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100만 시대,돌파구를 찾는다:실직불안에 떠는 30~40대 가장>허드렛일도 찾지만 허탕치기 일쑤

판단력·능력도 사회변화로 허사 … 새 분야 직업에서 안정찾기도

지역내일 2001-01-16 (수정 2001-01-17 오후 3:31:29)
상장회사 모 중견기업 환경분야에서 17년간 종사해온 엔지니어인 B모(46)씨.
본사 부장과 지사 소장직을 역임하다 지난해 구조조정에 휘말려 졸지에 실직자로 거리에 내몰렸다.
부원들을 자를까 고심하다 “그럴 수 없다”며 자신이 사표를 내던지고 부하직원을 살려낸 것이 발
단이었다.
선의의 경쟁이 치열한 직장생활에서 타인의 사정을 봐줄 것도 못된 처지로 자신부터 살아야 하나 먼
저 희생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의협심은 순간에 그칠 뿐이었고 고통은 오래오래 지속되고 있다.
그는 현재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헤매고 있다. 기술직이어서 퇴직후 어떤 직장이든 ‘월컴’하고 바
로 취업될 것을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퇴직후 10군데를 찾아가 봤지만 대리급 정도만 필요로 한다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어댔다.
건설업체 K사의 사원모집광고를 보고 응시를 했다. 결론은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상장업체인 이
회사의 회장이 경상도 사람이어서 그의 고향이 전라도라는 이유만으로 채용할 수 없다는 것이 채용
거부 원인이었다.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이곳 저곳 헤매며 직급도 하향해 지원도 봤지만 당최 길이
열리지 않았다.
그는 자격증이 대기 환경 주택관리 수질 건축 등 분야의 기술사 자격등도 고루 갖추고 있는데도 취업
길을 좀처럼 찾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보험금으로 3개월 버티고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죽고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한다.
재건축 아파트에서 기거하면서 이주에 대비, 주거 이전비나 건축비를 추가로 내야할 판국이 벌어졌
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학생과 대학생의 학비로 600만원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학비를 대줄 방법이
까마득하다.
보다 못한 부인이 팔을 걸어 붙였다.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따놨던 부인이 부동산 소개업체에 인센
티브 형식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워낙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서 소개실적을 좀처럼
낼 수 없는 처지다. 요즘 교통비까지 꿔가며 생활해야 하는 형국이 벌어진 것이다.
퇴출상장기업 총무부장으로 근무하다 지난11월초 실직한 S모(48)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부의 퇴출조치로 당장 살길이 막막하게 됐다. 회사의 임직원들은 채권단과 정부에 항의나 농성, 심
지어 회생에 모든 임직원들이 발벗고 나서 경영정상화에 힘써보겠다고 애걸하고 다짐도 해봤지만 헛
수고 였다. 주인이 없는 회사는 공장 문을 닫았고 정들었던 동료직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뿔뿔이 헤어
져야 했다.
이곳 저곳 재취업을 위해 기웃거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술직 등 전문직종도 갈곳이 마땅치 않는
처지에 사무직 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등학생인 딸과 노모까지 병
석에 눕고 말아 생활이 말이 아니다.
이번 대학입시 때 장남이 서울명문사립대학을 입학했지만 등록금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다. 등록금
에 용돈을 해결해줄 묘책이 없어서다.
생활비라도 몇 푼 벌기 위에 공사판을 찾아봤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경기 때문에 막노동 일자리
도 없다. 인력시장을 서성거려 봐야 고작 1주일에 1~2차례 기회가 오는 것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판원 직업도 선택해 봤지만 험난하고 복잡한 이 분야에서 좀처럼 적응할 수 없
어 날씨와 경기가 풀리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부인이 요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거주지인 중동신도시 근처 분식집 주방
종업원으로 삯을 팔고 있다.
아침 6시부터 저녁9시까지 15시간동안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에 매달려봐야 손에 쥔 것은 하루 일당
3만5000만원. 일을 끝내고 시장에서 내일 쓸 반찬거리를 구입하면 주머니는 텅비고 만다. 저축이고
뭐고 할 겨눌이 없어 어떻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느냐가 그의 가정엔 지상과제이다. 16일 새벽 5시
10분 3호선 백석동 전철역. 삼삼오오 짝을 지은 40대 남성과 여성 20여명이 첫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다.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 탓에 두터운 외투와 털목도리를 몸에 둘렀지만 어깨를 잔뜩 움츠
리고 있다. 작업복 차림으로 봐 품을 팔려 가는 사람들의 일행임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말끔한 옷차림에 지적냄새가 물씬 풍기는 40대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오늘은 “온몸이 쑤셔 꼼
짝할 수 있어야지, 식솔이 나만 쳐다보고 있으니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동
료 여성들에게 하소연을 한다. 이들은 서울 용역회사에 고용된 청소부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상당수
가 IMF 때 또는 최근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러 나온 주부 가장들이거나 한푼이라도 벌어보
겠다고 이을 악물고 나선 실직자들이다.
3일째 백화점에서 배달업무를 대행하고 있다는 최모(49)씨는 “직장에서 쫓겨난 마당에 우선 집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는 며칠전 부인이 청소일과 남의 가정일을 돌보는 일에 나섰다가 몸살로 5일째 앓아 눕고 말았다
고 덧붙인다.
이같은 첫 전동차에 몸을 실은 주부가장과 40대실직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많아지고 있다.
지하철 역무원 이모(39)씨는 “지난해 이 시즌에는 첫차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 부쩍 늘어난
것은 아마 일력시장을 향하는 사람들의 증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공공부문과 금융부문 구조 조정 및 계절적 요인까지 한꺼번에 겹칠 것으로 보여 얼마나 더
많은 실업자가 양산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실업은 주로 30~40대 남성들 사이에서 대거 발생되고 있다.
반면 실직에 대비 한파를 지혜롭게 넘기는 가장도 많다. S그룹 계열사에서 영업분야에서 종사하다
지난해 12월 실직한 K씨는 일찌감치 요리를 배워 회사근처에 집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 일식 점
을 개점했다. 하루 매출이 70만원에서 최고 100만원대를 육박해 직장생활 때 보다 소득이 3배이상
껑충 뛰어 매일 흥겨운 일과를 보내고 있다. 한국통신의 강남 영업부 한 간부도 요즘 구조조정 회오
리에 따른 실직에 대비 정보통신관련 기술을 읽히고 있다.이승우 기자 rh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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