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번째 그 날

배용규 칼럼 - 농촌에서 띄우는 편지

지역내일 2001-01-20
새해 달력을 구해 왔을 때 아내가 “1월 17일 날이 무슨 날이지요?”라고 물었다. 수요일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래요?”라고 반문하며 그냥 밖으로 나갔다. 아니 도대체 그 날이 무슨 날인데? 음력 섣달 초열흘인 할머님 제삿날인가? 잠시후 다시 방문을 열더니만 “당신! 우리 결혼 기념일이 언제인가 알기나 해요?”라고 했다. 아차 또 한방 먹었구나. 그러나 당당해야지 “여보! 스무해를 살면서 농담하는 것도 모르나? 올해는 어디로 가던지 여행이라도 가자. 당신 가고 싶은 데로 계획을 한번 세워봐. 그럼 가자는 데로 갈 테니까”라고 하며 간신히 한고비를 넘겼다.
도대체 나는 결혼생활 몇점짜리 남편일까? 작년 결혼 기념일에도 모임이 있어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다가 밤늦게 되어 아내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맏고 반쯤 취한 상태에서 오늘 미국
사람 만나서 술 한잔한다고 했더니 그 길로 사흘동안은 고전을 치르지 않았던가? 음력으로
는 섣달 열 이튿날이어서 초창기에는 1월 12일로 착각해서 구박 당하기도 했다. 올해는 잊
어버릴까 두려워 아예 달력에 결혼 기념일이라고 적어 두었다. 남세스러운 이야기지만 우리
는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다. 나는 첫날밤을 당신이 만들어온 이불을 덮고 우리 집에서 자는
것이 좋다고 했고 착한 당신은 내 말을 따라주었지만 실제로 그때 내 형편으로는 어려운 살
림에 신혼여행가는 돈이 아까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 여행 경비로 우리는 찬장을 샀
지? 지금은 많이 었어졌지만 당신이 장만해온 사기그릇을 찬장 가득히 넣어놓고 바보처럼
둘이서 흐뭇해 했었잖아. 그리고 남들은 신혼여행 사진 들여다보며 즐거워 할 때 우리는 방
을 드나들며 찬장을 들여다보며 즐거워하지 않았나? 지금도 형편이 좋아 남들보다 경제적으
로 잘사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하고 착한 원호, 선미, 민호가 있고 양식할 논 있고 생활비 마
련해 주는 사과밭 있고 어머님 모시고 살며 당신과 나 사이에 사랑 있으니 당신 믿는 하나
님께나 어머님이 믿는 부처님께 우린 복 받고 사는게 아닐까?
내일이면 당신이 말하던 20주년 결혼기념일인데 신혼여행도 못 다녀왔는데 대신 어디로 갈
래? 처음에는 망설이든 당신에게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동남아시아 쪽으로 가자더니
벌써 마음이 변해 농촌이 이렇게 어려운데 꼭 외국까지 갈 일이 무어 있느냐며 제주도나 울
릉도로 가자고 했지? 그러다가 어제는 애들 데리고 동해안에 회나 먹으로 가자고 했지? 그
러다가 내일이 되면 추운데 그냥 집에 있자고 하지나 않을까? 내 머리카락에 흰 새치가 한
두 개씩 보이더니 벌써 반백이 가까워오고 키가 커서 늘씬해 보이는 당신이지만 실속은 옆
구리 살이 한 움큼씩 쥐여질 때가 되니 당신도 이제 겁나는 게 없어지는가 보다. 오늘은 십
년 전에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고란동까지 삼십리길 밤나들이도 갔잖아. 전화가 오면 당
신을 데리러 갈테니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는 추운데 집에 있자고만 하지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 보자. 결혼 20주년 기념여행을.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