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라는 21세기를 맞아 사내부부사원들이 꼭꼭 숨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남편·아
버지가 있으니 여성은 집에 가라”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직장에서 배신당하고, (이제는) 사회까지 날 버렸다.”
지난해 11월30일 전 농협 직원인 김미숙(27)씨는 탄식했다. 17개월에 걸친 길고 지리한 싸움이 원점
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지방법원 제41 민사부(재판장 김선종)는 김미숙씨와 김향아(35)씨의 농협을 상대로 한
‘해고무효소송’에 대해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기로’ 결정했다. 사법부가 762쌍의 부부사원
중 752쌍을 퇴직시킨 농협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의 이날 판결은 부부사원 우선 퇴직을 대표
적인 남녀차별로 꼽은 〈고용평등법〉까지 부정하는 것이어서 특히 주목을 끌었다. 여성계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10년은 후퇴시킨 판결”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 구조조정 기업들 아내사원 정리해고 = 부부사원을 구조조정의 1순위로 삼은 것은 비단 농협뿐
만이 아니다. 98년 가장 우선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알리안츠제일생명의 경우에는 명예퇴직
의 형식도 빌지 않았다. 별도의 명예퇴직금도 없는 상태에서 88쌍의 사내부부 가운데 83쌍이 “
(아내가) 안되면 당신(남편)이라도 사표를 내라”는 최후통첩에 밀렸다.
호텔롯데의 부부사원 70여쌍은 98년 회사측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경제위기로 회사가 어렵다, 3
개월치 임금을 더 줄테니 희망퇴직 하라는 내용이었다.
대전 원자력연구소는 99년 말, 5쌍밖에 안되는 부부사원을 우선 정리해고했다.
지난해 말 사회보험에서 최소한 20여쌍의 부부사원이 ‘명예’퇴직했고, 한국통신에서는 퇴직한
1200명 중 900명이 사내부부로 추정된다. 최근 ㅎ상선에 다닌다는 한 여직원은 “회사에서 남편이
계열사에 있는 여성에게도 사직 압력을 넣고 있다”며 여성단체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농협이 사내부부를 상대적 경제적 생활안정자로 규정하고 명예퇴직을 강요한 이유는 부부 중 한사
람(특히 남편)을 볼모로 잡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조순경(여성학) 교수의 분석이
다.
실제 농협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내부부 남편에게 ‘아내의 사직서’를 강요했다.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경우 남편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98년 알리안츠제일생명을 떠난 이 모(35)씨는 “회사측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 지방발령을
내겠다, 평생 빨간 줄 그어진 상태에서 회사생활하고 싶느냐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
이 퇴직한다면 재취업이 힘들고, 시집에서 욕 먹을 것이 뻔해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
어놨다.
남편들 역시 자신이 받을 불이익이 두려워 아내를 설득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한국통신에서 퇴사한
사내부부의 경우, 대다수의 남편들이 중간관리자여서 직접 아내의 사직을 권했다. 남편이 3급 과장
이라는 한 여성은 “남편이 특별관리 대상이 되고 타 본부로 전출된다며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는 희망퇴직으로 처리됐다.
이 여성은 끝까지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남편을 위해 희생한 마당에 (한국통신을 거론해서)
남편에게 또 다른 피해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사회가 문제 = 누군가가 정리해고 돼야 할 상황이라면 두 사람이 직장생활하
는 부부사원이 낫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여성학자 박홍주씨는 “우리사회에서 가장이라는 이름은 노동권 등 모든 부분을 뛰어넘는 권위”라
고 지적했다. 박씨는 또 “가장이 없으면 가족이 없다는 논리는 부부사원 문제에만 한정되지는 않는
다”고 덧붙였다. 기혼여성이 우선해고되는 것이나, 미혼 여성의 취업문이 남성에 비해 좁은 것도 같
은 이유다. 생계부양자인 남편이 있으므로 해고돼도 괜찮고, 부양해줄 아버지가 있으므로 취업하지
않고 있다가 결혼하면 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사법부가 법에 반(反)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사법부의 결단은 기혼 여성
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는데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통신노조 정유선 여성국장은 “여직원들
이 패소했다는 신문기사를 확대복사해서 사내 게시판에 붙여놓고, 부부사원들에게 ‘법으로도 어쩔
수 없다’고 퇴직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구조조정은 그래도 고위직급 중심이었다. 올해는 하위직급으로 내려올텐데, 농협 판결이
이렇게 내려졌으니 회사측으로서는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부사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감은 다른 직장인들보다 3∼4배 이상이다.
