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은 있는데 성공한 전직 대통령은 없다
“노 대통령, 퇴임 후 지방의원 희망” … ‘김대중도서관’ 눈길
지역내일
2004-09-24
(수정 2004-09-24 오전 10:48:09)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하면 지방 의회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혹은 결혼식 주례를 서서 좋은 얘기도 해주고 돈을 벌고 하면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전한 말이다. 이 말이 유난히 흥미롭게 들리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이 ‘뒷방’에만 머물러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외 활동만이 예외로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운영의 경험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고, 때문에 이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일종의 책임과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이유다.
◆‘성공한 전직 대통령’ 없다=‘망명 암살 감옥행 운둔…’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의 어두운 단상이다. 본인들에게는 물론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도 불편한 과거이자 ‘역사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생존한 전직 대통령들이 대부분 ‘침묵’을 지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들간의 이념적·정치적 차별화, 정치적 갈등 혹은 보복, 구조적인 문제 등이 지적된다.
“이승만은 객사했고 박정희는 시해됐으며, 내각책임제 당시 윤보선과 ‘반년 대통령’이던 최규하를 제외하면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은 4명 정도다. 이 중 전두환·노태우는 영어의 몸까지 됐고, 김영삼은 경륜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분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불법대북송금 문제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지난 대통령들에 대한 고재방 교수(서울대·전 청와대 상황실장)의 지적은 우리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현존하는 대통령 4명이 현실적인 조건 하에서 활동을 거의 못하는 상황”이라며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며 자신의 국정경험과 능력을 계속 발휘하고 있는 외국의 전직 대통령들에 비해, 우리 사회에는 아쉽게도 아직 이런 ‘전직 대통령’이 없다”고 꼬집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카터, 넬슨 만델라, 클린턴 등의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단지 ‘대통령의 이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의미있는 활동과 노력이 그 이름에 의미를 갖게 만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전직 대통령들의 대부분은 주로 봉사·자선 활동, 연구·집필, 민간외교, 정책자문 등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국가가 퇴임한 이들의 이름을 딴 도서관, 연구소, 대학원 등의 설립을 지원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이들의 재임시절 모든 기록을 보관하는 것도 관례화 돼있다.
◆‘국정경험 최대한 활용돼야’=함성득 교수(고려대)는 한 기고문에서 “한국 역대 대통령들은 정국 혼란 속에서 운 좋게, 군사적 쿠데타로, 야당분열을 이용해, 또는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재임 당시 국민의 존경을 받지도 못했다”며 “따라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들은 국민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고 아울러 그들의 국정운영 경험 전수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문제 개선, 왜곡된 정치문화의 변화 필요성 등을 꼽는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은 “국정경험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회고록을 만든다든가 연구·집필 활동 혹은 씽크탱크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이 부재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국정경험이 전수되지 않으면 실수가 반복되고, 이는 결정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된다”며 “또 다른 문제는 현직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려들지 않고, 서로에 대한 비난과 차별화만 존재하는 풍토”라고 주장했다.
고재방 교수는 ‘정치문화 차이’를 꼽는다.
고 교수는 “클린턴 같은 경우 스캔들이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그것은 그것대로 심판하고 경제부흥, 외교적 자존심 등 공인으로서 달성한 업적은 평가한다”며 “우리는 뭐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모든 것을 안보거나 잘못 보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장점을 높이 사고 전직 대통령들을 어느 정도 용서해주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격이 떨어지는 발언으로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눈총을 받는 전직 대통령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공·과 모두는 기록·평가되고 또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경험은 공유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 도서관’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김한정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바꾸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하신 적이 있다”며 “김대중 도서관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하나의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숙현 기자 shlee@naeil.com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전한 말이다. 이 말이 유난히 흥미롭게 들리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이 ‘뒷방’에만 머물러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외 활동만이 예외로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운영의 경험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고, 때문에 이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일종의 책임과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이유다.
◆‘성공한 전직 대통령’ 없다=‘망명 암살 감옥행 운둔…’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의 어두운 단상이다. 본인들에게는 물론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도 불편한 과거이자 ‘역사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생존한 전직 대통령들이 대부분 ‘침묵’을 지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들간의 이념적·정치적 차별화, 정치적 갈등 혹은 보복, 구조적인 문제 등이 지적된다.
“이승만은 객사했고 박정희는 시해됐으며, 내각책임제 당시 윤보선과 ‘반년 대통령’이던 최규하를 제외하면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은 4명 정도다. 이 중 전두환·노태우는 영어의 몸까지 됐고, 김영삼은 경륜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분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불법대북송금 문제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지난 대통령들에 대한 고재방 교수(서울대·전 청와대 상황실장)의 지적은 우리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현존하는 대통령 4명이 현실적인 조건 하에서 활동을 거의 못하는 상황”이라며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며 자신의 국정경험과 능력을 계속 발휘하고 있는 외국의 전직 대통령들에 비해, 우리 사회에는 아쉽게도 아직 이런 ‘전직 대통령’이 없다”고 꼬집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카터, 넬슨 만델라, 클린턴 등의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단지 ‘대통령의 이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의미있는 활동과 노력이 그 이름에 의미를 갖게 만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전직 대통령들의 대부분은 주로 봉사·자선 활동, 연구·집필, 민간외교, 정책자문 등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국가가 퇴임한 이들의 이름을 딴 도서관, 연구소, 대학원 등의 설립을 지원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이들의 재임시절 모든 기록을 보관하는 것도 관례화 돼있다.
◆‘국정경험 최대한 활용돼야’=함성득 교수(고려대)는 한 기고문에서 “한국 역대 대통령들은 정국 혼란 속에서 운 좋게, 군사적 쿠데타로, 야당분열을 이용해, 또는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재임 당시 국민의 존경을 받지도 못했다”며 “따라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들은 국민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고 아울러 그들의 국정운영 경험 전수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문제 개선, 왜곡된 정치문화의 변화 필요성 등을 꼽는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은 “국정경험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회고록을 만든다든가 연구·집필 활동 혹은 씽크탱크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이 부재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국정경험이 전수되지 않으면 실수가 반복되고, 이는 결정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된다”며 “또 다른 문제는 현직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려들지 않고, 서로에 대한 비난과 차별화만 존재하는 풍토”라고 주장했다.
고재방 교수는 ‘정치문화 차이’를 꼽는다.
고 교수는 “클린턴 같은 경우 스캔들이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그것은 그것대로 심판하고 경제부흥, 외교적 자존심 등 공인으로서 달성한 업적은 평가한다”며 “우리는 뭐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모든 것을 안보거나 잘못 보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장점을 높이 사고 전직 대통령들을 어느 정도 용서해주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격이 떨어지는 발언으로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눈총을 받는 전직 대통령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공·과 모두는 기록·평가되고 또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경험은 공유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 도서관’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김한정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바꾸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하신 적이 있다”며 “김대중 도서관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하나의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숙현 기자 s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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