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 죽은 줄 알았던 큰아들이 살아있다는데. 빨리 보고싶어.”
지난 12일로 100세 생일을 맞은 유두희(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문막리) 할머니. 노령으로 한 마디 말을 하
는 것조차 힘에 겹지만 그 동안의 한이었던 양 이 세 마디 말만은 눈물과 함께 신음처럼 흘려냈다.
유 할머니가 큰아들 신동길(75)씨와 헤어지게 된 것은 지난 50년 9월. 후퇴하는 인민군들이 갓 결혼한지 8
개월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 짐을 들려 끌고 가면서부터였다. 그나마 동네사람들의 목격담만이 큰아들의 마
지막을 증언할 뿐이었다.
이후 50년은 숨죽인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지난 60년 세상을 떠난 남편은 당시의 정황상 동길씨가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며 전쟁이 끝나자마자 호적에서조차 빼버리고 며느리도 재가시켰다. 그러나 모정만큼 모진 것
이 어디 있으랴.
살갑던 큰아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며 지난 50년 동안 끼니때마다 동길씨의 밥을 준비해 왔다. 다른 곳
으로의 이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 같은 정성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100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그리던
큰아들의 생존소식을 들은 데 이어 마침내 상봉까지 눈앞에 두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말렸지요. 어머니가 너무 노령이라서 형님을 만나면 충격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그리던 큰아들은 봐야겠다는 어머니의 뜻이 너무도 굳세 모시고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어
요.”
작은아들 종순(63)씨는 가족을 생이별시킨 그간의 세월이 원망스럽지만 그나마 어머니의 평생 한을 풀게돼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노기혁 기자 nobad@naeil.com
지난 12일로 100세 생일을 맞은 유두희(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문막리) 할머니. 노령으로 한 마디 말을 하
는 것조차 힘에 겹지만 그 동안의 한이었던 양 이 세 마디 말만은 눈물과 함께 신음처럼 흘려냈다.
유 할머니가 큰아들 신동길(75)씨와 헤어지게 된 것은 지난 50년 9월. 후퇴하는 인민군들이 갓 결혼한지 8
개월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 짐을 들려 끌고 가면서부터였다. 그나마 동네사람들의 목격담만이 큰아들의 마
지막을 증언할 뿐이었다.
이후 50년은 숨죽인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지난 60년 세상을 떠난 남편은 당시의 정황상 동길씨가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며 전쟁이 끝나자마자 호적에서조차 빼버리고 며느리도 재가시켰다. 그러나 모정만큼 모진 것
이 어디 있으랴.
살갑던 큰아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며 지난 50년 동안 끼니때마다 동길씨의 밥을 준비해 왔다. 다른 곳
으로의 이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 같은 정성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100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그리던
큰아들의 생존소식을 들은 데 이어 마침내 상봉까지 눈앞에 두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말렸지요. 어머니가 너무 노령이라서 형님을 만나면 충격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그리던 큰아들은 봐야겠다는 어머니의 뜻이 너무도 굳세 모시고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어
요.”
작은아들 종순(63)씨는 가족을 생이별시킨 그간의 세월이 원망스럽지만 그나마 어머니의 평생 한을 풀게돼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노기혁 기자 nobad@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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