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콘돔금지령’에 정면반발

남아공 신부들 무료배포 시작 … 바티칸 진보진영도 교황설득 나서

지역내일 2005-05-09 (수정 2005-05-09 오전 11:39:45)
아프리카를 뒤덮고 있는 21세기 흑사병 에이즈(HIV 에이즈 바이러스/AIDS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심각성을 보다 못한 남아프리카 신부들이 바티칸의 계율을 거부하고 직접 콘돔 배포에 나섰다.
유엔 에이즈기구(UNAIDS)에 따르면 2004년 11월말 현재 에이즈에 감염된 인구는 3940만명(3590만~4430만명)으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이중 감염자가 가장 많은 (2340만~2840만명)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530만명으로 최고 수준이다.

◆“콘돔만 있어도 에이즈 예방 가능” = 남아공의 에이즈 퇴치와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 선봉에 선 루얀다 은곤야마.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난 평신도로 교구 일과 지역 주교 회의에 열성적으로 참석했지만 아무리 해도 세계적으로 에이즈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콘돔 사용을 금지하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는 동의 할 수 없었다. 그는 바티칸의 이런 태도를 ‘범죄적’이라고 비난한다.
32세의 은곤야마는 몇 달 전, 남아공의 에이즈퇴치 협회인 ‘트리트먼트 액션 캠페인’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남아공주교회의’ 협회 마저 탈퇴했다. 그는 “콘돔만 사용했어도 에이즈를 피할 수 있었을 사람들의 얘기를 듣노라면 신앙 자체에 의문까지 들게 된다. 사람들이 성관계를 좋아하고 혼외성관계를 맺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곤야마와 주교를 포함한 남아공 가톨릭 신자들은 에이즈 바이러스를 막는 방법으로서의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한다. 이들의 입장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전 교황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콘돔이 수백만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하지 피임을 목적으로 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하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많은 가톨릭신자들은 바티칸의 핵심 강령이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인 만큼, 바티칸이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콘돔 사용을 주장하는 가톨릭 사제 중 가장 유명한 케빈 다울링 루스텐베르크 주교는 “임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다”면서 “우리는 모든 이의 생명을 구할 수는 없지만 콘돔 사용으로 상당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콘돔 사용을 주장하는 이들은 2001년 ‘결혼한 부부 중 한명 혹은 둘 다가 HIV 바이러스 보균자일 경우 콘돔 사용은 바로 양심의 문제’라고 선언한 남아공주교회의 선언을 내세운다.

◆“자유분방한 성관계 현실 인정해야” = 그러나 310만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남아공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은 이런 발표가 선언에 명시된 예외적 상황에서만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선언의 또 다른 단락이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콘돔의 사용은 금지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러 신부와 사제들은 결혼한 부부에 한정돼 있는 이 논리가 동거상에 있는 커플이나 결혼은 했지만 배우자가 에이즈 보균자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부부에게도 적용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남아공의 가톨릭 단체들은 고위사제가 부재중을 틈타 콘돔을 무료 배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에이즈 퇴치에 열성적인 가톨릭 교도일수록 콘돔사용에 긍정적이다. 어떤 가톨릭신자라도 빈민굴에서 에이즈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절규를 목격한 사람들이라면 ‘콘돔을 사용하라’고 말할 것”이라고 케이프타운의 가톨릭 주간지인 더 사우던 크로스의 군터 심머마허 편집장은 지적했다.
한편, 바티칸 내 진보진영도 베네딕토 16세 새 교황에 콘돔 사용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콘돔 사용을 통한 인위적 피임과 관련 에이즈는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큰 위협이라며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콘돔이 필요하다고 바티칸을 설득하고 있다.

/이지혜 리포터 2ma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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