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짜리 아기를 둔 주부가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지난 9일 발표된 제48회 행정고등고시 최종 합격자 198명 가운데 소년보호직에 지원한 배성희씨(31·경기도 용인)가 그 주인공이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장원급제’를 한 셈인데 아기 엄마에다 주부인 터라 그의 수석합격은 더욱 화제가 됐다.
배성희씨가 행정고시에 첫 도전한 것은 지난 2001년, 대학원(숭실대 사회사업학과)에 진학해서였다. 대학시절부터 꿈꿔왔던 청소년 복지를 공부하다 보니 소년보호직 공무원이 있다는 걸 알았고 마침 입학 첫해 행정고시에 소년보호직을 뽑는 시험이 있었다. 공부한 시간이라야 50여일 남짓, 말 그대로 ‘시험 삼아’ 응시했다. 물론 낙방.
시간을 갖고 좀더 공부하면 1차 합격은 무난할 것 같은 생각에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돌입한 배씨. 그 중에 결혼을 했고 행시 1차에만 서너 번 붙은 남편 고영호씨(37·학원강사)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가장 취약한 영어부터 공략했다. 공부 방법은 독학. “영어 테이프를 하루 1개씩, 듣고 또 듣고, 이제 됐다 싶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식이었다.
결혼생활 하면서 대학원 공부에 행시 준비까지 녹록치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 그런데 시험을 앞두고 덜컥 임신이 됐다.
“출산예정일이 7월 9일쯤 된다는데 그 때는 행시 2차 시험을 볼 때거든요. 2차 시험은 5일 동안 계속 봐야 하는데 아기가 오늘내일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험을 어떻게 볼 지,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세상에 이럴 수 있나 싶더라고요. 행시 공부 해 보라고 ‘꼬신’ 남편이 원망스럽고(웃음), 대학원 공부 열심히 하면서 봉사활동이나 많이 다녔으면 후회나 안 되지 싶어 자꾸 화가 나더라구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2003년 행시에는 소년보호직을 뽑지 않았다. ‘애 낳고 키우라는 팔자인가 보다’ 했다.
“애 키우는 일은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10kg 넘게 쪘던 살이 성민이 키우면서 쏙 빠져 버렸을 정도니까요. 일하는 것보다 아이 키우기가 훨씬 힘들어요.”
아이 키우느라 한동안 행시는 물 건너가나 싶었는데, 2004년 소년보호직 2명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자마자 남편은 다시 한번 시작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공부한 게 아까워서라도 다시 해보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막상 엄마 손길이 필요한 성민이를 떼어놓고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침에 성민이에게 젖을 먹이고 잠든 틈을 타 몰래 도서관에 갔죠. 그 사이 아이는 가까이 사는 작은 언니가 와서 돌봐주었고요.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 가서 젖먹이고 다시 도서관으로, 1차 시험 볼 때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 했어요. 성민이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공부하다 말고 이러다가 시험도 떨어지고 애도 잘못 되면 어쩌나 싶어 진짜 걱정 많이 했으니까요.”
2월에 치러진 1차 시험에서 무난히 합격. 하지만 곧바로 2차 준비에 들어가지 못했다. 논술로 치러지는 2차 시험에 대비해 틈틈이 책을 읽어둬야 했지만 집안일을 챙기고 점점 커가는 성민이와 씨름하다 보면 몸은 어느 새 파김치. 너무 힘들어 2주에 한 번꼴로 ‘이 놈의 행시 때려치우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마지막 논술시험 치르기 전날, 아이가 수족구 때문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하지만 2차 시험을 며칠 앞두고 고시원에 들어가 있었던 성희씨는 이 사실을 몰랐다. 남편은 시험공부에 방해될까봐 알리지 않고 홀로 밤을 새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그러고 보니 수석합격 절반의 공은 남편에게 돌려야 할 듯하다.
배씨는 내년 4월부터 8개월 동안 중앙공무원연수원에서 일반 행정 업무를 배운 뒤 소년원생들을 교정하는 공무원으로서 본격적인 삶을 시작하게 된다.
“행시는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이 있어요. 여성들 끈기는 누구도 못 당해내잖아요. 이번에 여성이 40% 정도 합격한 것도 그런 특성 때문인 것 같아요.”
