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국비장학생으로 유학 떠나는 아시아 인어 최윤희

한국 첫 여성 IOC위원 향해 다시 뛴다

지역내일 2005-01-06
22년 전 인도 뉴델리에서 태극기를 세 번씩이나 올리고 일약 ‘아시아의 인어’로 떠오른 최윤희. 한국 수영 역사를 ‘다시 쓴’ 그는 그러나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 출산과 육아로 한동안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랬던 그가 서른여덟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11월 대한체육회가 국제 스포츠 외교를 담당할 인적자원 개발을 위해 실시한 ‘스포츠 외교 전문인력’ 선발 시험에서 1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길(미국 워싱턴주립대학)에 오르게 된 것이다.
출국 1주일 전인 지난해 12월말,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열다섯 살 소녀에서 어느 덧 30대, 두 아이의 엄마가 돼 있었다.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했지만 청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하게 미소 짓던 그 모습만큼은 여전했다.
91년 부모님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한 13살 연상의 가수 유현상과 비밀 결혼식은 스포츠신문 1면 머리기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80년대 대표적인 헤비메탈그룹 ‘백두산’의 리더였던 유현상씨는 결혼하고 나이 들면서 트롯가수로 변신해 화제를 모으기도 한 인물. 술·담배 절대 안 하고 지방 공연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잠은 반드시 집에 들어와서 자는 ‘모범생 남편’에다 두 아이 머리를 단정히 빗겨 학교에 보내는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까운 재능 묵히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던 남편은 아내의 등을 떠밀어 대학원에 보냈다. 석사과정을 끝낼 즈음이던 2001년 5월,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수영장인 ‘킹 아쿠아틱 스위밍클럽’에서 수영 코치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동안 코치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그로서는 수영 종주국에서 자신을 시험하는 또 다른 도전이었던 셈.
“동양인에다가 여자, 그것도 이제까지 배우던 방식과 다르게 가르치니까 한 고등학생이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서 시범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더군요.”
선수생활 접은 지 오래됐다고 해도 아시안게임 2회 연속 금메달을 휩쓸었던 그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물속에서 나오자 학생들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 그 후 1년여 동안 최윤희 코치가 ‘하라는 대로 믿고 따랐음’은 물론이다.
수영을 떼어 놓고 최윤희의 인생을 말할 수 없지만 수영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한 것도 사실이다. 어릴 적엔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도 먹고 남들 다 가는 소풍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수영선수 최윤희에게 그런 또래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허락되지 않았다.
“새벽 운동 할 때가 가장 힘들었죠. 아무리 여름이라도 새벽이면 물이 몸에 닿을 때 온 몸이 싸늘해져요. 겨울은 말할 것도 없구요. 내복까지 껴입고 갔는데 달랑 수영복만 입고 찬물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제 그의 꿈은 모든 운동선수들이 한번쯤 꿈꿔 본다는 IOC 위원이다.
“아테네올림픽에서 양태영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힘 있는 나라였다면 그리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우리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 외교력의 승리거든요. 최근 우리 체육계가 좀 흔들리자 이 틈을 타서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시키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잖아요. 중국이 약진하고 있으니까 우슈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려는 거죠.”
우리나라의 스포츠 외교 인력 풀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늦게나마 쇼트트랙 5관왕 전이경씨를 필두로 ‘스포츠 외교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한 것이 다행이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한국 첫 여성 IOC 위원’이라는 새 목표를 향해 태평양을 건너는 그는 “어깨가 무겁다” 했다.
하지만 그는 열다섯 나이에 한국 여자 수영 28년의 숙원을 풀어주지 않았던가. 국제무대에서 한국 스포츠 외교관의 역할을 멋지게 해낼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
사진 이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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