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히 살면 아이들은 건강해지죠”

가정해체 아이 9명과 가족 이룬 ‘신림우리집’ 엄마 김혜경씨

지역내일 2005-01-03 (수정 2005-01-03 오전 10:47:12)
10년째 서울 신림동에서 조용히 대안가정을 이끌고 있는 ‘신림우리집’의 김혜경(41) 씨를 찾아갔을 땐 막 저녁상을 치우고 아이들에게 한자공부를 시키는 중이었다. 주택가 상가 2층에 자리 잡은 스무 평 남짓한 방3칸의 공간에서 가정이 해체된 청소년 아홉 명(고교생 3명, 중학생 4명, 초등학생 2명)이 스스럼없이 김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그저 평범히 살고 있었다.
공부를 마친 아이들은 획일적인 강제나 규칙 없이 각자 자유롭게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낯선 손님의 등장에도 아이들은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돼 있다는 뜻일 것이다. 중3 남학생 두 명은 일찍이 진로를 결정, 방과 후 매일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아르바이트하며 정비기술을 익히고 있다. 고교생 한 명은 서예학원 청소를 맡아 용돈을 벌고 있다. 벌써부터 자립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대견스럽다.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청소년 보호센터’에서 보육사로 근무했던 김씨는 31살 처녀 몸으로 결혼 대신, 시집갈 밑천을 통틀어 신림 1동에 14평짜리 연립주택을 전세로 얻어 ‘그룹홈’을 시작했다. 부모없는 초등생 남매를 데려와 셋이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점차 하나둘 식구가 늘며 돈이 없어 2년마다 이사를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둥지를 틀게 됐다.
열 명의 대식구라 살림규모가 만만치 않다. 한 달 생활비만 3백50만 원 들며, 또 아이들에게 저마다 한 군데 정도는 학원을 보내기 때문에 여러 모로 지출이 많다. 알음알음 알게 된 지인들이 보내주는 개인후원금으로 정말 기적처럼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 컴퓨터도 딱 한 대밖에 없고, 혼자 밤늦게까지 책을 봐 스탠드가 필요한 한 중학생 아이에게 스탠드도 못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항상 밝게 웃는 김씨는 “가장 자유롭고 편한 공간이 바로 ‘우리집’ 아니겠어요? 식당에서 남은 음식 얻어다 먹고, 입던 헌옷 얻어 입히며 살았지만 우리애들이 자랑스러워요. 친아버지한테 매 맞다 온 애도 있고,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다 온 아이도 있지만, 여기 와서 함께 부대끼며 건강하게 변하는 모습을 볼 때 그 기쁨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지요” 라고 말한다.
김씨는 조건부 미인가 시설인 이런 곳에도 정부가 최소한의 인건비와 생계유지비 지원 혜택을 주었으면 하고 희망한다.
2년 전 큰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입원치료도 마다하고 김씨는 매일 통원치료로 버티며 목에 깁스를 한 채 하루 세끼 아이들 밥과 도시락을 다 싸주었다.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려고 신정 대목에 맞춰 신림시장 안 떡집에서 떡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총총히 떠나는 김혜경 씨의 모습이 활기찼다.

/유기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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