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과부다! 그래서? 뭐?

박남 시인의 꽁트칼럼(15)

지역내일 2001-01-11
그래요, 나 과부예요.
아는 사람들이 더 지겨워요. 아니 더 무서워요. 얼마나 끈질기게 사악한지 말하기조차 끔찍하답니다. 불쾌한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요. 사사건건 잊지도 않고 과부라는 걸 알려주며 강조할 건 뭐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남편이 저 세상 사람된 지 벌써 7년째입니다.
올망졸망한 아이 셋을 남겨두고 간 남편을 그리워하고만 앉아 있을 팔자가 아니지요. 그 눈망울들을 바라보면 남편을 원망하든, 그리워하든 내 마음을 접어두어야 할 때가 너무 많아요. 아이 셋을 키우자면 정말 다른 생각할 시간도 없지요. 다행히 신앙생활이 내겐 큰 힘이었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신앙인들도 겁나요.
'남편도 없이 애들은 어쩜 이리 잘 키웠을까.', '아무래도 집안에 남자가 있어야지.', '쯧쯧. 나이가 아까워. 어서 팔자 고쳐야지.' 하면서 나를 측은히 여기는 건 그래도 참을 만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번번이 울립니다. 내 나이 서른 한 살에 과부 된 것도 처참한데 지난 칠 년 동안 그 지독한 인간들한테 시달리며 참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어쩌다 아이가 아파서 밤새 간호를 하다 예배시간에 빠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입쌀개>들이 지껄이는 게 너무 싫어요. 과부는 옷도 못 사 입나요? 어떤 날은 새 옷을 입고 교회에 가면 선보느냐, 남자 생겼나 하며 그야말로 지랄을 떱니다. 심지어는 애만 안 딸렸으면 팔자 고치는 건 시간 문제라며 지들 멋대로 혀를 끌끌 찹니다.
예전에 친구한테 취직을 부탁한 적이 있었답니다. 면접 보러 갔다가 그야말로 분통이 터졌습니다. 일 내용에 관한 질문을 예상하고 열심히 준비를 해갔지요. 그랬더니 그 양반 첫마디가 가관이었습니다. '남편이 왜 죽었냐?', '재산은 얼마나 남겼나', '재혼하면 애들은 데리고 갈 거냐' 면서 자기는 이혼하고 애들도 없다며 나를 떠보더군요. 기가 막혀서 그냥 나왔답니다.
어떤 작자는 소식을 이제야 들었다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얼마나 힘들었겠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합니다. 내가 왜 자기한테 진작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뒷말이 더 꼴값이랍니다. 자기도 홀아비 된지 이태가 됐다나, 어쨌다나 하며 자기애들은 다 커서 결혼만 시키면 된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과부라고 자기들 멋대로 편견을 갖고, 자기들 멋대로 측은히 여긴답시고 지껄이며 피해를 주는데 정말 환장하겠더군요. 이런 쓰레기들을 처치하는 법은 없나요? 그 입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더군요. 입도 아니지요. 아가리나 주둥아리쯤 되겠지요. 화나서 한 말 용서하세요. 지난 7년 동안 참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욕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접을 수는 없고, 교회를 옮기면 좀 덜할까요? 하느님도 용서하시겠지요? 아니, 이참에 아무도 모르는 외국으로 이민 갈까요?

지은이 소개 : 남이 욕하면 상스러워서 하는 거고, 자기가 하는 욕은 오죽하면 욕을 하겠냐고 항변하는 이상한 여자. 입으로는 고상과 우아를 떨면서 속으로는 꿀꿀이죽을 쑤는 여자. 남의 아픈 상처는 콕콕 씹어 떠벌리면서 자기 상처를 건드리면 게거품을 품는 여자. 머리 속에 쓰레기와 오물이 가득하면서 왕교양인척 꼴값 떠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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