올해 행시 응시자는 1만4천여명. 최종 합격 198명 중 여성 합격자는 38.4%(지난해보다 4.9% 증가)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교육행정직의 경우 합격자가 모두 여성이어서 양성평등채용목표제에 따라 남성 3명을 추가 합격시켰을 정도다.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사진 이의종 기자
배성희씨가 행정고시에 첫 도전한 것은 지난 2001년, 대학원(숭실대 사회사업학과)에 진학해서였다. 대학시절부터 꿈꿔왔던 청소년 복지를 공부하다 보니 소년보호직 공무원이 있다는 걸 알았고 마침 입학 첫해 행정고시에 소년보호직을 뽑는 시험이 있었다. 공부한 시간이라야 50여일 남짓, 말 그대로 ‘시험 삼아’ 응시했다. 물론 낙방.
시간을 갖고 좀더 공부하면 1차 합격은 무난할 것 같은 생각에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돌입한 배씨. 그 중에 결혼을 했고 행시 1차에만 서너 번 붙은 남편 고영호씨(37·학원강사)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가장 취약한 영어부터 공략했다. 공부 방법은 독학. “영어 테이프를 하루 1개씩, 듣고 또 듣고, 이제 됐다 싶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식이었다.
결혼생활 하면서 대학원 공부에 행시 준비까지 녹록치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 그런데 시험을 앞두고 덜컥 임신이 됐다.
“출산예정일이 7월 9일쯤 된다는데 그 때는 행시 2차 시험을 볼 때거든요. 2차 시험은 5일 동안 계속 봐야 하는데 아기가 오늘내일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험을 어떻게 볼 지,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세상에 이럴 수 있나 싶더라고요. 행시 공부 해 보라고 ‘꼬신’ 남편이 원망스럽고(웃음), 대학원 공부 열심히 하면서 봉사활동이나 많이 다녔으면 후회나 안 되지 싶어 자꾸 화가 나더라구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2003년 행시에는 소년보호직을 뽑지 않았다. ‘애 낳고 키우라는 팔자인가 보다’ 했다.
“애 키우는 일은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10kg 넘게 쪘던 살이 성민이 키우면서 쏙 빠져 버렸을 정도니까요. 일하는 것보다 아이 키우기가 훨씬 힘들어요.”
아이 키우느라 한동안 행시는 물 건너가나 싶었는데, 2004년 소년보호직 2명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자마자 남편은 다시 한번 시작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공부한 게 아까워서라도 다시 해보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막상 엄마 손길이 필요한 성민이를 떼어놓고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침에 성민이에게 젖을 먹이고 잠든 틈을 타 몰래 도서관에 갔죠. 그 사이 아이는 가까이 사는 작은 언니가 와서 돌봐주었고요.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 가서 젖먹이고 다시 도서관으로, 1차 시험 볼 때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 했어요. 성민이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공부하다 말고 이러다가 시험도 떨어지고 애도 잘못 되면 어쩌나 싶어 진짜 걱정 많이 했으니까요.”
2월에 치러진 1차 시험에서 무난히 합격. 하지만 곧바로 2차 준비에 들어가지 못했다. 논술로 치러지는 2차 시험에 대비해 틈틈이 책을 읽어둬야 했지만 집안일을 챙기고 점점 커가는 성민이와 씨름하다 보면 몸은 어느 새 파김치. 너무 힘들어 2주에 한 번꼴로 ‘이 놈의 행시 때려치우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마지막 논술시험 치르기 전날, 아이가 수족구 때문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하지만 2차 시험을 며칠 앞두고 고시원에 들어가 있었던 성희씨는 이 사실을 몰랐다. 남편은 시험공부에 방해될까봐 알리지 않고 홀로 밤을 새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그러고 보니 수석합격 절반의 공은 남편에게 돌려야 할 듯하다.
배씨는 내년 4월부터 8개월 동안 중앙공무원연수원에서 일반 행정 업무를 배운 뒤 소년원생들을 교정하는 공무원으로서 본격적인 삶을 시작하게 된다.
“행시는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이 있어요. 여성들 끈기는 누구도 못 당해내잖아요. 이번에 여성이 40% 정도 합격한 것도 그런 특성 때문인 것 같아요.”
올해 행시 응시자는 1만4천여명. 최종 합격 198명 중 여성 합격자는 38.4%(지난해보다 4.9% 증가)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교육행정직의 경우 합격자가 모두 여성이어서 양성평등채용목표제에 따라 남성 3명을 추가 합격시켰을 정도다.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사진 이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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