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경제 초점-일본의 장기·복합불황>엔화약세 계속땐 대미수출 치명타

‘일본식 성장모델’ 국제경쟁력 없어 … 한국경제에도 큰 교훈

지역내일 2001-01-14 (수정 2001-01-15 오후 2:07:07)
일본의 경기악화에 따른 엔화 약세가 경기 침체기에 들어간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
된다. 일본의 경기악화와 엔화약세는 미국경제의 둔화와 함께 한국 경제의 해외 여건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위기는 흔히 고도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일본형 경제시스템’의 붕괴에서 원인을 찾는
다. 일본경제는 80년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지자 록펠러 센터 빌딩과 컬럼비아 영화사 등을 사들이
면서 미국인들이‘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고 부를 정도로 해외자산 특히 미국 부동산과 국채를
공격적으로 매입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90년대부터 ▷자산디플레이션 심화 ▷금융구조조정
부진 ▷일본식 경영의 한계 ▷성장잠재력 약화 등의 문제가 야기되면서 일본경제는 장기불황에 접어
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본경제의 향후 전개 방향은 한국 수출시장의 약 30%를 차지하는 미국시장에서 주로 자동차, 전자
제품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구조를 가지고 있어 주목의 대상이다. 특히 엔화 약세는 자동차 등 한국
주력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현저히 떨어뜨려 미국 경제의 둔화라는 복병에 더해 악재가 될 수 있다.
일본경제의 위기는 미국형과 유럽형 경제 시스템 외에 엘리트 관료집단이 이끄는 단기간의 고도경제
성장이라는 일본형 경제 시스템과 모델이 21세기 국제 시장경제 환경에서 더 이상 경쟁력을 갖추
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경제 성장 모델 역시 일본의 구조와 유사하다는데서 일본의 장기복
합불황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는 결국 세계화 논쟁과 함께 21세기 생존경쟁을 위한 경제모델로서 “미국식으로 갈 거냐 아니
면 유럽식이나 일본식이냐”는 선택의 문제에서 일본식 경제모델과 시스템의 탈락을 의미한다.

◇자산디플레이션 심화=1980년대 후반에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과열로 형성된 거품이 90년대 초에
붕괴되고 그 후유증이 장기화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일본 민간 경제 주체들이 보유한 주식과 부동
산 평가액은 90년대에 1309조 엔이나 감소했다.
그 결과 재무상태가 악화된 기업의 설비투자와 가계의 소비지출이 크게 위축됐다. 자산가격의 장기
하락은 직접적으로 수요를 위축시키는 한편 기업부도와 은행부실채권의 누적을 가져와 금융권의 신
용창조 능력이 약해지면서 금융부실과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온 것이다.
◇금융구조조정의 부진=일본정부는 자산디플레이션 발생 초기 금융구조조정을 신속히 하지 못해 부
실채권 확대와 디플레이션 압력을 고조시켰다. 정치권은 은행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고려, 부실채
권 처리를 위한 공적자금 투입 결정이 늦어졌다. 90년대에는 자민당 일당 지배 붕괴되고 야당의 입
김도 강화되는 등 정치적 불안정성도 작용했다.
일본 금융가관의 구조조정도 축소지향의 전략에 그치면서 고수익 부문의 개발이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유망 대출선의 개척은 부진했다.
이 결과 일본 금융기관들은 부동산 건설 유통 등의 부진 산업 분야에서 불량채권 부담을 크게 줄이
지 못했다. 다만 97년의 대공황형 불황이라는 위기는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정치적 결단을 가능
케 해 98년에는 60조 엔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마련되고 2000년에는 70조 엔으로 확대됐다.
이를 계기로 금융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시중은행간 대형합병과 함께 4대 금융으로의 재편에 성공
했다.
일본시중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나 ROE 가 개선돼 2000년 상반기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융자활동
도 확대되었다. 2000년 12월 말까지 공적자금 투입규모는 26조 4000만 엔이며 아직 여유가 있고 금
융시스템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한국과 같은 평가기준을 적용해볼 경우 부실채권은 28조 6000억엔으로 전체 대출 비중 6.07%에 불
과해 무수익 여신 등의 악성 불량 채권 부담도 감소했다.
그러나 좀더 엄격하게 자산을 평가한 국제분류 기준을 적용할 경우 문제 채권은 전체 여신의 12.1%
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문제 채권은 경기침체기에 부실채권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
에 일본의 부실채권 문제는 잠복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식 경제 시스템의 한계=버블의 형성과 붕괴,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정보화라는 환경 변화로 일
본식 경영시스템이 경쟁력을 상실했는데도 경영혁신이 미흡했고 이들의 과잉설비, 과잉부채, 과잉인
력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던 것도 장기불황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통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했던 일본의 비 제조업에서 가중됐다. 버블 붕괴 이후 부동산 시장 침체는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일본 시장 진출이 어려웠던 외국의 소매 금융기관들의 대일 진출을 가속화
시키는 효과도 있어 일본의 비 제조업은 그만큼 고전하게 됐다.
◇성장 잠재력의 약화=노동력 증가세 둔화, 설비의 부실화 등으로 90년대 일본경제의 잠재성장률
이 80년대의 4% 수준에서 2∼3% 수준으로 하락한 것도 장기 경제 부진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와같은 잠재성장 능력의 하락과 버블붕괴의 후유증이 겹쳐 90년대 평균성장률은 1.4%에 불과했다.
잠재성장률에 비해 낮은 성장세가 지속된 결과 일본기업과 개인들이 경제에 대해 갖는 기대도 지나
치게 하향 수정되어 현실의 잠재성장률을 더욱 하락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한국경제도 일본 따라가나=한국은 현재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파급돼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이에
따라 기업의 투자 및 국민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수요불황을 맞고 있다. 이는 90년대 일본의 장
기불황 메카니즘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일본 경제와 한국 경제의 차이는 일본은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불과 10%에 불과해 내수위
축을 보완해 줄만한 수요부문이 없었던 상황이지만 한국은 수출 비중이 40%에 달해 수출이 경기를
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은 제조업 부문에서 선진국 기술의 모방과 개량이라는 전략을 사
용 성장의 원동력을 삼았으며 경제가 성숙단계에 접어들면서 90년대 잠재성장능력이 2∼3% 수준으
로 크게 하락했다.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성장전략을 채택했으며 IMF 이후 이같은 성장전략에 한
계에 부딪혀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경제발전 단계가 낮아 5∼6% 대의 높은 성
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 경기위축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구조조정 지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장기불황의 가
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안찬수 기자 khae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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