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20여년간 아내를 구타해온 폭력전과 4범의 남편 김 모씨. 새벽 3시쯤부터 아침까지 아내를 구타해 살해.
사례2) 결혼 13년 동안 남편으로부터 심한 폭력에 시달려오던 아내 최 모씨. 남편이 딸을 성추행하는 것을 목격하고 저지하려다 4시간 동안 폭행을 당함. 폭행하다 지쳐 잠든 남편을 우발적으로 목졸라 살해.
김씨와 최씨 중 누가 더 무거운 형을 받았을까. 두 가지 실제 사례를 보면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사법절차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례에서 남편 김씨는 ‘폭행치사죄’로 징역 5년을 구형 받아 3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내 최씨는 살인죄로 7년을 구형 받아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청주여자교도소 네 명 중 한 명이 남편살해범 = 최근 들어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김영희 교수가 청주여자교도소를 대상으로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현재 청주여자교도소 여성 수형자 531명 중 133명이 남편을 살해했다. 전체 수형자의 네 명 중 한 명은 남편 살해범인 셈이다. 또 수감자 531명 중 436명(남편 살해 여성 133명 포함)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남편을 살해한 여성들의 4.5%가 남편의 폭력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남편 살해범인 이들은 대부분 ‘살인죄’로 무겁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법원에 의해 선고받은 평균형량이 9년이 넘을 정도다. 반면 남편이 아내를 구타해 살해한 경우에는 ‘과실치사’나 ‘폭행치사’로 형이 가벼운 편이다.
김영희 교수는 “남편을 살해한 아내들 중 대부분은 오랫동안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온 것으로 나타났다”며 “문제는 지속적인 학대가 주는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이해부족으로 인해 남편을 살해한 아내들이 지나치게 과중한 형량을 선고받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가정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여성의 입장에서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라도 남편이 무기를 들고 접근했을 경우 배심원 판결에서 76%가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반면 우리 판례 상 정당방위 인정은 매우 인색하다. 현실적인 생명의 위협이나 폭력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서 아직까지 적당방위를 적용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단 한건도 없다.
◆형사절차에 가정폭력 특수성 반영해야 =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남편살해사건에서는 우선 ‘실제로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가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 여성계의 주장이다.
사건 발생 직전까지 계속된 남편의 폭력이나 행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남편에게 대항하다가 순간적으로 살인이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정폭력문제를 15년째 담당해온 이명숙 변호사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남편 살해사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우발적인 범죄로서 명백한 살인고의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살인죄로 처벌받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는 폭력피해 여성이 ‘남편을 죽인 내가 죽일년’이라는 의식 때문에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고 형사절차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을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여성계는 형법상 정당방위가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여성들의 경우에는 달리 적용돼야 한다며 법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여성의전화가 지난 12월 ‘여성에게 생존의 권리는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연 토론회에서도 가정폭력피해여성경우에는 형법상 무죄로 평가되는 정당방위를 달리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침해의 현재성’‘방위의 상당성’요건은 힘이 대등한 두 남자의 대결상황을 가정하고 성립된 이론이기 때문에 밀접한 가정 공동체 내의 물리적 힘의 차이가 있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반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려온 여성들은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등 이상 심리에 시달리게 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전담 재판부 마련해야 = 여성계는 또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하는 전문적인 법체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미한 가정폭력사건이 형사사건으로 처리되지 않고 특수성을 인정받아 가정폭력방지법에 의해 보호처분이 내려지는 것처럼 아내의 남편살해사건도 일반 형사범과는 달리 취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이혼 등 가정사와 소년사건을 비교적 장기간 전담할 전문법관이 올해 처음으로 선발하는 등 개혁작업을 본격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혼 등 가정문제를 깊이 있고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해당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견과 사회적 경험 등을 갖춘 법관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의 남편 살해사건은 가정법원이 아니라 일반형사법원에서 취급하고 있고 형사법원에는 가정폭력사건만 전담하는 재판부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경찰, 검찰에 가정폭력전담 수사관이 지정되고 가정법원은 물론 일반 형사재판에까지 가정폭력 전담 재판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가정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형사사법기관의 공조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법 집행과 처벌 그리고 교화프로그램이 하나의 틀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 시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정미 기자 pjmn@naeil.com
사례2) 결혼 13년 동안 남편으로부터 심한 폭력에 시달려오던 아내 최 모씨. 남편이 딸을 성추행하는 것을 목격하고 저지하려다 4시간 동안 폭행을 당함. 폭행하다 지쳐 잠든 남편을 우발적으로 목졸라 살해.
