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로 행복한 사람 _ 정최경희씨

혼인·출생신고도 않고 폐지 운동 지지

지역내일 2005-03-08
“부모 성을 함께 쓴다고? 취지가 괜찮구나. 정최경희! 어때?”
최경희씨(34·의사)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시작할 무렵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시작되자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는 “아버지 성보다는 엄마 성을 앞에 쓰니까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며 그 후로 막내딸을 ‘정최경희’라 부르셨다. 비록 집안에서만 그렇게 부르셨지만, 이 일이 계기가 돼 그는 지금도 공적문서가 아닌 경우에는 항상 이 이름을 사용한다.
경희씨는 사실혼은 유부녀, 법적으로는 아직 처녀다. 1999년 1월 결혼했지만 남편 김시완(37)씨 동의 아래 혼인신고를 안했다.
“혼인신고를 하면 남편이 호주가 되고 내 본적도 남편 본적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 황당했어요. 내 문제로 닥치니까 진짜 심각해지더라고요.”
호주제를 거부하는 의미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들 부부는 호주제 폐지운동에 동참하는 뜻에서 그해 3·8 여성대회에도 참가했다.
“연말정산 할 때 배우자 공제를 못 받는 게 좀 아깝긴 해도” 크게 불편한 것 없이 지냈는데 지난해 딸 지민이를 낳으면서부터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언젠가는 호주제 폐지가 되겠지 생각하고 있다가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더라고요. 출생신고는 해야 하니까 지민이를 내 호적에 올리려고 했죠. 그랬더니 현재 민법 상 아버지가 인지되는 경우에는 ‘부가입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예요. 두 달쯤 지나서 이번에는 지민이만의 호적부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고아라면 가능하지만 부모가 엄연히 살아 있으니 또 안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출생 신고를 아예 안 해버렸어요.”
경희씨는 “본과 4학년 때 죽을 만큼 아프면서 ‘다시 살게 되면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라며 “잘못된 관습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력이에요”라고 말했다.
호주제 폐지 후 2008년에야 개인별 신분등록부가 만들어진다는 말에 경희씨는 또 고민이다. 지금까지는 지민이가 잘 자라 다행이지만 병원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큰 일이다.
“지민이가 자기만의 호적을 갖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겠죠?(웃음)”
/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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