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의 경제학
권화섭 (언론인)
우리 사회에서 ‘염치’라는 말은 사실상 소멸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도 염치를 지키려 하지 않고 또 염치없는 행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괜히 염치를 차리려하다가는 못난이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모든 것을 경제적 득실로 따지는 세상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염치없는 사회’가 정말 ‘경제적인 사회’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경제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두는 것을 이른다. 그러니 빈손으로 잔치집에 가서 염치없이 양껏 음식과 술을 먹고 나오는 것이 경제적인 행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면 누구도 잔치에 손님을 부르려 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잔치상은 구경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라는 잔치상은 염치없는 손님으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생계를 꾸려가기도 어려운데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은 매년 수천만원에서 수십, 수백억원의 재산을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과 정치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또 그 수단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직자와 정치인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배반
만약 우리의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조금의 염치라도 있으면 이런 행태를 부끄러워하고 국민들에게 죄스러워 하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른바 고위공직자들의 ‘주식백지신탁제’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볼멘 소리나 지난 총선에서 겨우 한번 적용해보고 당장 정치자금법 등을 고치려고 하는 정치권의 조급증은 몰염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에게 모두가 열심히 하는 재테크를 외면하고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에 충실하면서 고고하게 살 것을 주문하는 것은 억지다. 그러나 필자가 얘기하는 것은 그런 억지가 아니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최소한의 염치를 가지고 범법의 혐의가 있는 치부행위만은 삼가 달라는 것이다.
몇 년전 한 신문에서 필자는 참으로 충격적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제목은 “중앙은행 총재의 재테크”였다. 한국은행 총재가 주식투자를 해서 수천만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경제면 첫 페이지에 3단 상자로 게재된 그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중앙은행 총재가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우선 놀랐다.
정부의 무책임한 경기부양 시도로 인해 빚어진 이른바 ‘카드대란’을 둘러싸고 우리는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와 정치인들로부터 신용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나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주식투자와 부동산투기에 대해서는 누구 한사람 도덕적 해이를 나무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도덕적 해이’와 무관한 단순히 ‘몰염치’한 행위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용불량자를 도덕적 해이로 비난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도덕이란 강자의 월권이나 횡포를 막기위한 약자의 보호수단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는 신용카드 발급을 감독하고 규제할 수 있는 강자인 정부 당국과 카드회사가 스스로의 책무를 소홀히 할 때 해당되는 개념이다.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의 몰염치한 재테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즉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도덕적 ‘배반’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점이다. 그러나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도덕적 배반을 저지르고도 당사자는 물론이고 권력 핵심부가 그에 대해 아무런 도덕적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정부와 국회와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당사자들의 거취와 그에 따른 정치권의 이해득실에만 집중되어 있다.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본은 신뢰
현 정부의 가장 귀중한 정치적 자산은 참신성과 청렴성이었다. 지난 2년간 그 자산은 상당히 평가절하되었다. 최근의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는 거기에 다시 한번 타격을 입혔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현대사회는 너무나 복잡해서 제도개혁를 가지고 청렴성을 보장하려고 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부정부패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제도개혁이 아니라 인간적 염치의 회복이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경제적으로 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본은 신뢰다. 신뢰가 결여된 사회는 모든 것을 문서와 계약으로 확인하고 무거운 보증금과 이행절차를 통해 담보해야 한다. 그것은 엄청난 규제와 비용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경제외적 비용의 폭발로 인해 그 사회는 내파(內破)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요한 신뢰의 자본은 바로 염치를 알고 지키려고 하는데서 창출되고 축적된다.
권화섭 (언론인)
우리 사회에서 ‘염치’라는 말은 사실상 소멸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도 염치를 지키려 하지 않고 또 염치없는 행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괜히 염치를 차리려하다가는 못난이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모든 것을 경제적 득실로 따지는 세상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염치없는 사회’가 정말 ‘경제적인 사회’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경제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두는 것을 이른다. 그러니 빈손으로 잔치집에 가서 염치없이 양껏 음식과 술을 먹고 나오는 것이 경제적인 행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면 누구도 잔치에 손님을 부르려 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잔치상은 구경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라는 잔치상은 염치없는 손님으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생계를 꾸려가기도 어려운데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은 매년 수천만원에서 수십, 수백억원의 재산을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과 정치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또 그 수단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직자와 정치인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배반
만약 우리의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조금의 염치라도 있으면 이런 행태를 부끄러워하고 국민들에게 죄스러워 하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른바 고위공직자들의 ‘주식백지신탁제’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볼멘 소리나 지난 총선에서 겨우 한번 적용해보고 당장 정치자금법 등을 고치려고 하는 정치권의 조급증은 몰염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에게 모두가 열심히 하는 재테크를 외면하고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에 충실하면서 고고하게 살 것을 주문하는 것은 억지다. 그러나 필자가 얘기하는 것은 그런 억지가 아니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최소한의 염치를 가지고 범법의 혐의가 있는 치부행위만은 삼가 달라는 것이다.
몇 년전 한 신문에서 필자는 참으로 충격적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제목은 “중앙은행 총재의 재테크”였다. 한국은행 총재가 주식투자를 해서 수천만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경제면 첫 페이지에 3단 상자로 게재된 그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중앙은행 총재가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우선 놀랐다.
정부의 무책임한 경기부양 시도로 인해 빚어진 이른바 ‘카드대란’을 둘러싸고 우리는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와 정치인들로부터 신용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나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주식투자와 부동산투기에 대해서는 누구 한사람 도덕적 해이를 나무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도덕적 해이’와 무관한 단순히 ‘몰염치’한 행위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용불량자를 도덕적 해이로 비난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도덕이란 강자의 월권이나 횡포를 막기위한 약자의 보호수단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는 신용카드 발급을 감독하고 규제할 수 있는 강자인 정부 당국과 카드회사가 스스로의 책무를 소홀히 할 때 해당되는 개념이다.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의 몰염치한 재테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즉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도덕적 ‘배반’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점이다. 그러나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도덕적 배반을 저지르고도 당사자는 물론이고 권력 핵심부가 그에 대해 아무런 도덕적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정부와 국회와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당사자들의 거취와 그에 따른 정치권의 이해득실에만 집중되어 있다.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본은 신뢰
현 정부의 가장 귀중한 정치적 자산은 참신성과 청렴성이었다. 지난 2년간 그 자산은 상당히 평가절하되었다. 최근의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는 거기에 다시 한번 타격을 입혔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현대사회는 너무나 복잡해서 제도개혁를 가지고 청렴성을 보장하려고 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부정부패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제도개혁이 아니라 인간적 염치의 회복이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경제적으로 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본은 신뢰다. 신뢰가 결여된 사회는 모든 것을 문서와 계약으로 확인하고 무거운 보증금과 이행절차를 통해 담보해야 한다. 그것은 엄청난 규제와 비용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경제외적 비용의 폭발로 인해 그 사회는 내파(內破)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요한 신뢰의 자본은 바로 염치를 알고 지키려고 하는데서 창출되고 축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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