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잠을 깨기가 두려운 직장인 A씨. 오늘도 주위를 둘러본 뒤 안도의 한숨부터 내쉰다. 다행히 집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그는 술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다. 그의 술자리 버릇은 간단하다. 처음엔 거부한다. 술을 잘 못하는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몇 잔이 들어가면 그때부턴 자신이 주도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술이 사람을 먹는 지경에 이른다.
결과는 뻔하다. 술만 마시면 어김없이 사고가 터진다. 흔히 말하는 필름이 끊기는 일은 기본이다. 일어나보면 낯선 곳에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경찰서에서 밤을 샌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둔 그는 술로 인해 몇 차례나 결별 위기까지 갔다. 어렵게 다시 수습했지만 여전히 위태롭다. 회사생활에도 숱한 장애가 뒤따랐다. 그에게는 이번 주말에 있을 회사 망년회가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사례2 경찰 공무원인 B씨. 그는 평소 두주불사로 소문난 술꾼이자 애주가다. 건강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체력단련을 했고, 술자리에서는 항상 호기롭게 사람들과 어울렸다. 지난달 한 술자리에서 그에게도 이상 신호가 왔다. 이날도 점심회식 때 ‘폭탄주’를 호기롭게 마시고 오후에 시간을 내서 체력단련을 하던 중 그는 쓰러졌다. 폭탄이 터진 것이다. 병명은 뇌출혈. 다행히 수술이 잘됐고 빠르게 회복중이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술 앞에 자유로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직장에 피해, 개인에게도 손해인 왜곡된 술문화의 단적인 예다. “가장 좋은 술에도 찌꺼기는 있다”는 서양 속담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연말연시 직장인들의 공통된 고민은 술이다. 친구, 선후배, 직장 동료, 거래처 등 일년을 마무리해야할 곳이 너무 많다.
대부분 술로 시작해 술로 끝이 난다. 쉽게 빠질 수도 없다. 술이 사회생활의 기본처럼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술 덜 취하는 방법, 몸에 좋다는 약까지 먹어가며 온갖 비법을 다 동원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급기야는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무조건 끝장을 보는 대한민국 술 문화.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기업체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술 없는 송년모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술 잘 마시면 일도 잘 해? = 우리나라만큼 술에 대해 관용적인 나라는 드물다. 술 마시고 지각, 결근하거나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는 이럴 경우 당연히 알코올 전문 클리닉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남자가 일 때문에 술 마시면 그럴 수도 있다’ 이상한 논리가 만연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술 잘 먹는 것이 업무능력과 정비례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직장인 과음자 비율은 31.3%로 미국의 8.4%보다 4배가량 높다.
하지만 각종 조사에 따르면 술은 결국 생산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인제대학교 알코올연구소장인 김광기 교수는 “세계적으로 술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평균 25% 수준이며, 우리나라는 더 높을 것”이라면서 “술로 인한 폐해만 제대로 막으면 요즘 같은 불황에도 구조조정이 필요 없게 될 지도 모를 일”이라고 평가했다.
음주문화연구센터 제갈 정 예방교육본부장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를 해 보니까 음주빈도가 많을수록 지각이나 근무태만 등 부정적 경험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제갈 본부장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부정적 경험이 많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업무능력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결국 술로 인한 생산성 저하라는 현실과 자신의 주관적 평가가 현저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죽자’며 마시는 술 정말 죽는다 = 술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술로 인한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은 대략 14조원에서 16조원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의료비, 생산성감소분, 조기사망손실, 재산피해액, 사고처리행정비용 등 음주관련 사회경제적 비용은 매년 2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연간 술 소비량도 어마어마하다. 지난 2001년 주류공업협회 출고량을 기준으로 볼 때 소주의 경우 일년에 28억병, 맥주는 40억병, 위스키는 5700만병을 기록했다. 지난 1999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세계 15세 이상 성인의 순수알코올 소비량에서 우리나라는 슬로베니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다. 각종 범죄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일도 비일비재다. 술과 각종 범죄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99년 전체 범죄자 230여만명 가운데 범행시 알코올 상용자는 19만명(8.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문화시민연대의 조윤행 이사는 “해마다 음주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4만여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면서 “술을 강권하고 특히 2차, 3차로 이어가며 폭음하는 문화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주문화연구센터 제갈 정 본부장도 “음주문제만 건전하게 해결되면 가정폭력 성폭력 살인 방화 등 중요한 범죄가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중소기업에 다니는 그는 술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다. 그의 술자리 버릇은 간단하다. 처음엔 거부한다. 술을 잘 못하는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몇 잔이 들어가면 그때부턴 자신이 주도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술이 사람을 먹는 지경에 이른다.
