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교육 이대로 좋은가

부실교육으로 예산·시간 낭비 지적

지역내일 2005-07-15
지난 8일 서울시 한 구청 강당에서 오후 2시부터 민방위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200여명의 참가자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강의실이 꽉 차고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복도로 나와 담배를 피워댔다.
교육이 시작되자 강사가 나와 에이즈와 성병 공포에 대해 한참을 설명한 뒤 콘돔 사용법에 대해 강의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꾸벅꾸벅 졸고 일부는 강사의 코믹한 강의를 키득거리며 들었다.
1시간30분 강의가 끝나자 구청 공무원은 “건물 앞마당에 헌혈차가 왔으니 헌혈을 한 사람에 한해 참가 확인서를 나눠주겠다”며 “헌혈을 하지 않을 경우 나머지 2시간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헌혈을 유도했다. 일부 참가자는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헌혈차로 향했다. 민방위 교육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모습은 이제 일반적인 모습이 됐다.
1975년 민방위기본법이 제정돼 민방위 교육과 훈련이 시작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부실한 내용과 형식적 운영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지자체 홍보장으로 전락 = 민방위 교육장이 자치단체장의 표몰이장으로 변하기도 한다.
광주광역시 한 구청의 경우 구청장이 모두 25차례에 걸쳐 민방위 대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업적을 홍보했다. 이 구청장은 “장학재단 설립, 관광지 개발, 노인복지센터 건립 등은 자신이 한 일이다”고 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또 강사의 음담패설과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경남의 한 지자체 민방위 교육에서 강사가 ‘생활과 안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호주제가 폐지되면 근친결혼이 이뤄지는 등 문제가 많다”며 “여성이 지켜야할 도리인 삼종지도가 무너지면 여성이 접대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해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강원도에서는 강사로 초빙된 인사가 정부정책을 비판하자 교육생들이 이를 청와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서 해촉된 경우도 있었다.
참석 확인도 형식적이다. 보통 아침 7시30분쯤 소집되는데 부인이나 지인이 대신 와서 참석 확인서를 받아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실정이어서 민방위 교육이 시간·예산 낭비라는 질타를 받고 있고 소방교육 등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개선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민방위 교육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 성과를 내고 있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경남 거제군은 전국 최초로 민방위 지원대 발대식을 가졌다.
민방위 지원대는 그동안 자율동원에 의존하던 민방위대 동원체제에서 탈피, 7∼9월 풍수해 대책기간과 1∼3월 산불예방기간에 상시 동원체제로 가동돼 재난복구 및 구호활동을 하게 된다.
또 강원도 속초시는 가스사고 발생시 대처요령을 비롯해 응급환자 발생시 행동요령, 주민신고 요령, 경보 식별 행동요령 등을 코믹한 연극으로 구성해 민방위 대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
제주시는 재난 전담 부서인 ‘재난안전관리과’를 신설하고 이론위주의 교육에서 실기·실습 등 실용교육 위주로 교육 과정을 변경했다. 또 생업으로 바쁜 대원을 위해 야간교육과 일요교육을 실시하고 민방위 상설교실을 운영해 본인이 희망하는 날짜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행정자치부는 이런 제주시를 모범 지자체로 선정했다.
서울 강남·송파·강서구 등에서는 인터넷교육을 도입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 구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이버민방위교육은 재난대피 및 대처 요령을 비롯, 시사상식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교육 후에는 간단한 시험을 통해 이수를 확인한다.
인터넷교육을 가장 먼저 도입한 강남구의 경우 올해 상반기 64.2%의 참석률을 기록했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면 소집교육을 받으면 된다.
소방방재청 민방위계획과 김현수씨는 “최근 들어 민방위 교육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라며 “국제테러가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한 훈련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석용 오승완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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