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블랙홀’의 진짜 이유
권화섭 (언론인)
한국여성들은 왜 결혼을 미루고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가.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지금부터 20년쯤 후에는 절대인구가 줄어드는 ‘인구 블랙홀’이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당연히 가져볼 만한 의문이다. 현재 한국여성들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를 가리키는 총출산율(TFR)은 2002년에 1.17명까지 떨어졌다가 2003년에 1.19명으로 약간 높아졌다. 이것은 인구의 현상유지에 필요한 수준의 절반에 불과하다. 정부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를 구성하고 상반기 중에 종합대책을 세워 일단 출산율을 OECD 평균 수준인 1.6명으로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1.8명 선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여성들은 정부가 장기적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의 아이를 낳았다. 지난 1992년의 TFR이 1.78명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상황이 불안정해지면서 1997년에는 1.54명으로 떨어지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2001년에는 1.30명으로 줄어들었고 2002년에는 도시국가인 홍콩(1.0명)과 마카오(1.1명)를 제외하고 세계 최저기록을 세웠다.
정부의 출산장려책 해법 안된다
단순논법으로 말해 불과 10여년 만에 한국여성들의 출산율이 이처럼 떨어졌다면 그것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도 쉬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산이다. 아이 낳는 것을 여성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던 사회적 관념이 이제는 부부 생활의 걸림돌로 여기거나 여성 자신의 개인적 삶을 한층 더 중시하는 풍조로 바뀐 상황에서 정부가 출산장려 국민운동을 벌이고 육아지원시책을 편다고 해서 출산율이 쉽사리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산율의 저하를 막기위한 선결과제는 ‘행복한 삶’에 대한 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 하나’, 혹은 ‘무자녀 부부’를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 여기는 의식이 지금처럼 퍼져있는 한 정부의 출산율 끌어올리기 시책은 시지프스의 헛된 노역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러면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 영국 LSE(런던경제사회과학대학)의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는 ‘행복: 뉴 사이언스의 교훈’이라는 저서에서 행복의 여섯가지 조건으로 정신적 건강, 만족스럽고 안정된 직장, 안정적이고 애정어린 개인생활, 안정된 공동체, 자유, 도덕적 가치를 꼽았다. 레이어드 교수는 특히 경제정책은 단순히 성장이 아닌 행복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레이어드 교수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행복한 상태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어쩌면 한국여성들의 극도로 낮은 출산율은 한국사회의 정신적 타락과 불안정한 직장, 가정의 해체, 공동체의 붕괴, 규제와 간섭의 만연, 도덕의 실종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결과일 수 있다. 물질적 삶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정신적 삶의 수준이 그 이상으로 후퇴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일 수 없다. 그리고 이처럼 삭막하고 살맛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책임있는’ 모성(母性)의 당연한 대응이 아닐까.
인구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오랫동안 말서스의 저주에 시달려왔다. 그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날 뿐이어서 궁극적으로 세계는 인구폭발로 인해 대량 아사(餓死)사태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인구폭탄’이 아니라 오는 2025년을 정점으로 세계인구가 감소하는 역(逆)말서스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살맛나는 사회’ 실현이 중요
이것은 과학문명의 역설적 측면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먹거리의 부족으로 인구의 증가에 제동이 걸렸지만 이제는 먹거리가 넘쳐나면서 가족생활과 공동체가 붕괴하고 개인주의가 고조되면서 여성들의 출산율이 급속히 낮아지고 그 결과 인구감소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는 참으로 혁명적이었다. 우리는 아직 그 변화의 터널 숙에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건이 최근 행정자치부가 들고나온 이른바 ‘혁신형’ 조직개편이다. 한국기업들을 몰아친 직급파괴와 실적주의 선풍이 마침내 공무원 사회에 본격 상륙할 태세이다. 모든 사회현상에는 긍정과 부정 양면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대단히 경쟁적이고 효율적으로 바뀌었지만 동시에 인간미와 염치를 상실한 살맛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행복한 사회는 구성원들 상호 간에 공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사회적 연대감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공동체와 가족 친화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그런 모습과 계속 멀어져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 경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여성의 기록적으로 낮은 출산율을 되돌리려면 이런 사회적 추세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권화섭 (언론인)
한국여성들은 왜 결혼을 미루고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가.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지금부터 20년쯤 후에는 절대인구가 줄어드는 ‘인구 블랙홀’이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당연히 가져볼 만한 의문이다. 현재 한국여성들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를 가리키는 총출산율(TFR)은 2002년에 1.17명까지 떨어졌다가 2003년에 1.19명으로 약간 높아졌다. 이것은 인구의 현상유지에 필요한 수준의 절반에 불과하다. 정부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를 구성하고 상반기 중에 종합대책을 세워 일단 출산율을 OECD 평균 수준인 1.6명으로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1.8명 선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여성들은 정부가 장기적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의 아이를 낳았다. 지난 1992년의 TFR이 1.78명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상황이 불안정해지면서 1997년에는 1.54명으로 떨어지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2001년에는 1.30명으로 줄어들었고 2002년에는 도시국가인 홍콩(1.0명)과 마카오(1.1명)를 제외하고 세계 최저기록을 세웠다.
