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에도 ‘진한’ 성문화 있었다
독일서 노골적인 성행위 조각상 발견…‘난잡한 성생활 증거’ 분석에는 이견 팽팽
지역내일
2005-04-14
(수정 2005-04-15 오전 11:50:02)
최근 몇 년 사이 독일에서 석기시대 성행위 조각상들이 잇달아 발견됐다. 그러나 7000년이나 된 이 조각상의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인류의 조상은 무절제한 섹스광이었는가 아니면 신속한 이동을 위해 출산을 엄격하게 제한했는가. 아직 분명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석기시대 인류들도 성적인 상상력이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속속 발견되고 있다고 4일자 슈피겔지가 전했다.
2003년 8월19일 독일 동부의 라이프찌히 근교에서 7200년 전 석기시대 유럽 최초의 농민들이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가 발견됐다. 쓰레기 더미에서는 높이 8.2 센티미터의 진흙으로 빚은 조각상이 발견되었는데 머리와 다리 배 부분은 떨어져 나갔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엉덩이와 음경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조각상은 ‘체르니츠에서 온 아도니스’라고 명명되었다.
아도니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석기시대의 쓰레기 더미를 면밀하게 조사하던 중 또 다른 조각상이 나왔다. 왼쪽 종아리에서부터 골반부분까지 남아있던 그 조각상은 아도니스의 여자친구임이 분명했다.
두 조각상 모두 키가 30센티 정도로 추정됐고, 남성상은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서있는 모습인데 여성상은 허리를 거의 90도로 구부리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성교장면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도니스와 그 여자친구 이외에도 6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원이 콘스탄체호수 제방에서 발굴되었다. 흙으로 빚은 여자 가슴조각들도 함께 출토되었는데 사원의 벽을 장식한 것으로 보였다.
초기 인류의 성생활에 대한 실마리들이 발견되면서 고고학계의 해묵은 논쟁에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원시시대 인류의 성생활에 관한 논쟁이었다.
◆인간의 초기 성생활은 난잡했을까 = 홍적기시대 인류의 성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러나 초기인류의 사회생활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미진하기 때문에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이 많이 남아있다.
인류가 성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누가 최초로 근친상간을 금지했으며 일부일처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는가. 네안데르탈인들은 한 움막 안에서 모든 가족들이 함께 잠을 잤는가.
만약 이런 질문에 답할 수만 있다면 원시시대의 성생활에 대한 비밀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을 발견하기는커녕 학자들 사이의 의견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따라서 아담과 이브의 잠자리의 비밀도 여전히 미스터리 속에 감추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원시인류의 성생활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팽팽하게 부딪히고 있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초기 인류는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했으며 숲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호르몬과 유전자가 지시하는 대로 끊임없이 성생활을 즐겼다”고 주장한다.
반면 터부이스트라고 불리는 학파는 “초기 인류는 엄격한 금욕주의의 규제를 받았다”면서 “네안데르탈인의 성생활은 결코 난잡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쟁은 3만2천년 된 석기시대의 남근조각상에 대해서도 완전히 의견이 갈린다. 한쪽은 “여성들이 성적 쾌락을 위해 사용했다”고 믿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처녀성을 제거하는 의식에서 쓰여졌던 제례용 도구”라고 설명한다.
◆오래된 ‘성 역사’ 입장 대립 = 터부이스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찰스 다윈을 들 수 있다. 다윈은 “소규모 유목민 무리에서는 지도자가 모든 여성을 독차지했다”면서 “지금 인간들의 질투심을 보더라도 이성간의 성생활이 관대하게 허용되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적고 있다.
다윈은 “초기 석기시대를 집배한 것은 성욕과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쟁이었다”면서 “강한 남성들이 여성들을 독차지하고 약한 남성들은 동성애를 하거나 침팬지처럼 자위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도 “옛날 한 뛰어난 인간이 생각해낸 토템신앙은 폭력을 잠재우고 사회공동체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토템신앙은 평화와 질서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성욕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제를 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아프리카와 호주에서는 토템신앙이 살아있었는데 그들은 성생활을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어떤 부족에서는 형제간이라도 남자가 누이의 이름을 부르거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끼리는 결혼할 수 없었다.
