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종사 송규(1900∼1962)는 원불교 2대 종법사이다.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를 보필하여 창업의 터전을 닦았고 법통을 이어 교단의 토대를 반석같이 다진 인물이다. 3대 대산종사는 정산종사 비문에 "대종사가 하늘이요 태양이시라면 정산종사는 땅이요 명월이시며 대종사는 우리의 정신을 낳아주신 영부시라면 정산종사는 그 정신을 길러주신 법모시다"라고 찬양하였다. 또 자기가 지금까지 본 모든 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 했고, 종교학자 최준식은 "수운, 증산, 소태산과 함께 한국의 큰 스승으로 꼽았다."
정산종사는 1900년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인생의 깊은 이치를 알고자 했고 천하창생을 구할 큰 힘을 얻고자 염원하였다. 도를 구하여 스승을 찾아 고행하다가 소태산 대종사를 만난 후 두 마음 없는 신성으로 정진하여 성자의 인격을 이루었다.
정산종사는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1943년 소태산 대종사의 갑작스런 열반으로 종법사의 위를 이어받은후 일제의 갖은 탄압과 회유를 큰 법력으로 넘기면서 해방과 함께 전제동포구호사업으로 사회구제에 전력하면서 건국론을 저술하여 민족의 바른 진로를 제시하였다. 대종사의 유시를 받들어 원광대학교 등 여러 교육기관과 자선기관 등을 개설하고 인재를 양성하였다. 경전을 정비 결집하여 "교화 교육 자선"을 교단의 삼대목표로 정하고 그 기틀을 확립하였으며 생령을 구하고 세상을 바르게 하는 일에 전력하였다. 정산종사는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상의 진리'를 바탕으로 앞으로 세계인류가 나아갈 진리실천의 길로 삼동원리를 밝히고 실천을 당부하며 열반하였다. 세수는 63세, 법랍은 45년이었다.
정산종사는 1900년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인생의 깊은 이치를 알고자 했고 천하창생을 구할 큰 힘을 얻고자 염원하였다. 도를 구하여 스승을 찾아 고행하다가 소태산 대종사를 만난 후 두 마음 없는 신성으로 정진하여 성자의 인격을 이루었다.
정산종사는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1943년 소태산 대종사의 갑작스런 열반으로 종법사의 위를 이어받은후 일제의 갖은 탄압과 회유를 큰 법력으로 넘기면서 해방과 함께 전제동포구호사업으로 사회구제에 전력하면서 건국론을 저술하여 민족의 바른 진로를 제시하였다. 대종사의 유시를 받들어 원광대학교 등 여러 교육기관과 자선기관 등을 개설하고 인재를 양성하였다. 경전을 정비 결집하여 "교화 교육 자선"을 교단의 삼대목표로 정하고 그 기틀을 확립하였으며 생령을 구하고 세상을 바르게 하는 일에 전력하였다. 정산종사는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상의 진리'를 바탕으로 앞으로 세계인류가 나아갈 진리실천의 길로 삼동원리를 밝히고 실천을 당부하며 열반하였다. 세수는 63세, 법랍은 45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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