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 종양 수술과 5년에 걸친 투병생활, 국가적 경제위기(IMF)로 가정경제 파탄, 결혼생활 15년 만에 남편과 이혼….
지난 2002년 ‘모자가정’ 대열에 합류한 김선희(가명·46·경기도 안양시)씨. 그에게 지난 3년은 “수급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었다.
자선 베풀듯 정부지원을 제공하는 공무원들의 무성의한 태도에 움츠러들었다. 가난하면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에 상처받았다. 세 식구를 위한 공적구제망에는 정작 자립에 필요한 도움은 빠져있다.
◆“그런 제도 없어요” 무성의한 담당공무원 = 이혼 뒤 김선희씨에게 남은 건 10대인 두 아이와 빚 6000만원. 당장 생활이 막막해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담당 공무원의 첫 마디는 “친정어머니한테 가셔야지 여긴 왜 오셨어요?” 하는 물음이었다.
“부양할 사람이 있는데 정부지원을 받으려 한다고 질책하는 것 같았어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귀띔만큼이나 저간의 사정을 들어주길 기대했건만 턱도 없었다.
실사기간에도, 이듬해 재심의를 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업하는데 얼마나 버느냐” “금융소득이 잡힌다”는 식이었다. 보험대리점을 폐업신고하지 못한데다 지인이 다단계 판매회사 회원등록을 해놓은 것이었다. 금융소득은 15년 전에 가입한 보장성 보험과 은행융자를 받는 조건으로 가입한 적금이었다. 은행부채나 세금기록을 살펴보는 배려는 없었다.
“조금만 신경 쓰면 확인이 가능한데 그냥 겉으로 드러난 것만 문제를 삼은 거죠.”
싼 이자로 전세자금을 대출받을 자격이 된다는 안내문을 받고 문의했을 때는 황당한 답변도 들었다. “그런 제도는 없다”는 것이었다. 구청에서 동사무소에 연락을 취한 뒤에도 “기껏해야 700만원인데 그래도 신청하겠느냐”는 빈정거림을 들었다.
◆“가난하면 고졸로 만족해라” 구멍 난 정부지원망 = “모자가정 되면 생활비라도 보태주는 줄 알았는데 교육비 안내는 게 전부에요.”
그나마 큰 아이가 만 스무 살이 되는 내년이면 교육비 지원도 끝이다. 모자가정은 만 18세 이하(학생일 경우에는 20세) 자녀를 부양하는 어머니를 위한 ‘한시적’ 지원이라 그렇다.
“가난한 집 애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돈 벌라는 거죠. 그렇지만 못 배운 아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설 수 있겠어요? 따지고 보면 나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 이렇게 사는 건데 애들은 이 굴레를 벗어야죠.” 김선희씨는 “최소한 둘째 고등학교 학비만이라도 지원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절실한 것 중 하나는 의료지원. 보험수가의 20%를 깎아주는 모자가정의료비 할인증은 크게 보탬이 안 된다. 딸이 결핵을 앓을 때는 보건소 약만 먹였다. 그는 “미안한데 어쩔 수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 역시 종합검진 결과 심장질환과 갑상선 이상을 통보받았지만 정밀검사는 포기하고 산다.
김씨는 “의료비 전액지원이 힘들다면 긴급검사비만이라도 지원돼야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난 때문에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병들고 몸이 아프면 일을 못하니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다.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 찾아야죠”= 김선희씨는 보험회사 텔레마케터이자 이유식 대리점 점주다. 그래봐야 수입은 들쭉날쭉. 은행 이자와 생활비도 감당이 안 된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자동 인출되는 각종 공과금도 빚을 더한다. 김씨는 “생활비를 장기·저리로 대출해주거나 최소한의 여유가 생길 때까지 공과금 지불을 유예해준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김씨의 또다른 직함은 ‘사치’스럽다. 운 좋게 보훈대상자인 아버지 둔 덕에 공짜 공부를 한대도 그렇다. 먹고 사는 게 급한데 공부는 해서 뭐하느냐는 거다. 김씨는 “그렇게 치면 애들도 당장 학교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 들어서 애들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죠. 다행히 나는 아버지라는 좋은 끈이 있어서 이나마 준비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청소년단체와 한부모가족 지원단체 상담자원봉사를 지속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앞날을 대비해 경력을 쌓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자원봉사도 못하나요. 봉사는 사실 나를 치료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이 일을 하다보면 희망이 보이거든요.”
빚투성이 살림살이, 딸과 아들의 교육, 세 식구의 건강, 어느 한쪽이라도 좋다. “조금만 거들어준다면 곧 일어설 것”이라고 김씨는 자신했다.