정부의 출산장려책 해법 안된다
단순논법으로 말해 불과 10여년 만에 한국여성들의 출산율이 이처럼 떨어졌다면 그것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도 쉬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산이다. 아이 낳는 것을 여성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던 사회적 관념이 이제는 부부 생활의 걸림돌로 여기거나 여성 자신의 개인적 삶을 한층 더 중시하는 풍조로 바뀐 상황에서 정부가 출산장려 국민운동을 벌이고 육아지원시책을 편다고 해서 출산율이 쉽사리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산율의 저하를 막기위한 선결과제는 ‘행복한 삶’에 대한 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 하나’, 혹은 ‘무자녀 부부’를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 여기는 의식이 지금처럼 퍼져있는 한 정부의 출산율 끌어올리기 시책은 시지프스의 헛된 노역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러면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 영국 LSE(런던경제사회과학대학)의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는 ‘행복: 뉴 사이언스의 교훈’이라는 저서에서 행복의 여섯가지 조건으로 정신적 건강, 만족스럽고 안정된 직장, 안정적이고 애정어린 개인생활, 안정된 공동체, 자유, 도덕적 가치를 꼽았다. 레이어드 교수는 특히 경제정책은 단순히 성장이 아닌 행복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레이어드 교수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행복한 상태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어쩌면 한국여성들의 극도로 낮은 출산율은 한국사회의 정신적 타락과 불안정한 직장, 가정의 해체, 공동체의 붕괴, 규제와 간섭의 만연, 도덕의 실종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결과일 수 있다. 물질적 삶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정신적 삶의 수준이 그 이상으로 후퇴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일 수 없다. 그리고 이처럼 삭막하고 살맛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책임있는’ 모성(母性)의 당연한 대응이 아닐까.
인구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오랫동안 말서스의 저주에 시달려왔다. 그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날 뿐이어서 궁극적으로 세계는 인구폭발로 인해 대량 아사(餓死)사태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인구폭탄’이 아니라 오는 2025년을 정점으로 세계인구가 감소하는 역(逆)말서스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살맛나는 사회’ 실현이 중요
이것은 과학문명의 역설적 측면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먹거리의 부족으로 인구의 증가에 제동이 걸렸지만 이제는 먹거리가 넘쳐나면서 가족생활과 공동체가 붕괴하고 개인주의가 고조되면서 여성들의 출산율이 급속히 낮아지고 그 결과 인구감소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는 참으로 혁명적이었다. 우리는 아직 그 변화의 터널 숙에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건이 최근 행정자치부가 들고나온 이른바 ‘혁신형’ 조직개편이다. 한국기업들을 몰아친 직급파괴와 실적주의 선풍이 마침내 공무원 사회에 본격 상륙할 태세이다. 모든 사회현상에는 긍정과 부정 양면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대단히 경쟁적이고 효율적으로 바뀌었지만 동시에 인간미와 염치를 상실한 살맛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행복한 사회는 구성원들 상호 간에 공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사회적 연대감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공동체와 가족 친화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그런 모습과 계속 멀어져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 경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여성의 기록적으로 낮은 출산율을 되돌리려면 이런 사회적 추세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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