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사회가 된 한국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연말을 앞두고 정관수술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새해부터 불임 시술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비군과 민방위대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권유하던 광경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될 판이다.
2002년 기준으로 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아이의 숫자가 1.17명까지 내려갔으니 노인은 많고 일할 사람은 없어 큰일나게 생겼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자 정부도 갑자기 출산 장려책을 펴기 시작했다. 우선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 양육비를 보조해 준다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둘째 아이가 없는데 셋째 아이부터 지원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젊은 여성들은 “그까짓 양육비가 문제이냐”는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한국의 고질병인 선진국 사례 따라 배우기는 재발되었다. 보건복지 정책 담당자들의 해외 시찰이 시작되었고 외국의 출산 장려책에 대한 연구와 홍보를 위해 거액의 예산이 사용될 것은 뻔하다. 얼마 전까지 출산율을 낮추는데 기여했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뛰면서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20여년전에 예고된 ‘저출산’
냉정하게 따져 보면 이러한 사태는 이미 20여년 전에 예고되어 있었다. 합계 출산율이 2,0 이하로 내려간 시점은 1980년대 전반이었다. 합계 출산율은 1983년의 2.08에서 1984년에는 1.76으로 급강하했으며 1998에는 1.47로 내려갔다. 서울 올림픽을 치룬 1988년을 기점으로 생산직 노동자 부족 사태가 벌어져 외국인 불법 취업자가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미래의 노동력 수급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지나간 일이니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정책 입안에 관여하는 전문가나 관료, 국회의원이 중학교 수준의 수학 실력만 발휘했어도 예측할 수 있는 대란이 각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사례만 보면 김영삼 정부 시대에는 고교생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 대학 설립에 대한 규제를 풀어 대학 정원은 급속도로 팽창하게 만드는 정책에 교육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531 교육개혁을 추진한 청와대 수석은 현재 야당의 정책 개발을 총괄하고 있고,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총리로 돌아 왔다. 개혁의 결과를 수치로 알아보면 2003년을 기준으로 대학교 입학자는 약 33만 4천명, 전문대 입학자는 약 25만 9천명이 되었다. 일반계 고교 졸업자는 약 40만 6천명, 실업계 고교 졸업자는 약 18만 3천명이었다. 반면에 2003년에 태어난 신생아는 약 49만3천명에 불과하였다. 즉, 누구나 고등교육 기관에 진학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엄청난 과잉 시설과 교원, 직원을 껴안고 있는 대학과 전문대는 구조 조정을 겪게 되었다.
물론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정책 기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하다. 아직도 ‘한국형 뉴딜’을 추진하는 참여정부의 전문가들도 고속도로 건설은 지지하지만 교육과 복지를 위한 시설에 투자하는 것은 낭비라고 비판하고 있다. 생활의 질적 충실화가 경제성장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의 시계는 ‘증산, 수출, 건설’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새마을 깃발을 들고 새마을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던 박정희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하던 시대에 수출산업의 주력 노동자로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지금 자식들을 시집보내고 장가도 보내야 하는 어머니가 되어 있다.
주거·육아·교육 비용 낮춰야
개발시대의 여공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시작한 시점은 합계 출산율이 2.0 이하로 떨어지던 시대와 겹쳐진다. 이들에게는 결혼이 고생의 끝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육아를 도와 줄 농촌 공동체적 상부상조의 유대는 소멸되었고, 사회복지 시설은 정비되지 않았다. 전업주부로 지낼만한 여유가 없는 서민층의 여성은 육아와 노동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고 출산은 고통의 증대로 직결되었다. 중산층 가정에서도 주거비와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달려야 했다. 육아 비용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 시키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정부도 산아제한 정책이라는 빈곤한 시대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출산율 저하 현상은 사회 구조 자체가 ‘불임 모드’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어른들도 살기 힘든 법이다. 한국에는 주거, 육아, 의료,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연말을 앞두고 정관수술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새해부터 불임 시술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비군과 민방위대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권유하던 광경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될 판이다.
2002년 기준으로 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아이의 숫자가 1.17명까지 내려갔으니 노인은 많고 일할 사람은 없어 큰일나게 생겼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자 정부도 갑자기 출산 장려책을 펴기 시작했다. 우선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 양육비를 보조해 준다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둘째 아이가 없는데 셋째 아이부터 지원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젊은 여성들은 “그까짓 양육비가 문제이냐”는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한국의 고질병인 선진국 사례 따라 배우기는 재발되었다. 보건복지 정책 담당자들의 해외 시찰이 시작되었고 외국의 출산 장려책에 대한 연구와 홍보를 위해 거액의 예산이 사용될 것은 뻔하다. 얼마 전까지 출산율을 낮추는데 기여했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뛰면서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20여년전에 예고된 ‘저출산’
냉정하게 따져 보면 이러한 사태는 이미 20여년 전에 예고되어 있었다. 합계 출산율이 2,0 이하로 내려간 시점은 1980년대 전반이었다. 합계 출산율은 1983년의 2.08에서 1984년에는 1.76으로 급강하했으며 1998에는 1.47로 내려갔다. 서울 올림픽을 치룬 1988년을 기점으로 생산직 노동자 부족 사태가 벌어져 외국인 불법 취업자가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미래의 노동력 수급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지나간 일이니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정책 입안에 관여하는 전문가나 관료, 국회의원이 중학교 수준의 수학 실력만 발휘했어도 예측할 수 있는 대란이 각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사례만 보면 김영삼 정부 시대에는 고교생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 대학 설립에 대한 규제를 풀어 대학 정원은 급속도로 팽창하게 만드는 정책에 교육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531 교육개혁을 추진한 청와대 수석은 현재 야당의 정책 개발을 총괄하고 있고,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총리로 돌아 왔다. 개혁의 결과를 수치로 알아보면 2003년을 기준으로 대학교 입학자는 약 33만 4천명, 전문대 입학자는 약 25만 9천명이 되었다. 일반계 고교 졸업자는 약 40만 6천명, 실업계 고교 졸업자는 약 18만 3천명이었다. 반면에 2003년에 태어난 신생아는 약 49만3천명에 불과하였다. 즉, 누구나 고등교육 기관에 진학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엄청난 과잉 시설과 교원, 직원을 껴안고 있는 대학과 전문대는 구조 조정을 겪게 되었다.
물론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정책 기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하다. 아직도 ‘한국형 뉴딜’을 추진하는 참여정부의 전문가들도 고속도로 건설은 지지하지만 교육과 복지를 위한 시설에 투자하는 것은 낭비라고 비판하고 있다. 생활의 질적 충실화가 경제성장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의 시계는 ‘증산, 수출, 건설’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새마을 깃발을 들고 새마을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던 박정희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하던 시대에 수출산업의 주력 노동자로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지금 자식들을 시집보내고 장가도 보내야 하는 어머니가 되어 있다.
주거·육아·교육 비용 낮춰야
개발시대의 여공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시작한 시점은 합계 출산율이 2.0 이하로 떨어지던 시대와 겹쳐진다. 이들에게는 결혼이 고생의 끝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육아를 도와 줄 농촌 공동체적 상부상조의 유대는 소멸되었고, 사회복지 시설은 정비되지 않았다. 전업주부로 지낼만한 여유가 없는 서민층의 여성은 육아와 노동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고 출산은 고통의 증대로 직결되었다. 중산층 가정에서도 주거비와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달려야 했다. 육아 비용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 시키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정부도 산아제한 정책이라는 빈곤한 시대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출산율 저하 현상은 사회 구조 자체가 ‘불임 모드’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어른들도 살기 힘든 법이다. 한국에는 주거, 육아, 의료,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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