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엔 뷰>우리는 어떤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가

함 인 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지역내일 2005-02-02
얼마 전 연구실에 들른 학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요즘 남자들은 마마보이 아니면 반항아,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지난주엔 남자친구랑 아빠 차 빌려 타고 양평에 다녀왔는데요, 오는 길에 구리시를 지나던 중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어요. 남자친구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엄마 자동차 펑크 났는데 어떻게 하지?’ 묻는 거예요. 그 정도로 마마보이인 줄은 몰랐거든요. 즉시 헤어졌죠.”
“주위에 마마보이도 흔하지만 엄마의 ‘엄’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자들도 많아요. 엄마가 의대 가라고 주문을 외우는데 그것이 싫어 수학 공부 일부러 안 했다는 친구도 있고요, 엄마 같은 여자랑은 절대로 연애도 결혼도 안 하겠다 다짐하는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봤어요. 엄마와 아들이 너무 친한 것 같아도 겁이 나고 너무 소원한 것 같아도 편치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에요.”
제자들 하소연을 듣자니, 우리가 지금 어떤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느냐 하는 문제야말로 사회 전체가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그 어떤 이슈 못지않게 중요하고도 시급한 사안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은 사안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감히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해온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우리네 엄마들은 자녀들을 키우는 데 열과 성을 다해왔다. 이 열과 성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교육열로 나타났고 ‘치맛바람’에서부터 ‘원정 출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기실 과잉 교육열은 학벌이 사회적 특권으로 직결되는 ‘학벌주의 사회’ 속에서의 현실적 적응 양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일류대 병’은 곧바로 사회적 비난의 표적이 되었음을 그 누가 부인하랴.
문제는 과잉 교육열을 가족 공리주의의 울타리로부터 끄집어내 보다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미래를 책임질 후손을 길러냄에 ‘실패한 세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교육열이 지향해온 방향과 내용을 향해 가차 없는 비판을 더 이상 미루어선 안 될 것 같다. 오로지 자녀의 일류대 진학이 목표인 한은 우리에게 너무 희망이 없지 않은가. 내 아이의 능력과 잠재력이 내신 등급으로 재단되고 수능시험 성적으로 줄 세워지는 것은 진정 부당하지 않은가. 사교육비 부담은 계속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 학력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하니 이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아닌가.
와중에 우리 아이들이 무오류(無誤謬)의 전범으로 삼고 있는 교과서 속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한 번이라도 관심을 보인 적은 있는지 깊이 반성할 일이다. 더더욱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 세상을 인식하는 가치관을 함양하고 더불어 품성을 연마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내용으로 구성된 교과서였다면, 최소한 그 내용의 옳고 그름에는 너나없이 모두가 책임 있는 시선을 기울여야 했다.
교육열을 엄마 아빠가 함께 나누어 가짐도 필수적 과제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보편화했음에도 학교 시스템이 여전히 전업엄마를 중심으로 짜여지는 것은 불합리하다. 자녀교육은 엄마 아빠 공동의 책임인 만큼, 명실 공히 ‘학부모’의 참여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기존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무한경쟁 시대, 교육이야말로 최선의 경쟁력이라 외치면서 교육에 대한 철학도 비전도 양보한 채 오로지 대학입시 정책에 일희일비해오는 동안, 엄마의 무한책임 하에 “공부해라, 공부해라” 다그치기만 했지 어떤 품성, 어떤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라는 요구는 외면해온 동안, 우리 아이들은 마마보이에 안주하거나 반항아로 표류하고 있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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