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가렴주구가 개혁인가(박창래 2004.09.02)

지역내일 2004-09-02 (수정 2004-09-02 오후 12:15:56)
가렴주구가 개혁인가
박 창 래 언론인·공주영상정보대학 교수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태산(泰山)기슭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 여긴 공자일행이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길가의 풀숲 사이에 무덤이 셋 있는데, 한 여인이 그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를 시켜 그 사연을 알아보게 한즉 여인의 대답이 의외였다. “여기는 호랑이의 피해가 심한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몇 년 전에는 시아버님이 화를 당하시고 작년에는 남편이 당했는데 이번에는 그만 아들까지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습니다.”
“그런데도 왜 부인께서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으십니까.” 가까이 다가온 공자가 묻자 여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세금을 혹독하게 물리거나 못된 벼슬아치들이 재물을 강탈하는 일은 없답니다. 그래서 여기를 떠나지 못하지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
지난 한 해 우리 국민 한사람이 낸 세금이 300만원을 넘어 308만원에 달했다. 1995년 1인당 세금 160만원에 비하면 8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금년과 내년에도 재정규모가 6-7% 늘었으니까 국민부담도 덩달아 오를 것이다.
당국에 내는 것은 세금만이 아니다. 여기에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합치면 1인당 부담은 383만원을 웃돌았다. 전년에 비해 9.4%(33만원),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보다는 무려 74.1%(163만원) 증가한 것이다. 경제활동인구(2291만6000명)로만 나누어 보면 1인당 국민 부담금은 무려 801만원으로 전년의 730만원에 비해 9.8%가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 부담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98년의 21.1%에서 작년에는 25.5%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 부담의 증가세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대규모 국책 사업이 줄줄이 발표되는가 하면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빚을 내서라도 이들 사업은 기필코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발표된 굵직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데만 향후 10년 안팎사이에 무려 330조원이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농어촌 투융자 119조원,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 116조원, 신행정수도 건설 46조원, 자주국방에 24조원, 동북아 물류중심 추진 15조원, 장기 공공임대주택건설 11조원, 육아지원 2조원, 문화중심 도시건설 2조원 등 열거하기가 숨찰 정도다. 현정부가 즐겨 쓰는 로드맵에 따라 100대 중장기 정책과제가 선정되어 있으니 앞으로 또 얼마나 큰 프로젝트가 등장할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국민의 소득 수준이 부담을 감내할 만큼 따라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소득 수준은 9년째 1인당 1만달러 선에서 머물러 있다. 이러다가는 10년 장기불황에 빠졌던 일본의 전철을 밞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기우만이 아니다.
더구나 경기 회복 시점에 대한 정부 예측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는 것은 국민을 실망시킬 뿐 아니라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지난주 경기회복을 체감하려면 1년쯤 더 걸릴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의 숨통을 살려내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감세와 재정확대 등 경기 활성화대책을 마련한 것은 뒤늦게나마 반가운 일이다. 그 대책의 내용보다도 경제의 어려움을 여권에서 실감한 것 자체에 보다 의미가 있다하겠다.

시장친화적 정책 유지해야
그러나 모처럼 마련된 대책이 얼마나 효험을 발휘할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오히려 세수만 줄이고 재정의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부작용만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벌써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노무현대통령의 이상주의가 한국을 부채국가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국내외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시장 친화적인 정책의 일관성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길밖에 없다. 엊그제 열린 여권의 경제정책 대토론회에서 정책의 방향은 역설적으로 모두가 제시된 셈이다. ‘요즘은 돈 벌어서는 절대 안 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익단체나 노동조합이 기업인보다 목소리가 크고 우선권이 있는 것 같다.’ ‘돈 있는 사람이 야단맞는 분위기에서 누가 투자나 기술개발을 하겠는가.’ 모두가 경청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시장 친화적인 성장보다는 분배와 복지 형평성 등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서는 소득의 증가없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국민부담만 늘어날 뿐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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