결과는 뻔하다. 술만 마시면 어김없이 사고가 터진다. 흔히 말하는 필름이 끊기는 일은 기본이다. 일어나보면 낯선 곳에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경찰서에서 밤을 샌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둔 그는 술로 인해 몇 차례나 결별 위기까지 갔다. 어렵게 다시 수습했지만 여전히 위태롭다. 회사생활에도 숱한 장애가 뒤따랐다. 그에게는 이번 주말에 있을 회사 망년회가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사례2 경찰 공무원인 B씨. 그는 평소 두주불사로 소문난 술꾼이자 애주가다. 건강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체력단련을 했고, 술자리에서는 항상 호기롭게 사람들과 어울렸다. 지난달 한 술자리에서 그에게도 이상 신호가 왔다. 이날도 점심회식 때 ‘폭탄주’를 호기롭게 마시고 오후에 시간을 내서 체력단련을 하던 중 그는 쓰러졌다. 폭탄이 터진 것이다. 병명은 뇌출혈. 다행히 수술이 잘됐고 빠르게 회복중이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술 앞에 자유로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직장에 피해, 개인에게도 손해인 왜곡된 술문화의 단적인 예다. “가장 좋은 술에도 찌꺼기는 있다”는 서양 속담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연말연시 직장인들의 공통된 고민은 술이다. 친구, 선후배, 직장 동료, 거래처 등 일년을 마무리해야할 곳이 너무 많다.
대부분 술로 시작해 술로 끝이 난다. 쉽게 빠질 수도 없다. 술이 사회생활의 기본처럼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술 덜 취하는 방법, 몸에 좋다는 약까지 먹어가며 온갖 비법을 다 동원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급기야는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무조건 끝장을 보는 대한민국 술 문화.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기업체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술 없는 송년모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술 잘 마시면 일도 잘 해? = 우리나라만큼 술에 대해 관용적인 나라는 드물다. 술 마시고 지각, 결근하거나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는 이럴 경우 당연히 알코올 전문 클리닉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남자가 일 때문에 술 마시면 그럴 수도 있다’ 이상한 논리가 만연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술 잘 먹는 것이 업무능력과 정비례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직장인 과음자 비율은 31.3%로 미국의 8.4%보다 4배가량 높다.
하지만 각종 조사에 따르면 술은 결국 생산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인제대학교 알코올연구소장인 김광기 교수는 “세계적으로 술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평균 25% 수준이며, 우리나라는 더 높을 것”이라면서 “술로 인한 폐해만 제대로 막으면 요즘 같은 불황에도 구조조정이 필요 없게 될 지도 모를 일”이라고 평가했다.
음주문화연구센터 제갈 정 예방교육본부장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를 해 보니까 음주빈도가 많을수록 지각이나 근무태만 등 부정적 경험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제갈 본부장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부정적 경험이 많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업무능력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결국 술로 인한 생산성 저하라는 현실과 자신의 주관적 평가가 현저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죽자’며 마시는 술 정말 죽는다 = 술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술로 인한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은 대략 14조원에서 16조원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의료비, 생산성감소분, 조기사망손실, 재산피해액, 사고처리행정비용 등 음주관련 사회경제적 비용은 매년 2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연간 술 소비량도 어마어마하다. 지난 2001년 주류공업협회 출고량을 기준으로 볼 때 소주의 경우 일년에 28억병, 맥주는 40억병, 위스키는 5700만병을 기록했다. 지난 1999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세계 15세 이상 성인의 순수알코올 소비량에서 우리나라는 슬로베니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다. 각종 범죄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일도 비일비재다. 술과 각종 범죄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99년 전체 범죄자 230여만명 가운데 범행시 알코올 상용자는 19만명(8.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문화시민연대의 조윤행 이사는 “해마다 음주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4만여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면서 “술을 강권하고 특히 2차, 3차로 이어가며 폭음하는 문화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주문화연구센터 제갈 정 본부장도 “음주문제만 건전하게 해결되면 가정폭력 성폭력 살인 방화 등 중요한 범죄가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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