김씨와 최씨 중 누가 더 무거운 형을 받았을까. 두 가지 실제 사례를 보면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사법절차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례에서 남편 김씨는 ‘폭행치사죄’로 징역 5년을 구형 받아 3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내 최씨는 살인죄로 7년을 구형 받아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청주여자교도소 네 명 중 한 명이 남편살해범 = 최근 들어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김영희 교수가 청주여자교도소를 대상으로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현재 청주여자교도소 여성 수형자 531명 중 133명이 남편을 살해했다. 전체 수형자의 네 명 중 한 명은 남편 살해범인 셈이다. 또 수감자 531명 중 436명(남편 살해 여성 133명 포함)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남편을 살해한 여성들의 4.5%가 남편의 폭력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남편 살해범인 이들은 대부분 ‘살인죄’로 무겁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법원에 의해 선고받은 평균형량이 9년이 넘을 정도다. 반면 남편이 아내를 구타해 살해한 경우에는 ‘과실치사’나 ‘폭행치사’로 형이 가벼운 편이다.
김영희 교수는 “남편을 살해한 아내들 중 대부분은 오랫동안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온 것으로 나타났다”며 “문제는 지속적인 학대가 주는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이해부족으로 인해 남편을 살해한 아내들이 지나치게 과중한 형량을 선고받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가정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여성의 입장에서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라도 남편이 무기를 들고 접근했을 경우 배심원 판결에서 76%가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반면 우리 판례 상 정당방위 인정은 매우 인색하다. 현실적인 생명의 위협이나 폭력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서 아직까지 적당방위를 적용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단 한건도 없다.
◆형사절차에 가정폭력 특수성 반영해야 =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남편살해사건에서는 우선 ‘실제로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가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 여성계의 주장이다.
사건 발생 직전까지 계속된 남편의 폭력이나 행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남편에게 대항하다가 순간적으로 살인이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정폭력문제를 15년째 담당해온 이명숙 변호사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남편 살해사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우발적인 범죄로서 명백한 살인고의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살인죄로 처벌받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는 폭력피해 여성이 ‘남편을 죽인 내가 죽일년’이라는 의식 때문에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고 형사절차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을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여성계는 형법상 정당방위가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여성들의 경우에는 달리 적용돼야 한다며 법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여성의전화가 지난 12월 ‘여성에게 생존의 권리는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연 토론회에서도 가정폭력피해여성경우에는 형법상 무죄로 평가되는 정당방위를 달리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침해의 현재성’‘방위의 상당성’요건은 힘이 대등한 두 남자의 대결상황을 가정하고 성립된 이론이기 때문에 밀접한 가정 공동체 내의 물리적 힘의 차이가 있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반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려온 여성들은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등 이상 심리에 시달리게 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전담 재판부 마련해야 = 여성계는 또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하는 전문적인 법체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미한 가정폭력사건이 형사사건으로 처리되지 않고 특수성을 인정받아 가정폭력방지법에 의해 보호처분이 내려지는 것처럼 아내의 남편살해사건도 일반 형사범과는 달리 취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이혼 등 가정사와 소년사건을 비교적 장기간 전담할 전문법관이 올해 처음으로 선발하는 등 개혁작업을 본격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혼 등 가정문제를 깊이 있고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해당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견과 사회적 경험 등을 갖춘 법관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의 남편 살해사건은 가정법원이 아니라 일반형사법원에서 취급하고 있고 형사법원에는 가정폭력사건만 전담하는 재판부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경찰, 검찰에 가정폭력전담 수사관이 지정되고 가정법원은 물론 일반 형사재판에까지 가정폭력 전담 재판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가정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형사사법기관의 공조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법 집행과 처벌 그리고 교화프로그램이 하나의 틀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 시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정미 기자 pjm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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