/기획특집2팀·사진 이의종 기자
지난 2002년 ‘모자가정’ 대열에 합류한 김선희(가명·46·경기도 안양시)씨. 그에게 지난 3년은 “수급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었다.
자선 베풀듯 정부지원을 제공하는 공무원들의 무성의한 태도에 움츠러들었다. 가난하면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에 상처받았다. 세 식구를 위한 공적구제망에는 정작 자립에 필요한 도움은 빠져있다.
◆“그런 제도 없어요” 무성의한 담당공무원 = 이혼 뒤 김선희씨에게 남은 건 10대인 두 아이와 빚 6000만원. 당장 생활이 막막해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담당 공무원의 첫 마디는 “친정어머니한테 가셔야지 여긴 왜 오셨어요?” 하는 물음이었다.
“부양할 사람이 있는데 정부지원을 받으려 한다고 질책하는 것 같았어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귀띔만큼이나 저간의 사정을 들어주길 기대했건만 턱도 없었다.
실사기간에도, 이듬해 재심의를 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업하는데 얼마나 버느냐” “금융소득이 잡힌다”는 식이었다. 보험대리점을 폐업신고하지 못한데다 지인이 다단계 판매회사 회원등록을 해놓은 것이었다. 금융소득은 15년 전에 가입한 보장성 보험과 은행융자를 받는 조건으로 가입한 적금이었다. 은행부채나 세금기록을 살펴보는 배려는 없었다.
“조금만 신경 쓰면 확인이 가능한데 그냥 겉으로 드러난 것만 문제를 삼은 거죠.”
싼 이자로 전세자금을 대출받을 자격이 된다는 안내문을 받고 문의했을 때는 황당한 답변도 들었다. “그런 제도는 없다”는 것이었다. 구청에서 동사무소에 연락을 취한 뒤에도 “기껏해야 700만원인데 그래도 신청하겠느냐”는 빈정거림을 들었다.
◆“가난하면 고졸로 만족해라” 구멍 난 정부지원망 = “모자가정 되면 생활비라도 보태주는 줄 알았는데 교육비 안내는 게 전부에요.”
그나마 큰 아이가 만 스무 살이 되는 내년이면 교육비 지원도 끝이다. 모자가정은 만 18세 이하(학생일 경우에는 20세) 자녀를 부양하는 어머니를 위한 ‘한시적’ 지원이라 그렇다.
“가난한 집 애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돈 벌라는 거죠. 그렇지만 못 배운 아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설 수 있겠어요? 따지고 보면 나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 이렇게 사는 건데 애들은 이 굴레를 벗어야죠.” 김선희씨는 “최소한 둘째 고등학교 학비만이라도 지원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절실한 것 중 하나는 의료지원. 보험수가의 20%를 깎아주는 모자가정의료비 할인증은 크게 보탬이 안 된다. 딸이 결핵을 앓을 때는 보건소 약만 먹였다. 그는 “미안한데 어쩔 수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 역시 종합검진 결과 심장질환과 갑상선 이상을 통보받았지만 정밀검사는 포기하고 산다.
김씨는 “의료비 전액지원이 힘들다면 긴급검사비만이라도 지원돼야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난 때문에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병들고 몸이 아프면 일을 못하니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다.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 찾아야죠”= 김선희씨는 보험회사 텔레마케터이자 이유식 대리점 점주다. 그래봐야 수입은 들쭉날쭉. 은행 이자와 생활비도 감당이 안 된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자동 인출되는 각종 공과금도 빚을 더한다. 김씨는 “생활비를 장기·저리로 대출해주거나 최소한의 여유가 생길 때까지 공과금 지불을 유예해준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김씨의 또다른 직함은 ‘사치’스럽다. 운 좋게 보훈대상자인 아버지 둔 덕에 공짜 공부를 한대도 그렇다. 먹고 사는 게 급한데 공부는 해서 뭐하느냐는 거다. 김씨는 “그렇게 치면 애들도 당장 학교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 들어서 애들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죠. 다행히 나는 아버지라는 좋은 끈이 있어서 이나마 준비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청소년단체와 한부모가족 지원단체 상담자원봉사를 지속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앞날을 대비해 경력을 쌓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자원봉사도 못하나요. 봉사는 사실 나를 치료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이 일을 하다보면 희망이 보이거든요.”
빚투성이 살림살이, 딸과 아들의 교육, 세 식구의 건강, 어느 한쪽이라도 좋다. “조금만 거들어준다면 곧 일어설 것”이라고 김씨는 자신했다.
/기획특집2팀·사진 이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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