통사고로 척추분리증까지 더해 회사생활이 힘들어지자 개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편하겠다 싶어 무작정 문구점을 택했다. 그러나 8년간 빚만 1억원으로 늘었고 그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정리해서 빚을 털고 나니까 손에 550원이 남아요. 그걸로 아들한테 컵라면을 사줬어요.”
이승환씨가 가진 큰 자산 중 하나, 그는 긍정적이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맏아들이 시장골목에서 곱창가게를 한다고 부모님은 아직 못마땅해 하신다. 그래도 창피하지 않다.
“직장 취업이 다가 아니에요. 사회 탓, 부모 탓만 하지 말고 리어카라도 끌어야죠. 장애가 있더라도 마음만 있으면, 미치면 할 수 있어요. 내가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하루 매출은 많아야 30만원. 곱창을 전문으로 하지만 술을 많이 파는 게 목적이 아니다. 손님이 원하거나 추천하는 조리법을 바로 시험해본다. 곱창사랑은 곱창 맛을 평가받고 외식업에 대한 경험을 쌓는 훈련장이기 때문이다.
다음 목표는 프랜차이즈 외식업체. 곱창사랑으로는 아니다.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그가 받았던 도움을 사회에 되돌리고 싶어 계획을 미뤘다.
“처음에는 곱창 소스로 프랜차이즈를 할까 했는데 공동브랜드로 마음을 바꾸었어요.”
사업실패 경험부터 곱창에 대한 지식, 소스 만들기 등 온갖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다. 프랜차이즈 고민도 공동브랜드 업주들과 함께 진행시킬 것이다.



민간 쉼터에서 자활준비한 김춘철·유관선씨
가족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김춘철(51)씨와 유관선(44)씨는 선·후배 사이다. 도박 마약 알코올 중독자와 노숙자 출소자 등의 재활을 위해 한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십자가쉼터 출신이다. 강원도 횡성 수련원에서 3개월간 치료를 마치고 서울 정릉의 쉼터에서 사회적응훈련을 하고 있는 30여명 중에서 선발됐다.
도박중독으로 아내와 아들에게 외면당한 김씨는 마약에도 손을 댄 전력이 있다. 전기기술자로 20년 일했지만 손에 쥔 건 없다. 전직 은행원인 유관선씨는 술이 문제였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며칠씩 마셨다. 불과 넉 달 전의 일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폐가전제품을 수거해 수리·재판매하는 조그만 가게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자락에 가게 터도 잡아두었다. 김씨는 주로 수리를, 유씨는 기술자 보조와 회계를 담당할 예정이다.
“신나는 조합에서 대출을 받을 거예요. (쉼터 운영주체인) 선교원에서 돈을 대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책임감이 떨어질 것 같아요.”
가전제품 수리·판매는 두 사람이 준비하는 일의 일부에 불과하다. 빈 약병을 수거·세척하는 일은 물론 일용직 인력사무소도 운영하게 된다. 실무자들이 ‘사회로 나가도 되겠다’는 졸업장을 내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쉼터 후배들이 부족한 손길을 채우게 된다.
쉼터 이화랑 사무국장은 “중독자들은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고 문제가 생기면 부딪치기 보다는 회피해버리기 때문에 가게 운영이 평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춘철씨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한번씩 고생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 힘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내와 아이한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 거예요."



믿고 기다려준 고마움은 물질적 도움 이상
자활후견기관에서 알콜중독 이겨낸 박준창씨

“내가 그 입장(후견기관 복지사)이었다면 나같은 사람 잘라버렸을 거예요. 참고 기다려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자활공동체 광고닷컴 일원인 박준창(51)씨. 아직 수급 상태지만 자활에 성공했다고 자신한다. 3년 이상 그를 짓누르던 술에서 벗어나 아이들과의 미래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영업과장 출신인 박씨는 90년대 초 무역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남부러울 것 없었다. 사업이 기울고 아내마저 떠나버리자 술독에 빠져 살았다.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는 지경까지 갔다. 급기야 지난 2000년 집에서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퇴원후 한달간은 동네 약사가 간호사를 보내 해독제와 영양제를 주사해주었다. 주인집 부부와 이웃들이 살림살이를 들여다봐주었다. 겨우 몸을 추스린 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의 주선으로 강서등촌자활후견기관을 찾았다.
“후견기관에 나오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일도 안하고 왔다 가기만 해도 월급 꼬박꼬박 타먹는 사람들도 다 싫었고. 공공근로는 나이든 사람이나 중증장애인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못해 술병을 품고 출근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시절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항상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6개월이나 지냈을까. 광고닷컴 담당 실무자인 정재환 과장이 술병을 뺏어들었다. “이러다간 죽을 지도 모른다”고 호통을 쳤다.
병원에서 간경화 초기 진단을 받았다. 늦었지만 당장 술을 끊으면 된다고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술을 끊고 싶었다. 인근 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으며 약을 복용했다. 매일 아침 우장산을 오르며 건강을 다졌다.
“아직도 흔적은 남아있어요. 대부분 사라졌는데 이마를 비롯해 몇군데 빨간 반점, 주독이 있어요.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술이.”
광고닷컴에서 활동영역도 넓혔다. 본래 영업 담당이지만 디자인도 배웠다. 마음가짐 때문인지 후견기관도 다르게 보였다. “모두가 같은,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닷컴이 공동체로 독립하기까지 스무명 남짓 들락거렸지만 박씨는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둘째가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입대를 하면 정부 지원은 안받아도 될 것 같아요. 생활비는 얼마 안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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