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기업 IBM의 한국 진출 38년만에 첫 여성 전무가 탄생했다. 한국IBM의 박정화 전무(45). 그 타이틀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여자일까 궁금해지는 그를 처음 본 순간 떠오른 단어 하나. ‘당차다(나이나 몸집에 비해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야무지고 올차다)’라는 형용사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힘들고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IBM에 입사한 초보 시절을 꼽는다. 1982년 한국IBM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입사,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자마자 일본에 있는 연구소로 보내졌다. 국내 상황에 맞는 한글 PC 를 개발하라는 임무가 그에게 떨어진 것.
“처음 제게 주어진 일이 한글 PC를 만드는 거였어요. 컴퓨터 하나와 프로그램 소스가 프린트된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책자를 하나 주더라고요. 이거 가지고 만들어보라고요. 제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PC는 굉장히 낯선 존재였죠. 당시엔 요즘 같은 PC가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갓 대학 졸업한 철없는 여자아이에게 한글 PC를 만들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첫 해외 출장이었는데 쓸쓸함이니 외로움이니 하는 건 느낄 틈이 없었어요. 어떻게든 해내야 했으니까요. 며칠 밤을 새우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했죠. 잠을 자도 계속 컴퓨터 프로그램들만 떠올랐죠. 그렇게 일에 매달린 결과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5개월 만에 업무를 성공시켰어요. 그때의 기쁨은 정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거예요. 하여튼 한글 PC 개발은 내 커리어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대단했던 일인 거 같아요. 한 번 그렇게 고생하고 나니까 못해낼 일이 없더라고요. 겁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워커홀릭이냐고요? 맞아요. 하하하. 저는 일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얼마나 많은 배움과 기회를 얻게 되는데요. 외국계 회사인 IBM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게 행운인 거 같아요. 나이나 학벌,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로 업무를 맡기거든요.”
자신의 생활보다는 일에 대한 욕심이 더 앞섰다. 자신의 전공과는 상관없는 e비즈니스 컨설팅, 마케팅 분야의 일도 재미있게 했다. 이렇게 신나게 일하는데 성공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항상 앞으로 쭉 나가지 않고 중간중간에 점검을 해요. ‘오늘 나는 이만큼 배웠네. 이렇게 크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일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거 같아요. 또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항상 그날 있었던 일을 곱씹어봅니다. 만약 어떤 일에 실패했다면 그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해보는 거죠. 아마 이 인터뷰 하고 나서도 후회할 거예요. ‘이렇게 대답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더 멋졌을 텐데’하고. 하하하.”
박 전무는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 땅의 대다수 커리어우먼의 고민이자 과제이기도 한 육아나 자녀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이에 관해선 모든 것을 친정엄마에게 떠 넘겼어요. 저 나쁜 엄마, 나쁜 딸이죠? 후회는 안 해요. 둘 다 소중하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잖아요. 과감히 한쪽을 포기한 거죠. 제 딸도 일을 가지면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뭐에 있는지 아세요. 남자는 여자보다 계획이 좀 더 구체적이에요. ‘나는 이 회사에서 10년 내에 임원이 되겠다’ 이런 식으로요. 자기 커리어 개발에 훨씬 적극적이죠.
반면 여성은 좀 더 일 중심적인 거 같아요. 재미있고 성취감이 큰 일만 맡으면 거기에 만족하는 경향이 더 크죠. 자기가 승진할 수 있었는데 못해도 남자보다 덜 섭섭해 하고요.”
커리어보다는 ‘일’ 자체를 순수하게 즐긴 게 결국 커리어가 되고 ‘전무’라는 직책으로 돌아온 셈이다. 전무가 되었어도 그는 별로 달라진 게 없노라 했다. “월급 좀 더 많이 받고 좀 더 책임감이 커졌다고나 할까? 또 다른 신나는 업무가 주어진 거라 생각해요.”