김진명 미즈엔 기자 jmkim@naeil.com
버지가 있으니 여성은 집에 가라”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직장에서 배신당하고, (이제는) 사회까지 날 버렸다.”
지난해 11월30일 전 농협 직원인 김미숙(27)씨는 탄식했다. 17개월에 걸친 길고 지리한 싸움이 원점
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지방법원 제41 민사부(재판장 김선종)는 김미숙씨와 김향아(35)씨의 농협을 상대로 한
‘해고무효소송’에 대해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기로’ 결정했다. 사법부가 762쌍의 부부사원
중 752쌍을 퇴직시킨 농협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의 이날 판결은 부부사원 우선 퇴직을 대표
적인 남녀차별로 꼽은 〈고용평등법〉까지 부정하는 것이어서 특히 주목을 끌었다. 여성계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10년은 후퇴시킨 판결”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 구조조정 기업들 아내사원 정리해고 = 부부사원을 구조조정의 1순위로 삼은 것은 비단 농협뿐
만이 아니다. 98년 가장 우선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알리안츠제일생명의 경우에는 명예퇴직
의 형식도 빌지 않았다. 별도의 명예퇴직금도 없는 상태에서 88쌍의 사내부부 가운데 83쌍이 “
(아내가) 안되면 당신(남편)이라도 사표를 내라”는 최후통첩에 밀렸다.
호텔롯데의 부부사원 70여쌍은 98년 회사측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경제위기로 회사가 어렵다, 3
개월치 임금을 더 줄테니 희망퇴직 하라는 내용이었다.
대전 원자력연구소는 99년 말, 5쌍밖에 안되는 부부사원을 우선 정리해고했다.
지난해 말 사회보험에서 최소한 20여쌍의 부부사원이 ‘명예’퇴직했고, 한국통신에서는 퇴직한
1200명 중 900명이 사내부부로 추정된다. 최근 ㅎ상선에 다닌다는 한 여직원은 “회사에서 남편이
계열사에 있는 여성에게도 사직 압력을 넣고 있다”며 여성단체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농협이 사내부부를 상대적 경제적 생활안정자로 규정하고 명예퇴직을 강요한 이유는 부부 중 한사
람(특히 남편)을 볼모로 잡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조순경(여성학) 교수의 분석이
다.
실제 농협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내부부 남편에게 ‘아내의 사직서’를 강요했다.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경우 남편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98년 알리안츠제일생명을 떠난 이 모(35)씨는 “회사측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 지방발령을
내겠다, 평생 빨간 줄 그어진 상태에서 회사생활하고 싶느냐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
이 퇴직한다면 재취업이 힘들고, 시집에서 욕 먹을 것이 뻔해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
어놨다.
남편들 역시 자신이 받을 불이익이 두려워 아내를 설득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한국통신에서 퇴사한
사내부부의 경우, 대다수의 남편들이 중간관리자여서 직접 아내의 사직을 권했다. 남편이 3급 과장
이라는 한 여성은 “남편이 특별관리 대상이 되고 타 본부로 전출된다며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는 희망퇴직으로 처리됐다.
이 여성은 끝까지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남편을 위해 희생한 마당에 (한국통신을 거론해서)
남편에게 또 다른 피해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사회가 문제 = 누군가가 정리해고 돼야 할 상황이라면 두 사람이 직장생활하
는 부부사원이 낫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여성학자 박홍주씨는 “우리사회에서 가장이라는 이름은 노동권 등 모든 부분을 뛰어넘는 권위”라
고 지적했다. 박씨는 또 “가장이 없으면 가족이 없다는 논리는 부부사원 문제에만 한정되지는 않는
다”고 덧붙였다. 기혼여성이 우선해고되는 것이나, 미혼 여성의 취업문이 남성에 비해 좁은 것도 같
은 이유다. 생계부양자인 남편이 있으므로 해고돼도 괜찮고, 부양해줄 아버지가 있으므로 취업하지
않고 있다가 결혼하면 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사법부가 법에 반(反)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사법부의 결단은 기혼 여성
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는데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통신노조 정유선 여성국장은 “여직원들
이 패소했다는 신문기사를 확대복사해서 사내 게시판에 붙여놓고, 부부사원들에게 ‘법으로도 어쩔
수 없다’고 퇴직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구조조정은 그래도 고위직급 중심이었다. 올해는 하위직급으로 내려올텐데, 농협 판결이
이렇게 내려졌으니 회사측으로서는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부사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감은 다른 직장인들보다 3∼4배 이상이다.
김진명 미즈엔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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