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점검-인권사각지대]④어둠의 자식들, 청소년 동성애자

차가운 시선·차별에 “죽고만 싶다”

지역내일 2005-02-17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에 대한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특히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의 경우 이들과 함께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상한 시선만이 그들을 옥죄고 있다. 갈수록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는 시기가 빨라지는 지금, 청소년 동성애자를 ‘환자’로만 보고 방치해둘 것인가. 그들의 고민과 해법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2003년 11월 고등학교 졸업을 2개월 앞둔 고교생이 자살했다. 이 학생은 흔히 게이로 통하는 동성애자였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 들이고 사회단체 등에 직접 찾아와 열심히 활동하는 쾌활한 성격의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늘 아버지와 갈등관계가 지속됐다. 아버지는 이 학생의 손목을 잡고 정신과를 전전했다.
내일여성센터가 서울 경기 지역 청소년 14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는 청소년의 6%가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닌가 고민하고 있고, 7%가 동성애자 사이트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들 청소년의 고민을 들어줄 사람도 공간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들은 스스로 일반인과 다른 ‘이반’이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표현한다. 범죄에 노출돼도 차가운 사회 시선은 이들을 돌 볼만큼 여유롭지 않다.

◆상담 원했다 악마로 몰리기도 = 자신을 ‘어둠(18)’이라고 밝힌 여고생 동성애자 경험은 충격적이다. 어둠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크리스찬(신앙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은 남성보다는 여성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성 취향에 대해 고민을 하다 평소 믿고 따랐던 목사를 찾아가 어렵게 고백을 했다. 하지만 목사는 “이 어둠의 자식아 당장 이곳을 떠나라”며 호통을 쳤고 그녀는 “다시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어둠은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피구를 잘 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며 “처음에는 그냥 라이벌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어둠은 “남학생이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에 하듯 괜히 그 여학생을 괴롭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성애자 현아(20)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입학한지 이틀 만에 소문이 났다”며 “왜 소문난 지 모르겠지만 3년 내내 아이들의 쑥덕거림 속에서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연애 경험에 대해 “상대 어머니가 우연히 우리의 커플 일기장을 봤다”며 “불려가서 따귀도 맞고 상대 아이를 이민 보내겠다는 협박도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후 친구동네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현(18)은 “아직 부모님에게 말씀드리지 못했다”며 “언니만 알고 있는데 부모님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심경을 털어 놓았다. 현아도 “어머니는 알고 있는데 ‘30살이 되어도 변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지금은 어떤 판단도 하지 말라’는 말씀만 하실 뿐”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로 외로움만 달랠 뿐 = 예전에 비해 지금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고민을 풀어 줄 수 있는 공간이 많이 확보돼 있는 편이다. 인터넷 덕분이다. 각종 커뮤니티가 생기고 카페들이 생겼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남산에서 음료수 병을 들고 서 있다든지 파고다 극장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찾는 인터넷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각종 성인 동성애 사이트와 혼재되어 있고, 일반 성인물과도 구별이 되지 않는 사이트들로 넘쳐난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 올바른 성교육조차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동성애에 대한 교육은 전무한 수준이다. 이런 환경 때문에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학교에서 ‘이상한 아이’로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현은 “고등학교 때 나만 몰랐지 다른 아이들은 모두 내가 레즈비언인줄 알고 있더라”며 “지나가던 아이들이 괜히 부딪치고 심지어는 이유 없이 치고가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어둠은 “한 친구와 심하게 다툰 일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너 동성애자라는 거 선생님께 이야기해서 학교 다니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이런 어둠의 경험은 대부분의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겪는 아픔이다.
곤경에 처해도 거부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남성이 인터넷 카페에서 여고생 동성애자 핸드폰 번호를 알아낸 다음 성 관계를 강요하기도 했다. 응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을 썼다. 당시 대상이 됐던 청소년들은 한결 같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알려질 경우 돌아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사회합의 없어 법적 보호 전무 = 해외에서도 청소년 동성애자에 대한 배려는 크게 개선돼 있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조금씩 청소년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신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레노(Reno)고등학교에선 친구들에게 언어폭력을 상습적으로 당한 동성애자 청소년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평등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프랑스에선 이런 사회적 합의가 바탕이 돼 동성애자 동거법이 생겼다. 네덜란드에서도 동성애자 결혼법이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여성차별 등은 법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동성애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 보호법 유해매체물 항목 중 동성애는 수간 혼음 근친상간 가학 피·가학성음란증 변태성행위 매춘행위 등과 같이 분류돼 금지됐다가 지난해 2월 동성애 부분만 삭제됐다.
당시에도 이런 결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있었다. 판단력이 흐린 청소년에게 동성애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정 욜씨는 “최근에는 미디어의 발달로 성 정체성이 확립되는 나이가 어려졌다”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불안해 하고 우울해 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편견을 불식시키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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