이쯤 되면 정말 중증 워커홀릭이지 싶다. 그래도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는 일을 가진 그는 참 행복한 사람 아닌가?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사진 이의종 기자
가장 힘들고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IBM에 입사한 초보 시절을 꼽는다. 1982년 한국IBM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입사,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자마자 일본에 있는 연구소로 보내졌다. 국내 상황에 맞는 한글 PC 를 개발하라는 임무가 그에게 떨어진 것.
“처음 제게 주어진 일이 한글 PC를 만드는 거였어요. 컴퓨터 하나와 프로그램 소스가 프린트된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책자를 하나 주더라고요. 이거 가지고 만들어보라고요. 제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PC는 굉장히 낯선 존재였죠. 당시엔 요즘 같은 PC가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갓 대학 졸업한 철없는 여자아이에게 한글 PC를 만들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첫 해외 출장이었는데 쓸쓸함이니 외로움이니 하는 건 느낄 틈이 없었어요. 어떻게든 해내야 했으니까요. 며칠 밤을 새우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했죠. 잠을 자도 계속 컴퓨터 프로그램들만 떠올랐죠. 그렇게 일에 매달린 결과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5개월 만에 업무를 성공시켰어요. 그때의 기쁨은 정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거예요. 하여튼 한글 PC 개발은 내 커리어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대단했던 일인 거 같아요. 한 번 그렇게 고생하고 나니까 못해낼 일이 없더라고요. 겁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워커홀릭이냐고요? 맞아요. 하하하. 저는 일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얼마나 많은 배움과 기회를 얻게 되는데요. 외국계 회사인 IBM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게 행운인 거 같아요. 나이나 학벌,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로 업무를 맡기거든요.”
자신의 생활보다는 일에 대한 욕심이 더 앞섰다. 자신의 전공과는 상관없는 e비즈니스 컨설팅, 마케팅 분야의 일도 재미있게 했다. 이렇게 신나게 일하는데 성공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항상 앞으로 쭉 나가지 않고 중간중간에 점검을 해요. ‘오늘 나는 이만큼 배웠네. 이렇게 크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일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거 같아요. 또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항상 그날 있었던 일을 곱씹어봅니다. 만약 어떤 일에 실패했다면 그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해보는 거죠. 아마 이 인터뷰 하고 나서도 후회할 거예요. ‘이렇게 대답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더 멋졌을 텐데’하고. 하하하.”
박 전무는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 땅의 대다수 커리어우먼의 고민이자 과제이기도 한 육아나 자녀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이에 관해선 모든 것을 친정엄마에게 떠 넘겼어요. 저 나쁜 엄마, 나쁜 딸이죠? 후회는 안 해요. 둘 다 소중하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잖아요. 과감히 한쪽을 포기한 거죠. 제 딸도 일을 가지면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뭐에 있는지 아세요. 남자는 여자보다 계획이 좀 더 구체적이에요. ‘나는 이 회사에서 10년 내에 임원이 되겠다’ 이런 식으로요. 자기 커리어 개발에 훨씬 적극적이죠.
반면 여성은 좀 더 일 중심적인 거 같아요. 재미있고 성취감이 큰 일만 맡으면 거기에 만족하는 경향이 더 크죠. 자기가 승진할 수 있었는데 못해도 남자보다 덜 섭섭해 하고요.”
커리어보다는 ‘일’ 자체를 순수하게 즐긴 게 결국 커리어가 되고 ‘전무’라는 직책으로 돌아온 셈이다. 전무가 되었어도 그는 별로 달라진 게 없노라 했다. “월급 좀 더 많이 받고 좀 더 책임감이 커졌다고나 할까? 또 다른 신나는 업무가 주어진 거라 생각해요.”
이쯤 되면 정말 중증 워커홀릭이지 싶다. 그래도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는 일을 가진 그는 참 행복한 사람 아닌가?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사진 이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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