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점검-인권사각지대] ②팔려온 신부, 국제결혼여성

신부라는 ‘물건’을 사는 국제결혼

지역내일 2005-02-15
3명중 1명이 맞고 산다
폭력에 일상 노출, 생계난·불안정한 체류자격이 인권침해 부추겨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도 배우자를 찾지 못한 한국 남성에게 ‘국제결혼’은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국경과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으로 다복하게 살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도 적지 않다. 국내 결혼의 열쌍중 한쌍이 국제결혼일만큼 활성화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런 수치상의 증가 이면에는 국제결혼이라는 올가미에 묶여 고통받는 또다른 이주여성의 신음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위장결혼’일 지 모른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으며 그들은 유형·무형의 폭력에 의해 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해 일어나는 인권침해는 특정 농촌지역의 문제도, 일부 가정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인권침해 사례를 짚어보고 그 해법을 찾아보았다. /편집자주

‘이주여성인권센터’가 통계청 자료 등을 토대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외국인과의 혼인은 이미 한국 전체 결혼의 8.3%를 차지할 정도로 증가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0년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여성이 불과 619명이었던 반면 2003년에는 1만9214명으로 불어났다. 10년 새 10배 늘어난 것으로 2002년과 2003년 사이에만 42.3%가 증가했다.
거주지별 분석으로는 46.3%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해 있었다. 일반적인 관측과 달리 국제 결혼의 문제점이 농촌 거주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말 서툴러 아이도 언어습득 늦어 = 그러나 한국인과 결혼해 우리나라로 온 외국인 이주 여성들의 삶은 고단하다.
우선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편과도 언어소통이 원활치 못해 사소한 오해가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나주여성상담센터’가 지난 2004년 한해 동안 ‘한국사회 적응을 위한 한글교육 및 문화강화강좌’ 참석자에게 설문한 결과 중국 조선족을 제외하고는 우리말과 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엄마가 우리말이 서툴기 때문에 아이도 언어습득이 늦어지게 되고, 여기에 외모까지 한국 아이와 달라 고민스럽다. 엄마 세대에서 시작된 사회적 멸시와 냉대가 아이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거주비자로 체류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복지대상에서 배제돼 있다. 어떤 이유라도 국적 취득전에 결혼사유가 해소되면 법적으로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일년마다 갱신해야하는 비자도 남편이 신원보증을 하도록 돼 있어 철저히 남편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고 결혼 후 2년이 지나야 취득 가능한 국적도 남편이 동행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상담센터’는 “부인이 돈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고 위장결혼을 했으니까 언젠가는 도망갈 지도 모른다는 의혹도 일부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 = 일부 여성들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44세인 한국인 남편(농업)과 결혼한 베트남 출신의 W씨. W씨는 “처음 남편은 나이가 37살이라더니 한국에 온 직후에는 40살, 지금은 44살이라고 한다”며 “이혼한 전부인과 사이에서 1명뿐이라던 아이도 직접 와보니 3명이나 됐다”고 말했다. 큰딸과 W씨의 나이차이는 불과 2살이다.
11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교포3세 B씨. 건설 일용직 노동자인 남편 사이에 10개월된 아이를 두고 있지만 남편은 지난 1년반 동안 거의 일은 나가지 않은 채 술로 세월을 보냈다. 임신 9개월째 되던 날 남편은 ‘집이 팔렸다’며 B씨에게 집을 나가라고 소리쳤다.
이밖에도 의처증이 있는 남편에게 목이 졸려 혼수상태에 빠진 K씨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폭력에 노출된 경우도 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은 육체적 폭력과 폭언·폭행 위협 등에 따른 심리적 폭력,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의 정서적 폭력, 생활력을 일체 주지 않는 경제적 폭력, 언어·문화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고립 등에 일상적으로 방치돼 있다.
지난해 12월 ‘광주여성의 전화’에서 광주·전남지역 국제결혼 이주여성 154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4명중 1명은 한 달에 1번 이상 , 10명중 1명은 매주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만큼이나 경제적 박탈감은 심각한 인권침해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28.5%는 경제권을 전적으로 남편에게 빼앗긴 채 사실상 남편 허락한 만큼만 경제생활을 할 수 있다.

◆동정보다 법·제도 마련 필요 = ‘이주여성인권센터’ 최진영 상담실장은 “전혀 의지할 곳 없다고 생각한 부인에게도 ‘쉼터’라는 의지할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남편들의 태도에 다소나마 변화가 있다”고 전했다. 곤경에 처한 이주여성에게 도움 받을 곳이 있음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인권센터는 △이주여성을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보는 인식변화 △인권보장을 위한 체류요건의 완화 △자녀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 마련 △이주여성 보호를 위한 종합지원센터의 필요성 등을 지적했다.
하지만 법적인 제약 또한 만만치 않다.
아름다운 재단 소라미 공익 변호사는 “체류기간 연장시 배우자 동행을 의무화한 점이나 이혼 소송 진행 동안 취업을 허용치 않는 점 등은 국제결혼 여성의 법적 지위 보호에 문제점으로 지적된다”며 “특히 한국 남성에게 이혼 귀책사유가 있음을 이주여성 본인이 증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소 변호사는 “혼인에 기한 국적 취득과 자녀를 출산할 경우 국적 취득 요건을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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