터부이스트들는 “만약 인류가 성욕을 절제하지 못했다면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고층에 결코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유로운 성생활은 1년 중 특별한 축제기간에만 허용됐으며 1년 동안 축적된 성에너지를 열광적인 섹스파티를 통해서 해소했을 것”이라고 보고있다.
/김광호 리포터 holhol@naeil.com
2003년 8월19일 독일 동부의 라이프찌히 근교에서 7200년 전 석기시대 유럽 최초의 농민들이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가 발견됐다. 쓰레기 더미에서는 높이 8.2 센티미터의 진흙으로 빚은 조각상이 발견되었는데 머리와 다리 배 부분은 떨어져 나갔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엉덩이와 음경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조각상은 ‘체르니츠에서 온 아도니스’라고 명명되었다.
아도니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석기시대의 쓰레기 더미를 면밀하게 조사하던 중 또 다른 조각상이 나왔다. 왼쪽 종아리에서부터 골반부분까지 남아있던 그 조각상은 아도니스의 여자친구임이 분명했다.
두 조각상 모두 키가 30센티 정도로 추정됐고, 남성상은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서있는 모습인데 여성상은 허리를 거의 90도로 구부리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성교장면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도니스와 그 여자친구 이외에도 6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원이 콘스탄체호수 제방에서 발굴되었다. 흙으로 빚은 여자 가슴조각들도 함께 출토되었는데 사원의 벽을 장식한 것으로 보였다.
초기 인류의 성생활에 대한 실마리들이 발견되면서 고고학계의 해묵은 논쟁에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원시시대 인류의 성생활에 관한 논쟁이었다.
◆인간의 초기 성생활은 난잡했을까 = 홍적기시대 인류의 성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러나 초기인류의 사회생활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미진하기 때문에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이 많이 남아있다.
인류가 성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누가 최초로 근친상간을 금지했으며 일부일처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는가. 네안데르탈인들은 한 움막 안에서 모든 가족들이 함께 잠을 잤는가.
만약 이런 질문에 답할 수만 있다면 원시시대의 성생활에 대한 비밀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을 발견하기는커녕 학자들 사이의 의견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따라서 아담과 이브의 잠자리의 비밀도 여전히 미스터리 속에 감추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원시인류의 성생활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팽팽하게 부딪히고 있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초기 인류는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했으며 숲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호르몬과 유전자가 지시하는 대로 끊임없이 성생활을 즐겼다”고 주장한다.
반면 터부이스트라고 불리는 학파는 “초기 인류는 엄격한 금욕주의의 규제를 받았다”면서 “네안데르탈인의 성생활은 결코 난잡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쟁은 3만2천년 된 석기시대의 남근조각상에 대해서도 완전히 의견이 갈린다. 한쪽은 “여성들이 성적 쾌락을 위해 사용했다”고 믿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처녀성을 제거하는 의식에서 쓰여졌던 제례용 도구”라고 설명한다.
◆오래된 ‘성 역사’ 입장 대립 = 터부이스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찰스 다윈을 들 수 있다. 다윈은 “소규모 유목민 무리에서는 지도자가 모든 여성을 독차지했다”면서 “지금 인간들의 질투심을 보더라도 이성간의 성생활이 관대하게 허용되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적고 있다.
다윈은 “초기 석기시대를 집배한 것은 성욕과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쟁이었다”면서 “강한 남성들이 여성들을 독차지하고 약한 남성들은 동성애를 하거나 침팬지처럼 자위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도 “옛날 한 뛰어난 인간이 생각해낸 토템신앙은 폭력을 잠재우고 사회공동체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토템신앙은 평화와 질서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성욕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제를 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아프리카와 호주에서는 토템신앙이 살아있었는데 그들은 성생활을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어떤 부족에서는 형제간이라도 남자가 누이의 이름을 부르거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끼리는 결혼할 수 없었다.
터부이스트들는 “만약 인류가 성욕을 절제하지 못했다면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고층에 결코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유로운 성생활은 1년 중 특별한 축제기간에만 허용됐으며 1년 동안 축적된 성에너지를 열광적인 섹스파티를 통해서 해소했을 것”이라고 보고있다.
/김광호 리포터 holh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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