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의 진정한 의미도 거른채 2학기 개학이 시작되었다. 방학동안 고등학생들은 폭염과 입시지옥에서, 초·중학생들은 남보다 먼저, 빨리빨리 신드롬에 주눅이 들어 뙤약볕 아래 이학원 저학원 뛰어 다니느라 차분히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다. 방학동안에 해야할 작은 실천하나 스스로 하지 못하고 개학 직전에서야 온 집안에 빨간불이 켜진다. 그나마 초등학생들은 부모를 조르거나 눈물로 해결한다. 이때쯤이면 누구의 방학과제물인지도 영 분별이 되지 않는다. 중·고등학생들은 몸소 실천해야 할 참된 봉사활동 의미에는 별반 반응이 없이 대부분 형식요건 맞추기에 급급하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면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우리는 멍하니 쳐다만 볼 뿐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학교밖의 교육은 점점 더 대학입시 또는 명문대학 진학을 정점으로 고착 획일화된 교육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동료애, 우정, 정의감 같은 인간성 교육의 필요성을 꿈에서라도 꾸어볼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니겠는가.
남북이산가족들의 재회의 그 한 장면, 그 사진 하나에 우리 민족이 겪은 과거의 아픈역사가 되살아나고,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우열이 자연적으로 분별되며, 혼돈된 이데올로기의 슬픈 산물이 담겨있는데 그 광경을 보아도 우리 청소년들의 표정은 마치 이방인들이 느끼는 모습이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카오스적 상황이다. 오늘날 동·식물에게도 아름다운 선율을 공감대로 형성하여 생산량을 높이고 있는데, 인간이 희노애락의 광경에서 공감대를 가질 수 없다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시대는 그 다음의 우월성은 또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본질은 변하지 못하고 수없이 껍질만 바뀌는 입시제도로 학부모의 마음만 불안케 하고 종종 걸음치게 한다. 교육은 총체적 붕괴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초·중등학교 교실붕괴현상은 더 이상 심각한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며, 입시지옥 문제도 시원하게 해결의 기미가 없다. 고등교육 역시 형태만 다를 뿐 초·중등학교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초·중등교사들은 아직 우리교육 체형에 맞지도 않는 7차 교육과정 연수에 사투를 벌이고 진정한 인간성교육을 위한 재충전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우리 교육현실을 잘못 진단하고 있으며, 그 대안 또한 종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개혁 역시 통치기반 강화로 활용했을 뿐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를 회피했다. 교육을 책임 맡은 수장은 기대 보다 구설수에 먼저 올라 난타 당한 후 시시때때 바뀌어 백년지대계가 아닌 일년지대계도 되지 못해 신뢰는 곤두박질쳐진지 오래다. 교육현장 아이들에게 참된인간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가? 이래저래 교사는 위선자로 불신당하긴 마찬가지다.
이 시점 여기서 우리는 인간성 회복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야 한다. 입시중심 교육환경과 물질중심, 약삭빠른 요령중심사회, 출세제일주의 환경에서는 인간성회복은 커녕 소멸해 갈 뿐이다. 거창하고 요란한 장미빛 교육의 말장난은 학교 현장에서 불만과 비웃음만 안겨줄 뿐이다. 감성적 사유를 버리고 감정적 행동을 앞세우고, 순리를 거스리고 역리를 취한 결과는 항상 상대적 비교로 자신보다 나약한 자는 업신여기고, 강한 자에게는 비굴함을 보이는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초가을 햇살은 그지 없이 따갑지만 탐스럽고 풍성한 가을이 있지 않는가. 이 초가을 햇살같은 모습의 교육수장(首長)들을 후광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탐스럽고 풍성한 인간성회복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성태 옥서초등학교 교사
남북이산가족들의 재회의 그 한 장면, 그 사진 하나에 우리 민족이 겪은 과거의 아픈역사가 되살아나고,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우열이 자연적으로 분별되며, 혼돈된 이데올로기의 슬픈 산물이 담겨있는데 그 광경을 보아도 우리 청소년들의 표정은 마치 이방인들이 느끼는 모습이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카오스적 상황이다. 오늘날 동·식물에게도 아름다운 선율을 공감대로 형성하여 생산량을 높이고 있는데, 인간이 희노애락의 광경에서 공감대를 가질 수 없다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시대는 그 다음의 우월성은 또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본질은 변하지 못하고 수없이 껍질만 바뀌는 입시제도로 학부모의 마음만 불안케 하고 종종 걸음치게 한다. 교육은 총체적 붕괴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초·중등학교 교실붕괴현상은 더 이상 심각한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며, 입시지옥 문제도 시원하게 해결의 기미가 없다. 고등교육 역시 형태만 다를 뿐 초·중등학교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초·중등교사들은 아직 우리교육 체형에 맞지도 않는 7차 교육과정 연수에 사투를 벌이고 진정한 인간성교육을 위한 재충전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우리 교육현실을 잘못 진단하고 있으며, 그 대안 또한 종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개혁 역시 통치기반 강화로 활용했을 뿐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를 회피했다. 교육을 책임 맡은 수장은 기대 보다 구설수에 먼저 올라 난타 당한 후 시시때때 바뀌어 백년지대계가 아닌 일년지대계도 되지 못해 신뢰는 곤두박질쳐진지 오래다. 교육현장 아이들에게 참된인간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가? 이래저래 교사는 위선자로 불신당하긴 마찬가지다.
이 시점 여기서 우리는 인간성 회복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야 한다. 입시중심 교육환경과 물질중심, 약삭빠른 요령중심사회, 출세제일주의 환경에서는 인간성회복은 커녕 소멸해 갈 뿐이다. 거창하고 요란한 장미빛 교육의 말장난은 학교 현장에서 불만과 비웃음만 안겨줄 뿐이다. 감성적 사유를 버리고 감정적 행동을 앞세우고, 순리를 거스리고 역리를 취한 결과는 항상 상대적 비교로 자신보다 나약한 자는 업신여기고, 강한 자에게는 비굴함을 보이는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초가을 햇살은 그지 없이 따갑지만 탐스럽고 풍성한 가을이 있지 않는가. 이 초가을 햇살같은 모습의 교육수장(首長)들을 후광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탐스럽고 풍성한 인간성회복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성태 옥서초등학교 교사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