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우리 시대의 춤꾼 홍영주 (안무가·아이기스 아카데미 대표)

“노력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지역내일 2004-10-21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잖아. 엔딩에서는 오합지졸이 따로 없네. 그 동안 뭐했어?”
박진영의 엘리베이터 춤, 백지영의 살사춤, 쿨, 김현정, 이예린, 왁스 등 최고 스타들의 춤 안무가로 ‘스타 트레이너’라는 별명이 붙은 이 시대의 춤꾼 홍영주씨(34)는 ‘폭발 중’이었다
생방송을 앞둔 마지막 리허설 현장은 급속히 냉각됐다. 잠시 후 2차 폭격. 너무 한 거 아닌가?
“백 댄서들은 언제든 내쳐질 수 있는 존재들이잖아요.”
무용단을 ‘밤무대 무희’ 정도로 인식하던 때부터 ‘백 댄서’가 엄연한 하나의 직업으로 부상한 오늘까지 15년, 그 자신 힘들게 통과해 왔기에 후배들에게 잘해 주고 싶어 더 냉정해질 때가 많다.
자신이 그랬다. 서러운 대접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서 변했다. 더 강해지고 더 독해졌다. 강해지기 위해 더 많이 인내했고 더 많이 기다렸고 더 늦게까지 버텼다. 그러니 ‘독을 뿜는다’며 겁내는 남자들도 상당수일 밖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시원스런 웃음은 ‘독기’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의 춤 인생에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27살 무렵, 결혼을 해야 하나, 춤을 계속 추어야 하나, 기로에 섰던 때가 있었다.
“결혼? 임신하고 1년, 애 낳고 1~2년 정도는 쉬어야겠지? 춤? 하루라도 안 추면 발바닥에 가시가 돋겠지? 애 낳고 다시 할까? 방송 한번에 5만원인데 애 낳고 그 돈 벌자고 다시 몸을 만들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춤이에요. 남자보다 춤이 좋은 걸 어떡해요.(웃음)”
다른 한번은 서른을 막 넘기면서였다. IMF시기는 댄서들에게도 한파였다. 방송사를 나와 무용단을 만들었다. 또 얼마 후 지금의 춤꾼양성소 ‘아이기스 아티스트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건 백 댄서를 벗어나 안무가로의 변신을 의미하는 것.
“두려웠죠. 춤추는 건 인정받았지만 체계적으로 춤을 배운 것도 아니고,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제 장점이 ‘단순’이거든요. 바닥 생활을 겁내지도 않구요. 일본 가서 한참 어린 친구들과 ‘하이, 하이’ 하면서 같이 뒹굴고 좁은 방에서 고생하면서 새로운 장르의 춤을 배워 오니까 조금씩 자신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춤의 세상도 보았다. 춤의 세계에는 댄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출가, 안무가도 있고 뮤지컬·영화·연극 등 접목할 영역도 엄청났다. 끝없는 춤의 변주를 목격한 홍씨는 CF 안무, 댄스아카데미 경영, 영화의 춤 감독 1호, 교수, 뮤지컬 안무(댄서 에디슨) 등 국내 춤 역사에 기록될 만한 새 영역을 하나씩 개척해 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타고난 춤꾼 홍씨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집과 교회밖에 모르던 ‘순진파’였다면 상상이 가는가. 사실이다. 졸업 후 조신하게 무역회사를 다니던 그가 많을 때는 일주일에 7번 나이트클럽에 ‘출석’하게 된 계기는 회식. 사람들의 탄성, 칭찬 그리고 그걸 즐기는 자신을 발견한 것. 얼마 후 당시 대표적인 쇼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서 ‘행진아이’를 구한다는 자막을 본다. 무심코 지원, 덜컥 오디션 합격. 바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부모님이 어이없어 하신 건 당연하죠. 한 3년쯤 엄마 속을 썩였을 거예요. 청바지 찢어 입고 뒤집어 입고 다니니까 엄마는 길에서 만나도 아는 체 안했어요. 그래도 제게 춤을 추지 말라는 말만큼은 않으셨어요. 제게 춤이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술만 마시는 것이 노는 것인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홍씨는 노래도 듣고 춤도 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난 춤을 못 추는데’라는 것도 홍씨에겐 변명이 되지 않는다.
“200번만 노래 듣고, 춤을 춰 보세요. 음치, 몸치에서 탈출할 수 있어요”

/손정미 기자 jmshon@naeil.com
사진 김진성(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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