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여성상담센터 ‘외국인 주부 한글교실’

“한글 배워서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어요”

지역내일 2004-10-27
“깊은 산속에 커다란 굴참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꺼운 나무껍질과 길쭉한 잎을 가진 굴참나무는 마음 씀씀이가 참 넉넉하였습니다.”
22일 오전 10시 전남 나주 동신대학교 인문관 210호 강당. 외국인 주부 10여명이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을 펼쳐놓고 서투른 억양으로 한글을 따라 읽는다. 언어소통이 안 돼 가정불화를 겪었던 외국인 주부들은 올 3월부터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는 웬만한 단어는 모두 소화해 낸다.
나주여성상담센터는 언어소통을 못해 가정불화로 가출하는 외국인 주부들이 증가하자 올 3월부터 ‘외국인 주부 한글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나주시에 등록된 외국인 여성은 361명. 이중 250명이 외국인 주부다. 미등록된 외국인 여성은 파악조차 안 된다. 외국인 여성 대다수가 한글을 모른다. 이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 돼 폭행· 갈취 등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
여성상담센터 오수진 상담원은 “우리말을 못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가정 폭력과 가출, 집단 따돌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한글교실 개설 이유를 설명했다.
한글 교육에 참가하는 외국인 주부들은 ‘언어소통’ 때문에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어왔다. 결혼 5년째인 인도네시아 출신 쓰리안나(30)씨는 “처음에는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달라서 많이 싸웠는데 요즘은 좀 나아졌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것은 자녀 교육이다. 설령 우리말을 알아도 어린 아이에게 사투리를 가르친다. 결혼 11년째인 미얀마 출신 산산윈(39)씨는 “어린이집에서 편지가 왔는데 뜻을 잘 몰라서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며 “한글을 제대로 배워서 아이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차원의 지원은 거의 없다. 여성상담센터도 어려운 재정 때문에 올해로 한글 교육을 끝낼 생각이다. 오 상담원은 “모자 모두를 위해 체계적인 언어교육이 필요한데도 국가차원의 지원이 거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나주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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